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토론은 통일운동 진영의 박경순 진보운동연구소 상임연구원과 평화운동측의 이대훈 참여연대 평화군축센터 실행위원장이 참여하여 백 교수의 강연과 관련하여 북의 핵실험을 어떻게 볼 것인가, 남측의 시민운동의 역햘과 지향에 대해 각각의 의견을 밝혔고 이에 대해 백 교수의 답변이 있었으며, 이어 김낙중 선생 등 청중들의 발언과 이에 대한 연사 및 토론자의 답변이 이어졌다. <편집자>
박경순 "북핵실험의 긍정적 측면에도 주목해야"
박경순: 북한의 핵실험은 6.15 선언의 이행과정에서 중대한 변화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중대한 변화의 양면성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 교수님께서는 부정적 영향 측면을 강조하셨는데, 그런 면이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긍정적인 영향 측면이 명백히 존재하며, 이러한 점을 심사숙고해야 합니다. 한반도 분단 체제가 갖고 있는 구조적 특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현재 한반도에 내재된 정치·군사적 대결의 성격을 두고 봤을 때 미국 대북 정책의 목적은 한반도에 대한 지배력과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이고 그래서 침략적이고 공세적인 성격이 있습니다. 반대로 북의 대미정책은 미국 지배력과 영향력의 확장을 저지하면서 체제유지와 보위라는 정치 군사적인 자주 자존을 지키려고 하는, 방어적이고 자위적인 성격의 대결입니다. 이 기본 성격을 명확히 해야 북미관계의 구조적 성격을 명료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 핵실험 등 북미관계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안들은 이러한 기본 성격의 발현입니다. 즉 미국의 대북행동은 공격적 침략적 성격인 반면에 북한의 행동은 방어적 자위적 성격이 기본이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점이지요. 그래서 북한핵실험도 기본적으로 침략적 공격적 행동이 아닌 방어적 자위적 행동으로 보아야 합니다.
두 가지 견해를 제기하겠습니다. 백 선생께서는 유엔 결의안 1718호에 대해 정부에서 엄격히 제한해서 지지하는 것이 옳다고 하셨습니다. 시민운동이 그것을 지지해야 한다는 것인지, 정부의 정책을 이해해야 한다는 건지는 모호하지만 어쨌든 시민운동과 민중운동 관점에서 그 결의안을 인정하는 건 부당하다고 봅니다.
선생께선 북한에 핵실험의 책임이 있다고 해도 기본적이고 근원적인 책임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 압박정책에 있기 때문에 그것을 빼고 북을 일방적으로 비난하는 것은 공정한 태도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결의안 1718호는 북한에 대한 일방적 제재결의안입니다. 미국의 책임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없습니다.
유엔 결의안은 미국의 책임은 배제한 채 북한에게만 이러저러한 책임을 묻고 일방적 핵포기를 요구하고,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게 핵심입니다. 그것은 백선생님의 견해에 비추어서도 공정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어떤 형태로든 북한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은 비도덕적이며 불공정한 행위입니다. 따라서 시민운동이 그 결의안을 인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봅니다.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관점에 대한 정교한 토론이 필요합니다.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에서 국가 전략 차원을 도외시하는 것은 관념적 민중주의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정확한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도 국가전략 차원에서 펼쳐지는 정치적 행위결과로 초래되는 정치군사적 구조변화와 시민참여형 통일운동 진행과정을 약간은 대립적으로 설정하시고 시민참여형 통일운동만을 과도하게 강조하시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6.15 선언으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이 활성화되고 강화 발전될 수 있었습니다. 6.15선언을 빼놓고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활성화를 얘기할 수 없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런데 6.15공동선언은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직접적 결과라기보다 , 북미대결에서 미국의 정치적 후퇴로 페리프로세스가 만들어지고, 북미관계정상화문제가 현실적 문제로 부각되면서 한반도의 자주적 공간이 확대된 정치구조적 환경에서 가능했으며, 직접적으로는 남북정부당국자간의 정치적 협상과 합의에 따른 남북정상회담의 직접적 결실이자 성과로서 탄생된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북미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의 성과 및 남북당국간의 정치적 협상 등 한반도 정치군사적 역관계의 구조적 변화발전이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활성화여부를 결정적으로 좌우합니다. 따라서 국가전략차원의 정치구조적 변화와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을 상호 대립적으로 바라보지 않고 서로 보완되고 도와주는 관계로 설정해야 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측면에서 시민 '주도'라는 표현은 적절치 않다고 봅니다.
