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서울 청계광장 앞에서 열린 고 허세욱 씨 추모 촛불문화제에서 만난 참여연대의 한 간사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이날 한미 FTA 중단을 외치며 지난 1일 서울 한남동 하얏트 호텔 앞에서 분신한 뒤 지난 15일 보름만에 사망한 허세욱 씨의 장례식이 '한미 FTA 무효, 민족민주노동열사 고 허세욱 동지 장례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오종렬 외 8명) 주관으로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됐다. 허 씨가 숨진 영등포 한강성심병원에서 발인해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하얏트 호텔 앞 등지에서 노제를 지냈으며 오후 4시께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서 화장한 허 씨의 유분 일부를 수습한 관을 하관했다.
온종일 장례 일정을 함께 한 200여 명의 시민들을 비롯해 추모제에 참가한 700여 명 참가자들은 묵묵히 촛불을 들고 자리를 지켰다.
"앞으로 집회에서 못 뵐 거 생각하면…"
이날 문화제에 참가한 이들 중에는 장소와 시간은 달라도 허 씨에 대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이들이 많았다. 참여연대 회원이자 민주노총 조합원, 민주노동당 당원 등으로 다양한 단체에서 누구보다도 성실하고 활발하게 활동했던 허 씨를 기억하는 이들은 더욱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관련기사 보기: "가방끈 짧다고 시대의 진실 모를까")
집회에서 커피 등을 팔던 한 노점상인은 혹시 허 씨를 아느냐는 기자의 질문을 무색하게 만드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 양반? 어휴…. 알지. 그 분은 봉천동 살고 난 신림동 살거든. 옆동네 사람이라고 커피도 많이 사주셨어. 춥고 배고픈 애들 커피 사줬던 분은 그 분밖에 없었어. 비정규직이나 월급 못 받는 애들 추울 때는 따뜻한 커피, 더울 때는 차가운 커피 남모르게 사주시고 내색도 안 했어.
돌아가셨단 소식 들었을 때 많이 놀랐지. 그 전날(3월 30일)에도 학생들이 시청 앞에서 종이봉투 쓰고 한미 FTA 반대 시위 할 때 같이 하던 양반이야. 그날 누가 봉투 뒤집어쓰고 커피를 달라고 해서 누군가 했더니 그 양반이야. 그날도 그 옆에 있는 분들한테 커피 한 잔씩 다 사주시더라고.
봉사만 하신 분이야. 내가 2003년 이라크 파병 반대 집회 할 때부터 장사를 했는데 그때부터 그 분을 알았지. 시청이나 광화문, 아무 데나 가면 다 만나지.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 참 아까운 분 가셨어. 더 사시고, 일 더 하셨어야 됐는데. 서운해. 앞으로 집회서 못 볼 거 생각하면…."
"겸손하고, 따뜻하고, 남을 배려했던 분"
추모제 한켠에서 어린 딸과 함께 앉아 있던 민주노동당 홍승하 최고위원은 허 씨의 분신 소식을 듣던 당일을 회상했다.
"분신 소식을 듣고, 그 분이 나이가 50대인 우리 당원이라는 걸 알았을 때, 주변인들에게 '혹시 그 분이냐'고 물어봤다. 그랬더니 다들 '그 분 맞다'고 하더라. 이름은 몰랐지만 집회, 교육 등 행사할 때 늘 얼굴을 뵌 분이다. 늘 먼저 따뜻하게 인사해주셨다. 많은 분들이 그 분을 겸손했던, 따뜻했던, 남을 배려했던 한 당원으로 기억하고 있더라.
우리 딸은 오늘 이 집회가 어떤 집회인지 잘 모를 거다. 그렇지만 허세욱 동지는, 유서에도 남긴 것처럼 정말 열심히, 항상 자신을 낮추며 사셨다. 사회에 그런 분들이 참 많을 것이다. 정부가 한미 FTA 협상에서 이렇게 굴욕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면 그가 돌아가셨을까. 어린 딸에게 차차 그렇게 선하고 겸손했던 분을 누가 왜 죽음으로 몰고 갔는지에 대해서 설명해줄 것이다."
2003년부터 참여연대에서 활동했던 한 자원활동가 역시 "송년회 등 행사 때는 어김없이 나타나 얼굴을 비추셨다"며 "생업 때문에 일찍 자리를 뜨셨지만 언제나 활동가들을 찾아와 먼저 인사하고 격려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허세욱 정신으로 살아가자"
이날 발언에 나선 민노당 이해삼 최고위원은 "허세욱 동지는 월급이 3배, 4배나 많은 동지들에게 커피와 꿀차를 수도 없이 사준 동지였다"며 "열 마디를 해도 한 마디를 실천 못하는 우리에게 한 마디를 해도 열 마디 이상을 실천했던 이였다"고 밝혔다.
그는 "허 동지는 영원히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있을 것"이라며 "부자들이 더 부자가 되고, 제국주의가 여전히 활개치는 세상을 허세욱 정신으로 바꾸자"고 호소했다.
참여연대 이태호 협동사무처장은 "오늘에서야 비로소 '우리가 굉장히 소중한 분을 잃었구나', '우리가 정말 존경할 만한 분을 잡지 못했구나'라는 회한이 너무나 가슴 저미게 느껴진다"며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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