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직 인수위가 외교통상부와 통일부를 통합해 '외교통일부'를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언론은 인수위가 통일부를 폐지하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했다고 평가했다. 통일부 폐지가 알려지자 대통합민주신당을 비롯한 민주노동당, 민주당 등과 많은 대북·통일운동단체들은 크게 반발했고, 대다수 북한 전문가들도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반발이 예상외로 크게 나타나자 김형오 인수위 부위원장은 17일 "통일부는 폐지된 것이 아니고, 외교통상부하고 통합이 됐다. 통일의 정책을 좀 더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고 해명했다. 그리고 이명박 당선인도 외신기자회견에서 "통일부가 없어진 것이 아니고 외교부가 통일부와 외교통일부로 합쳤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과연 대부분의 언론이 인수위와 당선인의 진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왜곡 보도를 한 것일까?
외형적으로만 보면 통일부뿐만 아니라 외교부도 폐지되고 외교통일부라는 새로운 부처가 만들어지는 것이 맞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외교부와 통일부가 대등하게 1:1로 통합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부가 여러 개의 부분으로 분해되어 일부만이 외교부와 합쳐지는 것이기 때문에 '통합'이라는 표현보다는 '폐지'나 '해체'라는 부분이 더 진실에 가깝다.
인수위에서 작성한 <문답으로 알아보는 정부 기능과 조직개편>의 22번 문항에서는 "통일부를 외교부로 통합"한다고 설명함으로써 통일부와 외교부가 대등하게 결합하는 것이 아니라 통일부가 외교부에 흡수되는 것임을 인정하고 있다. 또 23번 문항에서는 "통일부 폐지가 남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폐지'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다. '통일부 폐지'라는 표현을 인수위의 입장과는 무관하게 언론이 자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 아님을 인수위 공식 문건이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문건 작성자의 단순한 실수라고 볼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분명 아니다. 인수위와 이명박 당선인은 종전 통일부의 기능을 "남북대화 등 핵심역량 위주로 재편"하면서 북한이탈주민 지원은 지방자치단체에, 대북경제협력은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등 관련부서로, 대북정보 분석은 국가정보원으로 이관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기존의 통일부 조직에서 팔과 다리를 떼어내고 몸통만 남기겠다면 이것은 해체 또는 폐지가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인수위와 당선인은 통일부를 폐지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형식과 내용이 맞지 않는 주장을 계속하면서 국민들을 현혹시키려 할 것이 아니라 통일부의 유지보다 해체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솔직하게 입장을 밝히고 그 같은 입장에 대해 동의를 구하려 해야 할 것이다.
통일부 해체 추진의 배경 : 한미동맹 지상주의와 반통일부 정서
인수위는 16일 "외교와 통일의 국가적 역량을 결집"하기 위해 외교부와 통일부를 통합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외교와 통일의 유기적 연계를 통해 시너지 효과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얼핏 듣기에 매우 솔깃하게 들리지만, 조금만 숙고해 보면, 통일은 외교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사회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의 남북통합을 전제로 하는데 왜 '외교'만 통일과 유기적으로 연계시키려하는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 같은 의문에 대해 <문답으로 알아보는 정부 기능과 조직개편>은 어느 정도 답을 제공하고 있다. 이 문건은 "그동안 통일부와 외교부가 분리 운영되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지적하면서 "통일문제는 주변 국가 및 UN 등 국제기구 등에 대한 대외정책과 일관성을 가지고 추진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수위 문건이 추상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을 그동안 한나라당이 취해 온 입장과 연결시키면 인수위의 의도는 명확하게 드러난다. 통일문제가 대외관계, 특히 미국과의 관계에서 갈등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북대화와 한미 관계가 갈등을 보일 경우 한미 관계에 우선순위를 두겠다는 것으로 이는 북핵 문제와 남북한 관계 발전을 병행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북핵 문제 해결에 남북한 관계 발전을 종속시키겠다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중국 및 일본이라는 주변 강대국 외교뿐만 아니라 대북 관계와 전방위 한국외교에 있어 중요한 자산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고 미국이 부적절한 대북정책을 취할 경우에도 무조건적으로 '한미동맹'을 위해 미국의 정책에 동조해야 하는가? 미국이 북미 제네바 합의를 위반하며 북한을 '핵 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목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미국과 동맹관계이기 때문에 맹목적으로 미국의 대북 강경입장을 지지해야 했는가?