이런 측면에서 핵실험으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활성화 측면에서는 일시적 어려움이 파생된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책임논쟁과는 상관없이, 북한 핵실험으로 미국의 완강했던 태도가 누그러지면서 6자회담을 재개하기로 하고, 그 틀 내에서 금융제재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하기로 한 사태의 진전과정을 잘 보아야 한다고 봅니다. 북한 핵실험으로 북미대결에서 미국의 입지가 약화되고 북한의 입지가 강화되면서 미국의 부분적 또는 전면적 후퇴와 양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그것이 한반도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가능성을 높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이러한 긍정적 사태발전을 분명하게 평가해야 한다고 봅니다. 최근 부시의 한국전쟁 종전선언 발언을 봐도 북한 핵실험이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6자회담의 진전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평화실현이라는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목표에 비추어 봤을 때 북한 핵실험은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의 확대발전에도 긍정적 작용을 하고 있는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이대훈 "핵무기의 비윤리성 지적해야"
이대훈: 북한 핵실험이 민주지향적인 시민사회에 가져 온 파급효과는 보통 이상으로 심각한 것입니다. 그 이전부터 있었던 북한 인권문제가 거론되는 방식과 논쟁에 직결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북한의 행동에 대해 판단할 때 이중잣대가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비판이 누적되고 있어서 심각합니다. 이는 달리 말하면 북한의 행위를 미국의 패권정책의 작용으로만 설명하는 데 대한 동의기반이 급격히 약해지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핵무기 논란에서 윤리적 문제를 제외할 수 없습니다. 핵무기는 다른 재래식 무기와 달리 대량살상무기이며 그 뜻은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표적으로 하는 무기라는 면에서 심각한 윤리적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북한의 핵실험이 자위적 성격의 정책 중 하나로 나왔다는 점을 수긍하는 면이 있지만 대량살상무기의 윤리적인 측면의 문제를 제기하는 건 평화운동의 도리입니다. 즉 자위의 수단으로 핵무장이 정당한가라는 질문이 제기되어야 합니다.
물론 국제법적으로도 국가존망이 위태로운 상태에서 핵무기 보유가 합법인지, 불법인지에 대한 판단이 유보된 상태이지만, 세계의 평화운동에서는 핵무기가 불법적이고 반인도적이라는 점에 대해 대단히 높은 합의수준이 형성된 상태입니다. 윤리적 정당성 문제를 제기하고, 바로 답을 내지 못한다 하더라도 토론은 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의식이 우리 시민사회 안에 약한 게 안타깝습니다. 핵무기의 비윤리성은 말로 표현될 수준을 넘습니다. 인간과 환경과 문화와 정신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미치고 이를 볼모로 하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북핵 말고도 미국을 비롯한 기존 핵보유 국가들의 핵무기 보유는 그 자체로 훨씬 더 큰 범죄적인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 같은 전제에서 북핵 보유와 핵실험에 대해 논의할 공간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중잣대죠.
