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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철 전 주미대사, 작심하고 부시 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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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철 전 주미대사, 작심하고 부시 비판

HEU 및 BDA 신빙성 집중 추궁

"권력(힘)이 정의(正義)를 누르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처럼 부시 대통령 외교안보정책의 목표가 남북통합을 더디게 하거나 뒤엉키게(putting a cart before the horse) 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이었다면 부시 행정부는 이미 그 목적을 달성했다.

그러나 역사는 정의가 힘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정의는 강자만이 누리는 특권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시의 외교안보정책 참모들이 근시안적이고 이원론적인 도덕성의 함정에 빠져 국제사회의 도덕적인 지도자로서의 책무를 망각하지 않기를 바란다."


양성철 전 주미 한국대사가 조지 부시 미 행정부에 대해 거침없는 비판을 쏟아냈다. 김대중 정부 말기, 제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던 2002년 대사를 지낸 그는 북핵 위기 '무대'의 한 주역이었던 제임스 켈리 전 미 국무부 차관보의 면전에서도 신랄했다.

"켈리가 말해보라"
▲ 양성철 전 주미 한국 대사 ⓒ연합뉴스

14일 오전 서울 프라자호텔에서 열린 2007년 서울-워싱턴포럼. 한미 양국의 대표적인 연구기관(세종연구소, 브루킹스연구소)이 공동 주관한 이 행사는 민간토론회였지만, 양국의 전직 고위 관리들도 참여하는 무게감 있는 행사였다.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의 신빙성에 대해 양성철 전 대사가 평소 의구심을 표해오긴 했지만, 그토록 과감한 발언을 하는 것은 의외였다.

켈리는 물론이고, 2002년 그와 함께 북한을 방문했던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미 국무부 한국과장의 표정도 일순 굳어졌다. 그러나 양 대사는 개의치 않고 HEU 문제의 신빙성을 추궁했다.

"제2기 부시행정부는 북한 HEU 현황에 대한 1기 행정부의 평가를 완전히 뒤집었다. 이것은 새 정보에 의한 것인가? 정보평가는 왜, 언제, 어떻게 바뀌었나? 이 사건을 직접 담당하는 관리가 이 자리에 있는데 답변해 달라."

양 대사는 이어 "2002년 10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HEU 정보를 봤는데 그게 제네바합의를 해체할 만큼 큰 것이었는지 의문"이라며 "2002년 10월의 상황에 참여했던 미국의 정책입안자들은 남북관계의 진전을 막은 기회비용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켈리를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양 대사는 또 "부시 1기에서는 국무부가 제기한 HEU 문제가 있었고, 2기에서는 재무부가 제기한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가 있었다"며 북한이 BDA를 통해 불법자금을 유통시켰다는 미국의 주장에 대해서도 의혹의 시선을 보냈다.

그는 "BDA 문제는 9.19공동성명에 이어 북핵 2.13합의 이행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이 문제의 합리적인 해결 방법은 미 재무부가 불법행위의 확실한 사실이나 증거를 공개하거나 BDA가 2.13합의 이행의 저해요소가 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다"고 강조했다. 증거가 있으면 내놓고, 없거나 내놓기 곤란하다면 북한 자금의 송금 문제를 미국이 나서서 해결하라는 촉구의 의미로 해석됐다.

켈리는 '최소한의 방어'에만 그쳐

미리 배포된 발표문을 읽어봤을 터였지만 켈리 전 차관보는 길게 대응하지 않았다.

"이런 회의 말고 다른 방식의 토론이 필요하다. 그런데 미 행정부의 2002년 여름 정보에 따르면 그 당시에는 결코 무시할 수 없었던 정보가 있었다."

켈리 자신도 딕 체니 미 부통령과 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장관의 분별없는 대북 강경책, 과도한 정보해석에 넌덜머리가 났기 때문이어서인지, 행정부에 몸 담았던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방어 논리만 내세웠다.

대신 데이비드 스트로브 전 미 한국과장이 좀 더 적극적으로 방어하긴 했지만 그 역시도 본질에서 빗겨난 것이었고, 부시 대통령의 책임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2002년 평양에 간 미국 대표단에는 대북 온건파에서 강경파까지 다 있었다. (대표단 조차 각자 달리 해석할 수 있어) 통역을 불러서 다시 확인해 봤는데 강석주 북한 외무성 부상의 통역은 당시 'HEU 프로그램을 보유하고 있다. 여러분들의 우려에 대해 듣겠지만 우리 입장부터 들어달라'고 했다."

하지만 그 역시도 CIA의 정보평가와 증거에 대해서는 별다른 답변을 하지 않았다. 다만 "북한은 1990년대 말부터 HEU를 추구했고 부시 행정부는 이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가 심각하다고 생각했다"는 미 행정부의 공식 입장만 되풀이했다.

그는 "북한이 이런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계속 추진하고 있었다는 것 자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스트로브 과장은 "부시 행정부의 북한 접근법, HEU에 대한 대응이 상황을 악화시켰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며 "대통령과 부통령이 직접 책임을 져야 한다. 행정부 상부의 이데올로그가 있어 다른 관리들이 다른 입장을 제시하지 못하게 한 것은 책임져야 한다"고 부시 대통령을 비판했다.

BDA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미 행정부는 북한이 만든 위조화폐 문제를 제기하고 거래를 정지하게 할 권한이 있다"고 행정부의 공식 입장을 말하면서도 "부시 행정부의 이상적인 접근은 이런 문제에 대한 정책 토론을 불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켈리 전 차관보는 "스트로브의 코멘트는 거의 대부분 맞다. 내가 더 말할 건 없다"고 논평했다.

양성철 전 대사는 'DJ 계열'의 인물이다. 그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부시 행정부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을 비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이날 발언이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김 전 대통령과 그의 외교안보 핵심 참모들이 최근 보여주는 행보 때문이다. 그들은 핵문제 해결 전에 남북정상회담은 의미없는 일이고 대신 한-중-일-러 4자 정상회담이 더 중요하다는 노무현 정부의 정책을 비판하며 '남북정상회담 먼저, 남북관계는 북핵 문제보다 한 발짝 앞에서'를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HEU와 BDA 문제에 대한 양 전 대사의 이날 발언 역시 미국을 향한 것인 동시에 신빙성 없는 미국의 주장에 별다른 이의를 달지 않는 노무현 정부의 소극적인 태도와 자신들을 구분지으려는 목적도 있는 것이라는 게 중평이다. 이날 독일 베를린에 도착한 김 전 대통령의 '베를린 메시지'가 주목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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