총선을 앞두고 민심이 심상치 않다.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 득표율은 48.6%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활동을 놓고 "잘했다"는 평가는 38%로 줄었다. 한 달 만에 지지율이 10%포인트 이상 빠진 것. 그러나 이 대통령은 이런 심상치 않은 민심에도 여전히 거침이 없다.
4월 총선은 이 대통령의 거침없는 행보 앞에 놓인 '검문소'이다. 그는 이 검문소를 무사히 통과해 다시 질주할 수 있을까? <프레시안>과 한국진보연대는 독자와 함께 이명박 대통령의 정책을 검문해 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5회에 걸쳐 교육, 경제, 사회 정책을 점검하는 글을 싣는다. <편집자>
한반도 대운하 하나, 안하나?
이명박 대통령의 또 다른 경제 살리기 비책은 한반도 대운하, 수도권 규제 완화, 농지산지 규제 완화 등이다. 다 토목 공사다. 공사판을 크게 벌리면, 거기 뭉칫돈이 풀리고, 따라서 일자리가 생기고, 경제가 살아난다는 것이다. 먼저 한반도 대운하를 보자.
'국운 융성의 대역사'를 힘껏 외치던 때에 비하면 요즘 너무 조용하다. 한나라당이 총선 공약에서 쓱쓱 도려내는가 하면, 언론이 '추진 계획'을 찾아 특별히 크게 보도하자, '관심을 보여 너무 고맙다'고 인사하는 대신 별 것 아니라며, 서둘러 덮을 정도다. 반대 여론이 60%에 육박하니 겁을 먹은 것일까? 포기한 것일까? 아니다.
표 떨어질까 봐, 말을 삼키고 표정을 바꾼 것 뿐. 총선에서 이기면 특별법을 만들고, 내년 초에 착공해서 임기 끝나기 전에 완공한다는 것이다. 현대건설을 주간사로 해서 시공능력 1~5위, 12-~20위 업체가 제1컨소시엄, 포스코건설을 비롯한 시공능력 6~10위 업체가 제2컨소시엄, 시공능력 21위 이하 업체협의회가 제3컨소시엄을 각각 구성, 이미 현장 실측과 설계를 진행하고 있다.
언론 인터뷰를 보면 "늦어도 4월까지는 사업성 검토 보고서가 나오고, 6월까지는 사업제안서를 낼 예정"이라는 것이 건설회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한반도 대운하는 '논의' 단계가 아니라 저만큼 앞서 이미 '시행단계'로 흐르고 있는 것이다.
공사판을 벌리면 돈이 풀린다?
한반도 대운하가 무엇인가? 서울과 부산, 광주와 목포 등 전국을 물길로 잇는, 단군 이후 최대 공사다. 그걸 하려면, 먼저 운하가 흐르는 옆으로 군데군데 땅을 사야한다. 전국의 건설 장비를 모두 집합시키고 거기 작업자를 한 명씩 붙인 다음, 땅을 파야한다. 댐을 쌓아야한다. 보를 세워야 한다. 확실히 돈이 풀릴 것이다. 그토록 간절한 '투자'가 벌어지는 것이다.
얼마가 들까? 아무도 모른다. 정부도 모른다. 대선 기간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과 관련한 여러 작업을 주도한 고려대 곽승준 교수의 계산이 현재는 거의 유일한데, 16조 2863억이 든다는 것이다. 아니다, 생태지평연구소는 환경 파괴 비용을 다 치면 모두 41조가 든다고 한다. 16조 들어가는 것으로 치자. 16조는 도대체 크기가 얼마인가?
대표적인 미래 성장 동력으로 추앙받는 정보통신(IT) 산업에 투자하는 정부 1년 예산의 40배가 넘는다. 국민임대 주택 20만 채를 짓고도 남는다. 황금알을 낳는 미래 산업 정보통신을 확실하게 키우는 것보다, 20만 가구에 공짜로 집 한 채씩 주는 것보다 물길 뚫는 것이 단연 실용적인가? 16조가 아깝지 않은가? 걱정마라, 이거다. 왜?
정부 돈은 안 들어가기 때문이다. 국민 세금은 축나지 않는다고 공언하고 있다. 민자로 한다는 것이다. 민자가 무엇인가? 민간자금, 즉 재벌 돈이다. 민자를 끌어오려면 적어도 다른 곳에 투자했을 때와 같거나 더 많은 이윤을 보장해야 한다. 고속도로 닦는데 민자를 당겨 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예상 수익'을 책정하고, 장사 후에 차액이 생기면 그 만큼 정부가 때워줘야 한다. 무려 10년 동안! 일 년에 자동차 100대가 다니고, 한 대에 1000원씩 통행료를 받을 수 있으니까 예상수익은 10만 원. 이렇게 정하고 장사를 했는데 7만 원 밖에 안 되면 결국 3만 원을 정부가, 즉 국민이 메워야 하는 것이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예상 수익을 정할 때 뻥튀기를 한다. 통행 차량을 150대로 부풀려 일 년 예상수익을 15만 원으로 늘려 잡는 것. 이렇게 해서 '민자'는 8만 원을 추가로 거머쥔다. '천안 - 논산' 고속도로가 통행량을 47.1% 과다계산 한 것으로 밝혀지는 등 민자 고속도로의 행패는 사실 한 둘이 아니다. 민자가 아무리 무서워도 운하에서 돈이 콸콸 넘치면 아무 문제가 없다. 자, 운하에서 돈이 나오려면 어떤 일이 벌어져야 하는가?