북한 인권의 경우에도 아무리 사소해도 인권문제는 인권문제라는 인식이 있어야 합니다. 민주화운동과 평화운동 내에 이런 논의를 할 수 있는 비판의 자유가 열리지 않으면 민주화운동과 평화운동의 윤리적 기반이 공격당하는 불행한 사태가 올 수 있습니다. 거의 모든 국가가 인권문제를 안고 있다는 점, 자위적 수단에도 한계가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개방적으로 북핵과 북한 인권 문제가 논의의 틀 안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한국 시민사회에 대하여 제3의 당사자 역할을 강조하셨는데 이제는 참여형 통일운동에서 의미하는 '참여' 담론의 의미가 불충분해졌다고 봅니다. 6.15 선언 이후 남북당국의 정책과 발언은 남북한에 영향을 미치고 국제사회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6.15 선언 이후 남북 정부뿐만 아니라 남쪽 시민사회 단체들도 좁게는 '한반도 정치' 크게는 '국제 정치'를 하기 시작했다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면에서 6.15 선언의 틀 안에서 그 내용을 이행하는 차원의 민간운동은 그 틀을 충실히 한다는 의미에서 정부 간 합의의 보조적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번 핵실험 문제, 또 북한의 인권문제 등 남북의 화해협력의 틀 안에서 해소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이 분명히 드러났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6.15 선언의 틀 안에서 정부의 보조적인 역할로 민간이 할 수 없는 의제가 마구 발생하고 있습니다. 의제를 소화하고 인식할 만한, 6.15 선언을 뛰어넘는 인식공동체가 형성되고 있지 않습니다.
6.15 선언의 틀을 넘어서는 의제를 포함하는 인식공동체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과제가 주어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남쪽의 민주지향적 시민사회 세력이 '참여'를 넘어서는 '제3세력'으로서의 역할을 고려해야 한다고 봅니다.
백 선생께서는 6.15 체제에 대해 '흔들거리면서 앞으로 가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그 이행의 과정을 설정했으면 합니다. 이행이란 남쪽의 시민사회 운동이 '제3의 비전세력'으로 서 남북 국가 주도의 통일논의를 진취적으로 흔드는 새로운 역학구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국가정체성이 변화될 때에는 필연적으로 기존의 국가정체성에 도전하는 사회세력의 형성이 필요하게 됩니다. 남쪽에서 남북한 국가정체성의 한계와 문제점을 제기하면서 그것을 뛰어넘는, 덜 군사적이고, 덜 안보적이며, 더 국제적으로 영향력 있는 국가정체성, 다시 말해 평화국가론을 만들어 낸다면 흔들리는 6.15 체제를 발전시키는 방향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백낙청 "민간 차원의 남북연합기구 만들어가야"
백낙청: 먼저 박경순 선생의 발제에 대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유엔 결의안의 문제는 시민운동의 관점을 정리한 대목이 아니라 남측 정부의 대응을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한 것입니다. 시민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결의안은 이중잣대이고 위선적이지요. 이스라엘이 무슨 짓을 해도 이 문제에 대한 결의안은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안보리에서 통과가 안 되는데, 북한에 대해서만 비난하는 것부터가 부당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의 입장에서는 일단 북핵 불용이라는 원칙을 견지해왔기 때문에, 아까 말했듯이 우리 정부의 소관사항이라고도 보기 어려운 북핵 폐기를 향해 지나치게 오버액션을 취하느니 유엔에서 중국이나 러시아의 역할 속에서 완화된 결의안을 엄격히 해석해서 준수하는 게 낫다는 것입니다.
북의 핵실험으로 야기된 중대한 변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더 숙고해야 한다고 했는데, 기본적으로는 저도 양면성을 얘기했으니까 강조의 차이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핵실험 이후 사태진전을 보면 협상력 확보라는 북한의 명분이 상당히 그럴듯하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고, 6자회담이 재개됨으로써 민간 통일운동의 조건도 개선됐으니까 긍정적으로 볼 대목이 아니겠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물론 좋은 지적이지만 이건 더 지켜볼 문제라는 토를 달고 싶습니다. 급속하게 북미관계가 타결돼 북한이 "핵실험하길 잘했구나"라고 생각하는 사태가 온다면 그때는 더 긍정적으로 말하겠지만 아직까지는 유보적입니다.