과거 한나라당이 미 행정부 내 네오콘의 입장에 동조해 미국의 일방주의적인 대북 정책을 지지했던 사실을 고려하면, 새 정부가 "외교와 통일의 유기적 연계를 통해" 어떠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지 의구심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인수위가 16일 발표한 자료 <정부 기능과 조직 개편>은 "통일정책이 특정 부처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부처가 관여하되, 대외정책의 틀 속에서 조율해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 같은 표현은 두 가지 내용을 내포하고 있다. 하나는 통일부에 대한 불신과 무시이고, 다른 하나는 통일정책을 대외정책에 복속시키는 방향으로 조율해 '일관성'을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통일정책이 특정 부처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주장은 통일부 업무의 전문성을 무시하는 것인 동시에 통일부 해체 의지를 담고 있다.
2007 남북정상회담의 합의를 통해 남북대화의 총괄창구는 과거 통일부가 주관하던 장관급회담에서 총리회담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위원장이 차관급이었던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는 부총리급인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로 격상되었다. 지난 11월 개최된 제1차 남북총리회담에서는 장관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추진위원회 및 산하 분과위원회를 조직하고, 경제협력공동위원회 산하에 조선 및 해운협력분과위원회, 도로협력분과위원회, 철도협력분과위원회, 개성공단협력분과위원회 등을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이처럼 남북한 관계의 발전으로 남북협력에 통일부뿐만 아니라 정부의 모든 부처가 참여하게 된 상황에서 뒤늦게 마치 통일부가 통일정책을 독점함으로써 남북협력의 확대를 방해하고 있는 것처럼 언급하는 것은 객관적 사실과 괴리된 주장이라고 하겠다.
남북 간의 교류협력에 정부의 모든 부처가 참여하게 되면 대북 정책을 조율하는 것이 더욱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통일부 조직을 여러 부분으로 분해하게 되면 조율 기능이 약화될 수밖에 없다. 남북교류협력의 발전으로 통일부의 역할이 커지고, 북한과의 교류가 증대하게 되면 통일부 조직도 함께 확대되는 것은 오히려 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통일부 조직을 해체시켜 놓고 통일정책을 "대외정책의 틀 속에서 조율해 일관성을 유지"하려고 하다면, 통일정책은 '외교통일부'의 구(舊) 외교부 조직의 전유물로 전락하게 될 것임이 확실하다.
신설되는 특임장관 중 한 명을 대북관계 전담으로 임명하더라도 '통일 특임장관'이 정책 수립 및 집행에 필요한 조직과 인력 그리고 재원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필요시 대통령의 대북 특사 역할 이상의 기능을 수행하기 어렵다. 대북정책 조율 기능도 대북협상 기능도 가지지 못한 '통일 특임장관' 임명은 통일부 해체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한 임시방편 이상의 의미를 갖지 못한다.
북핵문제 해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인가?
통일부 해체가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만약 북핵 문제 해결과 한국의 국익 증진에 기여한다면 긍정적인 시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제2차 북핵 위기의 발생 과정과 그 이후의 해결 과정은 한국이 미국의 대북정책에 무조건적으로 동조하는 것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킬 수도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핵개발 의혹을 가지기 전에 북한을 유사시 '핵 선제공격' 대상으로 지목했다. 반면에 북한의 명백한 대남 군사공격 징후가 없는 상태에서 핵무기로 북한을 선제공격하는데 동의할 남한 국민은 극소수에 불과할 것이다.
