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곡물 생산 강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도 세계 곡물파동 여진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브라질은 곡물파동 이후 자국의 식량수출을 억제하면서 최대의 농민세력인 MST(토지 없는 농부들의 땅 갖기 운동)의 에탄올 프로젝트 반대와 토지개혁 주장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자칫 세계의 곡물파동과 이로 인한 급격한 가격인상 사태가 국내물가에 영향을 미쳐 이들을 자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은 정부가 추진중인 에탄올 프로젝트는 식량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사탕수수임을 애써 홍보하면서 에탄올 못지않게 콩과 밀 등 식량증산에 매진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다.
조금 다른 경우지만 아르헨티나도 곡물가 폭등과 파동에 홍역을 앓고 있다. 농민들이 이번 기회에 한몫을 잡으려고 세계 곡물시장을 기웃거리자 정부는 대량의 곡물수출을 억제하기 위해 곡물수출세를 대폭으로 인상시켰다. 국내물가를 안정시킨다는 명목에서다.
당연히 농민들의 반발이 거셌다. 농민대표들은 아르헨티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로 통하는 모든 도로를 차단하고 국내시장의 식품공급마저 거부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비롯한 대도시에 곡물과 육류, 야채류 등의 공급이 중단되자 물가가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수출세를 대폭 인상해 곡물비축의 효율을 높이고 한편으로는 추가 국고수익을 올리려 했던 아르헨 정부는 공급중단을 앞세워 국내물가 인상으로 맞선 농민들의 악화된 여론에 밀려 경제장관을 경질하는 등 성난 민심을 달래는데 고심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곡물 수출국들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세계적인 곡물파동에 다소 여유 있는 엄살을 부리고 있는 반면 중미의 좌파동맹인 ALBA(베네수엘라, 쿠바, 볼리비아, 니카라과) 국가들은 절체절명의 위기사태로 판단하고 있다. 이 국가들은 식량 확보 문제를 국가전략의 최우선 과제로 선택했다.
최근 카라카스에 모인 ALBA 정상들은 식량 확보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고 기금마련을 결의하는 등 식량파동에 적극 대비하는 단결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식량파동은 근본적으로 자본주의 시스템이 전세계 경제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불거진 사태"라며 곡물은 재테크수단이 아닌 인류를 먹여 살린다는 도덕적인 산업이 돼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다.
에탄올 프로젝트 발표 이후 천정부지로 뛰어오르기 시작한 곡물가로 인해 매년 새로운 흑자기록을 세워가고 있는 미국의 메이저 곡물회사들을 겨냥한 발언이다.
차베스는 이어 "유엔 자료에 따르면 지구는 전세계 인구의 2배를 먹일 수 있는 곡물을 생산하고 있지만 제3세계 국민들을 여전히 주린 배를 채우지 못하고 진흙으로 과자를 만들어 먹기도 한다"고 주장하고 식량부족 사태는 시민전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카라카스에 모인 좌파동맹국가 정상들은 이구동성으로 미국과 브라질이 추진중인 바이오에너지 정책이 세계 식량난을 부추기고 있다면서 인간을 먹여야 할 곡식들이 자동차연료로 둔갑을 한다는 게 말이나 되느냐고 성토했다.
이들은 모임에서 미국의 에탄올 대량생산 정책을 주의제로 삼아 이 프로젝트의 문제점들을 일일이 지적하기도 했다.
특히 차베스 대통령은 식량을 연료로 바꾼다는 것은 죄악이며 에탄올 프로젝트는 제3세계 빈민들을 집단 학살하는 행위가 될 것이라던 전 쿠바 평의회장 피델 카스트로의 지난해 경고를 상기시키며 옥수수 가격 폭등이 세계 식량가격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차베스가 주장한 미국의 에탄올 생산 현황을 살펴보면 일견 수긍이 가는 부분도 없지 않다.
1톤의 옥수수에서 뽑을 수 있는 에탄올의 양은 400리터 수준이라고 한다.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은 에탄올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미국은 오는 2017년까지 1320억 리터의 에탄올을 생산할 것이라고 장담했다.
만일 이 프로젝트가 실현된다면 자그마치 3억2000만 톤 이상의 옥수수가 알코올로 변해 자동차연료로 사용된다는 말이다.
이는 세계 최대의 옥수수 생산국인 미국의 1년치 전체생산량을 한참이나 초과하는 엄청난 양이다. 참고로 2005년 미국의 옥수수 생산량은 2억8000만 톤으로 알려졌다. 바이오에너지 정책이 전세계의 식량부족현상을 부추기는 주범이라는 ALBA 정상들의 주장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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