이어서 이대훈 선생이 제기한 문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핵무기의 윤리성과 인권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하셨는데 당연합니다. 그러나 일률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요구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한반도에서 멋진 통일사회를 건설하려면 누구나 핵무기나 인권문제의 윤리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만 현 시점에서 얼마나, 어떻게 논의해야 하느냐에 대해서는 일정한 역할분담이 가능하며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부 부처로 볼 때도 통일부 장관이 나서서 북의 인권문제를 거론하면 그건 남북접촉 당사자로서의 자격을 포기하는 꼴이 되겠지요. 마찬가지로 민간에서도 북과 직접 교류하는 사람과, 평화군축센터 같은 데서 일하는 사람들이 관심을 공유하더라도 논의방식에 차이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아무튼 활발한 토론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이 선생은 '참여'로는 불충분하다고 했는데 '제3의 당사자'는 남북 당국에 대등한 당사자, 준 국가급의 당사자를 말하는 것입니다. 보조적인 역할로 참여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저는 '제7의 당사자'가 비교우위에 서는 분야가 사회문화교류일 거라고 했는데 또 다른 영역으로 국제시민사회와의 연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행의 문제에 대해서는 6.15시대에서 다음 시대로의 진행이 언제, 어떻게 되는 것이냐 하는 질문일 텐데, 저는 6.15공동선언 제2항에 규정된 남북연합제 또는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해당하는 형태의 남북기구가 성립할 때 6.15시대가 종언된다고 봅니다. 그 다음에 뭘 할지는 선언에 포함되지 않았으니까 새로운 합의가 필요해지겠지요. 미리 그것까지 합의해놓지 않은 것은 대단히 현명한 일이었다고 저는 보고 있습니다.
평화국가론의 '평화국가'는 차원이 다른 두 개의 담론이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한반도에서 평화공존을 하면서 현재 있는 남북의 국가를 좀더 평화지향적인 안보국가로 바꾸는 현실적인 과제이고, 다음에는 더 높은 추상 차원에서 안보가 아닌 평화와 인권을 목표로 하는 전혀 다른 형태의 국가를 형성해야 한다는 평화국가론이 있습니다. 후자를 원대한 목표로서 설정할 수 있지만 그것을 실현하려면 한반도에서 남북의 국가연합 같은 중간단계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이 국가연합의 건설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가 너무 없는 것 같아요. 정부도 지금은 어떻게든 체제를 유지하고 평화공존을 강화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지, 남북연합에 대한 구체적인 준비가 없는 것으로 압니다. 북측도 지금은 체제유지에 온통 관심이 쏠려 있는 것 같고요.
이 대목도 우리 남측 민간사회에서 더 많은 연구를 해서 안을 제시하고 민간 차원의 남북연합기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미약하지만 이미 몇 개 만들어져 있습니다. 지난 10월 말 금강산에서 남북의 문인들이 모여 6.15민족문학인협회를 만들었는데, 그 형태가 연합 혹은 낮은 단계의 연방제에 해당합니다. 핵실험 이후의 시점에 만들어졌다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요. 6.15민족공동위원회도 앞으로 개선해야 할 점이 많지만 일종의 남북연합기구입니다. 겨레말 큰사전 공동편찬기구 같은 것도 아직 공동사무국이 안 생겼지만 개성에 사무국 건물을 짓기로 합의된 상태입니다. 이런 것들을 민간에서 축적하는 것이 국가위주의 구도를 흔들면서 이행을 준비하는 길이라고 봅니다.
일단 남북연합이 구성되면 시민참여의 내용에도 많은 변화가 오리라고 봅니다. 그 점에서 6.15시대에서 다음 단계로 이행하는 시점은 6.15선언의 2항이 실현되는 날입니다.