부시 행정부는 부정확하고 과장된 정보에 의존해 2002년 10월 북한이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해 핵개발을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북미 제네바합의를 파기했고, 북한은 그에 맞서 아직 확보하고 있지 않은 우라늄농축 기술이 아니라 보다 쉬운 방법인 플루토늄 재처리를 통해 핵무기를 개발했다. 그리고 미국의 대북 금융제재에 대항해 2006년 핵실험을 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만약 한국 정부가 부시 행정부의 대북 강경정책에 적극적으로 동조했다면 북한의 핵실험은 더욱 앞당겨지고 한반도 정세는 매우 불안정해져 한국경제에도 매우 부정적인 결과가 초래되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부시 행정부가 대북 정책을 전환한 것은 2006년 11월 미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의 패배 이후라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노무현 정부는 국민 다수와 북한의 맹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관계를 위해 이라크 파병을 결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북정책에서 실질적인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던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전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국내정치적 기반이 악화되자 비로소 대북정책 전환에 나선 것이다. 이후 북미 직접대화를 통해 북핵 문제 해결의 기본 방향이 거의 결정되고 6자회담에서 사실상 이를 추인하는 방식으로 북핵 문제가 관리되어오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는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쥐고 있는 중요한 두 행위자인 미국과 북한이 같이 움직여야 진전이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요 두 행위자 중 북한과의 관계는 무시하거나 소홀히 하고 미국과의 정책공조 강화만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파악하는 것은 역사적 사실과도 배치되고 매우 비현실적인 접근이라고 하겠다.
물론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미국의 결단이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한미공조에 상대적인 우선순위가 요구되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북한과의 대화를 소홀히 하게 되면 북한 또한 미국과의 대화만 중시하고 남한과의 대화는 소홀히 하는 선미후남(先美後南) 또는 통미배남(通美排南) 정책으로 회귀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남한은 북핵 관련 협상과정에서 소외 또는 배제되고 1994년 제네바합의 채택 과정에서처럼 사후적으로 비용만 부담하게 되는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와 같은 전철을 다시 밟지 않으려면 이명박 정부는 북핵 문제 해결을 전적으로 미국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니라 남한도 적극적 대북 설득에 나서는 방향으로 정책을 결정해야 할 것이다.
한미공조가 잘 되고 남북대화도 순조롭다면 금상첨화겠지만, 한미공조가 순탄하다고 해서 남북대화도 반드시 잘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특히 미국이 북한에 대해 부적절한 접근법을 취할 때 한국의 국익과 민족적 이해관계를 무시하고 미국의 입장에 동조한다면 바람직한 대한민국 정부의 태도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부시 대통령과 김정일 총비서가 곧 결단을 내린다고 해도 북핵 문제는 현실적으로 북미 관계 정상화, 한반도 평화협정 체결, 경수로 제공 등의 문제와 연계되어 있기 때문에 완전 해결까지 최소한 수년이 소요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한편으로는 국제공조를 통해 북핵 문제의 해결을 추구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북한이 선군정치보다 경제회복에 더 큰 관심을 가지도록 남북한 관계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남북한 관계의 악화 또는 퇴보 불가피
이명박 당선인은 17일 신년 외신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는 정권이 바뀌더라도 남북 간 화해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은 더하게 될 것"이라며 통일부를 외교부와 통합한 것은 통일을 염두에 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통일을 염두에 두고 통일부와 외교부를 통합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약하다. 남북한 간에 합의된 가장 중요한 문서 중의 하나인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한 간의 관계를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로 규정하고 있다. 남북한 간의 관계가 특수 관계인만큼 그 특수관계를 다루는 통일부 업무와 일반적인 국가간 관계를 다루는 외교부 업무는 성격을 달리한다고 하겠다.
외교부에서는 국가 통합의 문제까지 다루지 않지만, 통일부에서는 중장기적으로 남북한간의 정치, 행정, 경제, 사회, 문화, 군사 통합을 준비해야 한다. 통일부가 대상으로 하는 국가는 북한 1개 국가로 외교부가 다루는 국가와 수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다루는 분야는 매우 광범위하다. 그런데 통일부에서 경제와 사회문화, 정보분석 기능 등을 떼어내어 다른 부서로 이관하게 되면 통일을 종합적으로 대비할 수 있는 부서가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통일부와 외교부를 통합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통일을 준비하는 데에는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겠다.