배를 갈라, 상처에서 돈을 긁자?
도로와 철도를 달리던 수출입 컨테이너, 석탄, 시멘트, 철광석 등이 운하로 대거 몰려들어야 한다. 배들이 넘쳐나면 돈도 넘쳐날 것인 바, 과연 그런 일이 가능할까? '불가능'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100시간 거리다. 그도 그럴 것이 배는 경운기보다 느린데, 실어야지, 내려야지, 하역해서 다시 자동차로 옮겨야지, 자동차로 또 최종 목적지까지 가야지. 답답하고 복잡한 공정이 첩첩이다. 공장 앞, 집 앞까지 운하를 팔 수 없다면 100시간도 후하게 잡은 것. 따라서 배는 몰려들지 않는다. 물류는 돈이 되지 않는다. 공사판에 이골이 난 건설컨소시엄이 이 정도 뻔한 이치를 모를 리 없다. 토목공사 돈벌이로 수 십 년을 구른 이명박 대통령이 이 따위 계산을 못할 리 없다.
그리하여 건설컨소시엄은 "운하 주변 대규모 택지 개발권을 달라"고 외치고, 이명박 정부는 "운하는 운수뿐 아니라 관광, 레저 등을 포함하는 종합개발 사업이다"며 메아리를 보낸다. 물길 양쪽의 드넓은 땅을 싹 밀어버리고, 거기에 아파트, 호텔, 콘도를 짓겠다는 것이다. 한강 유람선을 타보면 안다. 강가 좌우로 모두 아파트. 그 밖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렇게 하겠다는 것이다. 국토의 복부를 갈라 그 상처 양 편에서 돈을 긁겠다는 것이다.
얼마나 좋을까? 투기꾼과 건설회사와 '강부자 내각'은. 그럼 국민은? 첫째, 저들이 운하 성공사례로 전파하는 독일은 우리와 사정이 전혀 다르다. 그 나라는 1년 내내 강수량이 일정하다. 우리는, 참았다가 한꺼번에 쏟아진다. 장마가 지면 운하 주변이 홍수에 잠기는 것이다. 둘째, 바닥을 아주 깊이 파고, 중간, 중간 보를 세워 물 높이를 일정하게 조절할 테니 안심하라? 보를 쌓고 그 중간에 물을 가두면 어떻게 될까? 썩는다. 식수가 썩는다. 셋째, 배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강을 되도록 직선으로 파야 한다. 따라서 물살은 급격히 빨라진다. 쓸려나가고, 환경이 변하면 물고기들이 몰살하고 이어서 주변 환경이 완파된다.
그래도 일자리는 생기는 것 아니냐? 맞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더 앞으로 밀자. 어떤 일자리? 이천 지하 냉동 창고 화재 참사가 떠오른다. 지하 작업장에서 폭발이 일어나 40여 명이 타 죽었다. 왜? 건설회사는 '원청 - 하청 - 재하청 - 재재하청 -재재재하청' 식의 다단계 하도급 구조다. 막상 현장에서 일하는 이들은 하청 연쇄 고리의 말단 영세업체에서 파견한 일용직 노동자다. 어제 누가 무슨 작업을 했는지, 오늘의 작업자는 알 수 없다. 이천이 그랬다. 어제 우레탄 공사를 해 가스가 가득한데 용접봉에 불을 붙인 것이다. 그런 일자리가 가로등처럼 반짝이다, 사라질 것이다. 그것으로 끝.
총선만 끝나면
투기꾼과 재벌과 이명박 정부 관리들, 이 땅의 1%는 터진 배가 더욱 터지고 나머지 99%는 더 힘겨워진다. 수도권 규제 완화, 농지산지 규제 완화도 똑같다. 3월 24일 국토해양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도시용지 비율을 현재 6.2%에서 2020년까지 9.2%로 높이겠다"고 보고했다. 이는 분당 신도시 150개를 새로 개발한다는 것이다. 이에 이명박 대통령은 "신도시보다 도심 공급 확대가 우선"이라고 지침을 내렸다. 국토해양부가 '투기 바람을 전국으로 확산하겠습니다'고 하니까 대통령이 '그 강풍이 먼저 수도권을 휩쓸게 하라'고 지시한 것이다.
분위기가 이러니 3월 26일 국토해양부 장관은 건설회사 대표들의 간담회에서 "상황을 좀 봐가면서 하반기에 결정하자"고 말했다. △아파트분양권 전매 허용 △일시적 1가구 1주택 보유자 양도소득세 비과세 시간을 현행 1년에서 3년으로 연장 △종부세 적용 대상을 지금 6억에서 9억으로 조정 등의 건설업자들의 숙원 사항에 대한 대답이었다. 이게 무슨 말인가? 총선만 끝나면 다 풀어줄테니 기다리라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 이후, 실제로는 건드린 것이 하나도 없는데 부동산이 겅중겅중 뛰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서울 강북의 6억 이하 아파트, 집 없는 서민들의 마지막 희망이 일주일에 1000만 원 씩 폭등한다는 것이다. 잠시 후, 집값이 무지하게 오를 것이다, 누구나 다 안다. 그래서 아파트를 막 산다, 1% 특권층은! 그러나 99%는 돈이 없어 못 산다. 한반도 대운하, 수도권 규제 완화, 농지산지 규제 완화 등 토목공사를 하면 절대 경제가 살아나지 않는다. 1%의 터진 배가 더욱 터지고 99%의 터지는 분노도 더욱 커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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