박경순 "한반도 핵위기의 주범은 미국"
박경순: 물론 핵무기의 윤리성 문제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 윤리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교조화·절대화하는 데 따르는 위험성은 경계해야 합니다. 북핵실험은 분명 한반도 핵위기의 실상을 절박하게 느끼게 해주었고 핵무기의 위험성을 깨닫게 해주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은 북한핵실험으로 한반도 핵 위기가 처음으로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입니다. 한반도 핵문제는 북한 핵실험으로 발생한 것이 아니라 수십년전부터 미국에 의해 한반도에 핵무기가 배치되면서 발생했습니다. 한반도 핵문제를 발생시킨 것은 북한이 아니고 미국이라는 것입니다.
북한은 수 십 년 동안 미국의 핵 협박과 핵 공격 위협에 시달려왔습니다. 북한뿐만 아니라 한반도 전체가 미국의 핵공격 위협에 노출되어 있었던 것이지요. 북한핵실험으로 수십년동안 은폐되어 있었던 한반도 핵 위기의 실상을 드러났습니다.
미국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핵 공격 위협에 시달리던 북한이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미국의 핵전쟁 위협을 제거할 수 있었으면 더 바랄 나위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미국이 북미대화와 협상을 한사코 반대하고 대북압박정책으로 일관함으로서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한반도 핵위협을 제거하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서 북한의 핵실험이 미국의 대북 핵 공격 야망을 저지하고, 한반도 비핵화실현에 긍정적 작용을 한다면 그 정당방어적 성격을 감안해야 한다고 봅니다. 핵무기의 윤리성이라는 것도 핵전쟁위협을 제거하고 평화를 수호하는 것이 근본목적이라면, 북한 핵실험이 그러한 방향에 긍정적 역할을 하고 있다면 그 측면을 배제하고 비난만을 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평화운동 진영에서 이야기하는 '평화'라는 것을 구체적, 실천적으로 접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반도 위기의 문제는 명백하게 미국의 공세적 핵무기와 북의 방어적 핵무기가 공존하고 있는 상황에서 발생합니다. 누구의 핵무기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가? 북한의 핵포기가 우선이냐, 아니면 미국의 핵위협 중단이 우선이냐의 문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토론해야 합니다. 또 북한과 미국에 대해 동시행동을 요구하는 실천적 행동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 북한의 핵실험을 비판한다면 10배는 더 미국을 비판하는 실천을 벌여야 합니다. 양 측에 대한 비판을 똑같이 한다면 정치공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강자에게는 별로 큰 타격을 주지 못합니다. 실천적으로 볼 때 그것은 북한의 핵실험만을 비판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미국의 핵공격위협에 대해 전세계가 비난하지도 제재를 가하지도 못하는 조건에서 북의 핵실험을 비난하고 핵포기를 강력하게 촉구하는 것은 미국주도의 대북제재를 용인하고 합법화시켜주는 효과를 초래함을 명백히 인식해야 합니다.
두 번째로 시민참여형 통일운동에서 백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주도'라는 부분에 대해서는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대훈 선생이 말씀하신 것이 제가 우려하는 부분입니다. 정부주도와 시민주도를 대립시키면서 남북의 정부를 교체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하는 것이 그러한 주장의 한계입니다. 분단을 극복한다는 것은 한 체제로 수렴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화해협력, 공존공영하자는 것입니다. 그것이 근본입니다. 제도로서 통일문제는 그 다음이고, 남북이 화해하는 방향으로 바꾸자는 것입니다.
북한의 체제가 아무리 못마땅하더라도 그 문제는 당연히 북한 주민의 몫이 아닙니까? 의도와는 다르게 불가피하게 북한 체제의 변혁을 추구하는 것으로 오해되고, 남북의 화해협력에 부정적 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통일운동 하는 것은 북한을 바꾸자는 것이 아닙니다.