이명박 당선인은 또한 "이제는 남북 간의 관계도 한 단계 더 올라 보다 적극적 경협을 통해 통일까지 대비한다면 전략적으로 어느 한 부서가 하기엔 너무 규모가 커졌다. 과거 경협이 없었을 때 통일부의 역할은 매우 제한적이었다.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경협이 적극적으로 된다면 모든 부서가 다 관여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남북한 관계를 어느 한 부서가 담당하기에는 너무 경협의 규모가 커졌다는 말은 분명 일리가 있는 말이다. 바로 그 같은 사정 때문에 남북한은 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남북총리회담 개최에 동의했다.
통일부를 외교부에 통합하지 않아도 정상회담 합의를 이행하면 모든 부서가 남북한 관계에 참여하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확대된 교류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입장에서 조직개편을 했다는 말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특히 통일부를 해체해 여러 부서에 나누어 이관하고, 외교통일부에 남북 간 연락 사무국을 존속시킨다면 남북한 간 협의의 수준이 낮아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남북한 당국간 협의의 수준이 낮아지는 것과 남북협력의 확대는 상호 모순되지 결코 조화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이명박 당선인의 "핵문제가 해결된다면 경협이 적극적으로 된다면 모든 부서가 다 관여해야 한다"는 주장은 향후 새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많은 것을 시사한다. 2007 남북정상회담 합의를 통해 통일부뿐만 아니라 정부의 거의 모든 핵심부처가 남북협력에 참여하게 되어있는데 이 당선인의 주장은 이 같은 남북 당국간 협력의 전면화를 핵문제 해결 이후로 미루겠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처럼 새 정부가 '10.4공동선언'의 기본 방향을 부정하게 되면 남북한 관계의 현저한 악화 또는 퇴보는 불가피하다. 통일부 해체가 김영삼 대통령이 북핵 위기 발생 후 주장한 바와 같은 "핵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는 논리와 연결되어 있다면 남북한 관계의 전면 후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 현실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에게 '북핵 문제 해결 이후'는 중요하지 않을 수 있지만, 우리에게는 '북핵 문제 해결' 뿐만 아니라 그 이후도 중요하다. 미국에게는 한반도가 적화되지 않는 한 한반도 통일 문제가 관심사항이 아니지만, 우리는 당사자로서 중장기적으로 통일을 준비하고 대비해야 한다.
미국에게는 중요한 관심사항이 아닌 남북 이산가족과 국군포로 상봉, 경제협력이 우리에게는 중요한 문제들이다. 지금도 많은 이산기족들이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고 있는데, 이들 문제를 '북핵 문제 해결 이후'로 미루고 있을 수만은 없다.
만약 새 정부가 그동안 통일부가 관장해 온 쌀과 비료 대북 지원과 이산가족 문제 등 인도적 사업을 대한적십자사로 이관하려 한다면 이는 매우 순진하고도 비현실적인 태도이다. 이산가족과 국군포로의 상봉은 인도적 문제일 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의 정치적 결단을 요하는 민감한 문제이기도 하다.
남한이 북한보다 국력이 뒤쳐져 있었을 때 이산가족 상봉에 소극적 태도를 보였던 것은 이산가족 상봉으로 북한이 남한사회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이처럼 이산가족 상봉은 민감한 정치적 문제이기 때문에 결국 적십자회담보다는 높은 수준의 당국간 회담에서 해결을 모색할 수밖에 없고,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대화는 그 같은 현실을 잘 보여주고 있다. 한국 정부는 지금까지 대북 경협환경을 개선하거나 남북한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쌀과 비료 지원을 사실상 협상수단으로 활용해왔다. 이같은 협상수단을 통일부에서 적십자사로 이관하면 한국 정부의 대북 협상력이 약화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한국 외교에도 독(毒)이 될 수 있다.
