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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문제' 회피 말아야 할 남북 군사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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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본 문제' 회피 말아야 할 남북 군사회담

[기고] 열차시험운행 군사보장 합의의 의미와 전망

경의선과 동해선이 끊긴 지 반세기 만에 다시 이어진다. 제5차 남북 장성급 군사회담의 공동보도문과 군사 군사보장 잠정합의서가 진통 끝에 나옴으로써 17일 열차시험운행이 가능하게 되었다.

경의선 열차는 개성을 향해 17일 오전 11시 30분 문산역을 출발해 군사분계선(MDL)을 지나 개성역까지 28.6km를 달리게 된다. 같은 시간 금강산청년역을 출발한 동해선 열차는 삼일포를 지나 남녘의 제진역까지 25.5km를 질주한다. 우선은 한 번이지만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염원이 이뤄지는 순간이다.

이번 회담에서 북측이 일회성 시험운행에라도 합의를 해 준 데에는 당장 남측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절박감이 작용했다. 시험운행이 무산될 경우 남측이 조건으로 내건 8000만 달러 상당의 경공업 원자재 지원이 어려워진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경공업 원자재는 북측에 매장된 지하자원 개발의 대가이기도 하다. 2.13합의 이후 '인민생활 개선'의 가시적 성과를 주민들에게 보여줘야 하는 북측 지도부 입장에서 다소 부담이 되지만 일회성 시험운행 정도는 어쩔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보인다.
▲ 경의선이 서울과 평양을 달릴 날은 언제가 될까. ⓒ연합뉴스

향후 40만톤의 쌀 차관 등 각종 대북지원의 동력이 되는 남측의 여론을 다분히 의식한 것도 중요한 배경이다. 지난해 이맘때 군부의 반대를 들어 시험운행 전날 불발시킨 전철을 되풀이할 명분이 군색해진 것이다.

시험운행 불발사태로 남북관계의 급속한 냉각과 싸늘한 남측 여론의 시선을 경험한 북측으로서는 올해 대남사업이 물 건너갈 수도 있는 사태를 되풀이하기에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난 4월 제13차 경제협력추진위원회에서의 '군사적 보장조치가 취해지도록 적극 협력한다'고 약속한 것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2.13합의 이후의 환경 변화도 북한을 압박하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북한자금 송금이 지체되고 있는 지금, 열차시험운행조차 거부한다면 북한으로서는 국제사회의 보다 따가운 시선에 직면할 것이다. 이에 대한 부담을 털기 위해서도 남측의 요구에 어느 정도 호응할 필요를 느꼈을 것이다. 남북관계를 전적으로 무시하고 '2.13 프로세스'를 진행시키기에는 무리라는 내부 평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같이 실리와 명분을 크게 훼손시키지 않는 선에서 북측은 동해선의 저진-강릉구간이 끊겨 있어 상설 군사보장이 불가능하다는 군색한 이유를 내세워 일회성 열차시험운행에 합의했다. 회담 초기부터 나온 남측의 끈질긴 상설 군사보장 요구를 일축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북측이 향후 남북 군사당국간 각종 협상에서 군사보장문제가 중요한 카드로 활용할 것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북측은 앞으로 임진강 수해방지사업, 한강하구 골재채취사업, 서해상 공동어로사업 등 군사당국간 협상이 필요한 경협사업에서 군사보장카드를 적절히 활용해 자신들의 요구를 최대한 관철하려 할 것이다.

북방한계선 문제, 어차피 넘어야 할 산

이번 회담이 일정을 넘겨가며 진통을 거듭한 것은 사실 다른 문제 때문이었다. 공동보도문에 북측이 열차시험운행의 조건으로 공동어로수역 설정과 북측 민간선박들의 해주항에로의 직항을 강력히 요구한 점이 눈에 띈다.

이는 북방한계선(NLL)을 대신하는 새로운 해상경계선 설정문제를 기회 있을 때마다 주장해 온 북측이 우회적인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북측은 NLL문제를 정공법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조건에서 공동어로수역이 설정되고 해주항 직항이 실현되면, 장기적으로 NLL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공동어로수역 설정은 원래 남측이 지난해 3월 제3차 장성급회담에서 서해상에서의 무력충돌방지 방안과 함께 제안했던 내용이다. 북측의 숙원사업인 해주항 직항은 연평도 쪽 NLL을 통과해야 가능한 것으로 북측이 3차, 4차 장성급회담에서 요구했던 사안이다. 즉 보기에 따라서는 남북이 상대방의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이번 회담에서 두드러지게 논의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NLL문제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며, 향후 군사회담을 좌우할 갈등 요소로 남게 되었음은 분명하다.
▲ 제5차 장성급 군사회담 합의문 서명 장면 ⓒ국방일보 제공

이번 회담에서 6차 장성급 군사회담을 7월 중 개최하고 제2차 남북국방장관회담 개최를 위해 협력하기로 한 것도 진전된 성과다. 남북관계에서 가장 더디고 실질적 성과가 적은 군사분야에서 회담 정례화의 첫발을 디뎠기 때문이다. '장성급 군사회담의 진전'을 전제조건으로 달았지만, 2000년 9월 제1차 국방장관회담 이후 7년 만에 국방장관회담 개최 가능성을 열어놨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정부는 제2차 국방장관회담을 반드시 성사시켜 군사분야 남북교류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거둬야 할 것이다. 군사적 보장조치의 협의 범위를 임진강 수해방지와 한강하구 골재채취사업까지 확장한 것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이 문제도 이번 군사보장조치 도출과정처럼 진통은 불가피하겠지만 어차피 넘어야 할 산이다.

앞으로 다양한 수준에서 남북군사회담이 개최될 것이다. 본질적으로 군사회담의 미래는 북한체제의 안보 불안감이 얼마나 빨리 해소되는가의 문제와 직결된다. 그런 점에서 속도의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2.13합의로 북핵 문제의 해결 방향이 잡힌 것은 다행스런 일이다. NLL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되겠지만, 어차피 이 문제는 적절한 시점에 남북이 자연스럽게 대안적 합의를 도출해야 할 사안이다.

남북관계가 이번 열차시험운행으로 도약의 계기를 마련했다. 세부일정에 합의한 경공업 원자재 지원과 북측 지하자원 공동개발 협력사업도 탄력을 받게 되었다. 한 번의 시험운행 군사보장 합의로 아쉬움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첫 발을 디뎠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

여러 군사적 문제들이 부각되었지만, 이번 회담은 남북 군사문제의 본질적 사안들이 대부분 드러났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만하다. 우여곡절도 예상되지만 남북군사회담의 전망이 그리 어두운 것은 아니다. 어차피 빗겨 갈 수 없다면 장강의 뒷물결이 앞물결을 밀어내듯 차근차근 접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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