이대훈 "북핵·인권 문제에 대한 보편적 접근도 필요"
이대훈: 제 호소는 남쪽의 시민사회에서 북한의 핵무기에 대한 이중 잣대, 혹은 이중 잣대로 오해될 수 있는 태도가 시민사회의 발전에 대단히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는 점입니다. 어떤 기준을 약자와 강자에 대해 똑같이 대응했을 때 약자가 더 힘들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약자에 대한 비판이 봉쇄되는 것은 올바르지 않습니다. 강자의 책임을 훨씬 더 강조해야 하지만 그것이 약자에 대한 비판을 봉쇄하는 것의 정당성을 부여해주진 않는다고 봅니다.
또한 북 핵실험이나 미국의 위협을 둘러싸고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를 군사외교적으로만 해석하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핵문제는 어떤 면에서 안보 문제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문화, 사회, 정신적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국가를 운영하는 가부장적인 방식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이 숨겨진 목소리들이 봉쇄당하고 있는 것은 안보적 해석이 일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핵문제를 기존의 틀에서만 해석하는 것이 기존 국가체제의 가치를 재생산하는 측면도 있다는 것입니다. 현재 북미갈등에 관한 우리의 대응은 안보적 해석을 넘어서서 다양한 목소리를 수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이 앞장서서 북한 인권상황을 문제 삼아야 하느냐는 한 청중의 질문에 대해)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북한 인권문제 제기해야 한다는 것이라기보다는, 이제 사방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입니다. 인권은 다른 사회문제와 마찬가지로 원인이 다양할 수 있습니다.
김낙중: 백 선생께서는 결론에서 북핵문제는 미국과 북한이 결자해지를 통해 풀어가도록 맡겨두라고 하셨습니다. 6.15공동선언이 파탄났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한계에 봉착한 것은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 한계가 어디서 왔습니까? 바로 1항입니다. 미국이 우리 민족끼리 통일하는 것을 막는데 2항의 실행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또 국가연합이든 연방이든 지구상에 연합-연방 했던 나라 중 군사지출 늘여가면서 성공한 예는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작계5027이다, 뭐다 하면서 계속 국방비를 증가시켜 왔습니다. 이러면서 어떻게 국가연합이나 연방이 성립할 수 있겠습니까?
백낙청: 김낙중 선생이 제기한 문제를 중심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국가연합도 그렇고, 인천에서 오신 민 선생님도 경제공동체, 문화공동체라는 것을 미국이 저렇게 방해하는 동안 되겠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셨습니다. 어려운 일인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첫째, 미국이 방해를 하더라도 우리가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까 최대한 열심히 하자는 것을 강조하고 싶었고, 미국에 대해서도 너무 숙명론적으로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부시가 북한을 깨부수고자 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공화당 정부 하에서도 9.19공동성명이 나왔고, 지금 6자회담이 재개되려고 합니다. 쉽게 타결되리라 생각하지는 않지만 타결되면 좋고, 안 되더라도 시간이 갈수록 더 민간의 몫이 늘어날 것이라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1항이라는 것은 2, 3, 4항과 같은 구체적 프로그램이라기보다는 우리가 그동안 외세에 짓눌려 살아 왔고, 통일을 한다고 하면 외국이 간섭하려 할 텐데 우리가 자주적으로 하자는 선언적 의미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 평화체제에 대한 이야기가 6.15선언에는 빠져 있는데 그것은 북미 간 해결하는 것이 제일 중요하니까 제가 볼 때는 빼는 것이 당연했고, 그걸 넣었다면 남북 정상이 주제넘은 선언을 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5년이 지난 후 드디어 작년 베이징 6자회담에서 9.19 평화체제 합의가 나온 것입니다. 그 실행은 지지부진합니다만 6.15선언의 중대한 누락점이 2005년 9월에 보완된 것입니다.
물론 제2항에 대한 실행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당장 내일 모레 되는 것은 아닙니다만, 1항이 100% 실현돼야 2항도 가능한가? 전 그렇게 보지는 않습니다. 6.15공동선언 1항의 정신을 살리면서 9.19성명의 실행과정에서 제2항의 실현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그것이 머지않은 장래에 이뤄지리라 믿고 있습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