통일부를 해체하고 외교부에 편입시키면 대미 정책과 대북 정책을 조율하는데 일말의 효율성을 더할 수는 있겠지만,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많다고 할 수 있다. 통일부가 외교부에 흡수 통합되면 일차적으로 외교통일부 장관이 한편으로는 외교부서의 수장으로서 북핵 문제를 비롯해 4강외교를 담당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남북장관급회담의 대표로서 복잡한 남북한 관계 전반도 관장하게 되어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한국의 외교가 한반도와 주변 4강을 넘어서서 전세계로 확대되어야 할 시점에 외교의 수장이 남북대화까지 관장하게 되면 현재보다 오히려 외교의 폭이 좁아질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따라서 통일부와 외교부의 통합은 외교부에게 득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독이 될 가능성이 크다. 통일부 해체 문제는 비현실적인 '희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를 가지고 맹목적으로 접근할 것이 아니라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신중하게 득실을 따져보아야 한다.
국민과 남북한 사회통합에도 도움이 될 것인가?
통일부는 그동안 북한과의 협상만 담당해온 것이 아니라 각종 백서와 자료의 발간을 통해 국가정보원이 담당할 수 없는 대국민 북한정보 제공 서비스를 담당해왔다. 그런데 만약 통일부의 정보분석 기능이 국정원으로 이관되면 국민과 전문가들에 대한 정보 제공 서비스가 크게 축소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는 통일을 염두에 두고 통일부와 외교부 통합을 추진하고 있다는 이명박 당선인의 주장과 배치되고, 두 부서의 통합은 국민의 알권리를 침해하며 통일에 필요한 우리 사회의 대북 이해 증진에 역행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통일부는 그동안 민간단체의 남북사회문화교류와 남북화해협력을 위한 활동을 지원해왔다. 그런데 통일부의 대북협상 기능이 외교통일부로 이관되고 대북경제협력 기능을 지식경제부와 국토해양부 등이 맡게 되면, 당장 경제적으로 이익을 산출하지 않는 남북사회문화 분야의 교류에 대한 지원이 크게 줄어들고, 북한 관련 NGO의 활동도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민간단체와 정부간 협력적 관계도 크게 약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리고 통일부 해체는 이명박 정부가 한미동맹만 중시하고 민족문제는 소홀히 한다는 인식을 가져와 남북한 간의 정통성 경쟁에서 북한을 이롭게 하고 남남갈등을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통일부의 역할 강화가 현명한 선택
이명박 당선인이 진정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원한다면 통일부를 해체하고 그 위상을 약화시킴으로써 북한과의 접촉면과 접촉수를 줄이는 소극적·고립주의적 접근을 할 것이 아니라 통일부의 역할을 강화해 대북 접촉면을 확대하고 접촉수를 증대시키는 적극적·공세적 접근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통일부의 위상을 강화시키고 남북한 간의 협의수준을 격상시킴으로써 북한이 핵을 포기하면 남한으로부터 기대할 것이 많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 오히려 북한의 핵포기에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하면 통일부 장관을 과거 노태우 정부 시기처럼 부총리급으로 격상시키고 남북한 관계를 한층 더 높은 수준으로 올리겠다는 제스처를 보이는 것이 통일부를 해체하는 것보다 북한에게 보다 분명한 메시지를 주게 될 것이다.
새 정부가 통일부를 폐지함으로써 한미동맹에만 관심이 있지 남북대화에는 큰 관심이 없다는 신호를 북한에 보내게 되면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는 접어두고 미국과의 대화에만 매달리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6자회담에서 남한의 입지와 협상력은 더욱 약화되고 남한은 북한과 미국이 결정한 사항을 집행하는 역할만 맡게 될 것임은 자명하다.
통일부 해체 문제는 행정중심적 또는 외교중심적 관점에서만 논의할 사안이 아니다. 한편으로는 북한과의 관계를 총체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정서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통일은 진보세력만의 가치가 아니다. 보수세력도 통일을 원하는 바, 평화적이고 안정된 통일을 염원하는 국민정서를 껴안고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통일부 해체 문제는 단순한 정부조직 개편 문제를 넘어서서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머지 단추도 잘못 끼워질 수밖에 없다. 인수위는 감정적으로 ABR(Anything But Roh) 정책에 입각해 통일부 조직 문제를 논의할 것이 아니라 15년 또는 20년 후쯤 다가올 통일의 시대를 대비한 국가전략 차원에서 이 문제를 검토해야 할 것이다. 이명박 당선인은 통일부를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 오히려 현명한 선택이라는 점을 뒤늦지 않게 깨닫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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