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프레시안>에 게재된 인남식 교수(외교안보연구원)의 '美 중동민주화정책의 파탄 드러나다'에 대해 한국외대 홍미정 연구교수가 반론문을 보내왔다.
홍 교수는 이 글에서 중동지역 불안정성의 근본원인은 이스라엘의 불법 영토점령 및 이에 대한 미국의 무조건적 지원에 있다면서 미국의 중동민주화 구상이 헤즈볼라, 하마스, 무슬림형제단 등 이른바 '불법 이슬람 과격세력'의 정치적 진출로 어려움에 직면했다는 인 교수의 분석을 비판했다. 이들 세력의 현실적 목표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세 앞에서 자신들의 정당한 생존권을 지키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홍 교수는 이어 "미국의 중동민주화 구상의 목표는 점령된 영토를 해방시키려는 세력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현재 이 지역의 불안정성을 격화시킨다"고 지적하면서 따라서 정작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미국이 내건 '중동 민주화 구상의 허구성과 그 목표'다"라고 지적했다.
현재 전세계적인 관심과 주목 속에 진행되고 있는 중동지역 분쟁의 실상과 원인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련 연구자들간의 합리적 토론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이 글을 게재한다. <편집자>
미국은 진정 중동의 민주화를 바랄까?
인남식 교수의 기고문은 기본적으로 미국이 중동 각국에 민주주의적인 가치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는 믿음을 토대로 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이스라엘의 선제공격으로 발발한 1967년 전쟁 이후 중동 지역 유통 무기의 80%를 공급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아랍 국가들 간의 영토 협정을 중재함으로써 이스라엘이 아랍 영토를 불법 점령하는 것을 추인해 왔다. 이러한 상황이 이 지역의 불안정성을 격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인 교수는 "'미국의 확대 중동 구상'이 '체질적인 불안정성'에 시달려 온 중동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을 펴고 있다. 반면 체질적인 불안정성의 내용이 무엇이며, 언제부터, 누구에 의해 불안정성이 초래되고 격화되었는가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다.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는 이슬람 파벌들의 정치 세력화가 미국이 이식하고자 하는 가치에 상반되며 중동 민주화 구상에 장애물로 작용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슬람 파벌들의 정치세력화는 민주주의 정치 제도를 통해 이루어졌고, 이들은 미국이 주장하는 민주주의 가치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스라엘과 미국은 합법적인 정치 세력인 이슬람주의자들을 테러리스트들로 몰아세운다. 그렇다면, 문제 삼아야 할 것은 미국이 내건 '중동 민주화 구상의 허구성과 그 목표'다. 미국의 중동민주화 구상의 목표는 점령된 영토를 해방시키려는 세력들을 무력화시키기 위한 것이며, 이것이 바로 현재 이 지역의 불안정성을 격화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 교수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주장을 수용하면서, 민주적이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각국의 제도권 정치에 참가하고 있는 이집트의 무슬림형제단, 레바논의 헤즈볼라,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를 '불법 이슬람 과격세력'으로 규정했다.
1967년 이후 이스라엘에게 살해당하고 고향에서 추방당한 아랍인들의 숫자와 아랍인들이 살해한 이스라엘인들의 숫자는 비교 상대가 되지 못한다. 현재 이스라엘 감옥에는 1만여 명의 아랍인들이 수감되어 있지만, 팔레스타인을 비롯한 아랍 정부들의 감옥에 이스라엘인들은 없다. 그렇다면, 누가 과격한지를 다시 정의할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 점령지 팔레스타인에서의 인권 유린과 살해 위협은 일상적인 것이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이런 상황에 처한 '팔레스타인 해방'을 대의로 내세운다. 따라서 중동 지역의 불안정성의 해결방안은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을 중지시키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또 그는 이스라엘/헤즈볼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공포에 빠졌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이전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의 무자비한 폭격에 레바논 전역에 폐허로 변했다는 사실과 무방비 상태로 있던 레바논인들이 얼마나 살해되었는지는 무시되었다. 또 이번 전쟁을 통해 공포에 빠진 것은 헤즈볼라 만큼의 화력을 가진 무장단체를 갖지 못한, 무차별적인 폭격을 당하면서도 제대로 대응을 하지 못한, 그래서 미디어에서조차 거의 잊혀진 팔레스타인인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스라엘/헤즈볼라 전투가 '이스라엘의 생존문제'와 직결된다는 인식을 각인시켰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자국의 방어를 위해 전쟁을 수행한다는 논리로 귀착된다. 이 논리는 이스라엘의 1967년 전쟁 승리 이후 몇십 년 간 계속된 야만적인 민간인 살해가 일상화된 점령 정책을 문제 삼지 않은 채, 이번 전쟁을 팔레스타인의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시작했다는 일반화된 정설에서 출발한다.
전쟁 시작 시점이 언제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누가 공격자이고 누가 방어자인가를 결정하는 문제다. 분명히 전쟁 시작 시점은 이스라엘이 주변 국가 영토를 불법 점령한 전쟁을 시작한 때다. 따라서 이번 전쟁에서 헤즈볼라가 승리했다면, 그것은 '이스라엘의 생존 문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타국 영토 불법 점령 문제'의 지속 여부가 불투명하게 된 것이다.
레바논의 헤즈볼라는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당시에 창설됐고, 팔레스타인의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점령정책에 대항하는 팔레스타인 민중 봉기과정에서 1988년 창설됐다. 이러한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현실적인 목표는 불법 점령된 영토를 되찾는 것이다.
그런데 인남식 교수는 "이슬람주의자들이 신앙적 순수성을 주장하며, 이슬람정치의 수월성과 과거 아랍 문명 흥성기의 영화를 주장한다"고 강조한다. 이것은 헤즈볼라와 하마스의 현실적인 목표를 도외시한 것이며, 이 지역 분쟁의 핵심 문제가 '영토와 추방된 주민들'이라는 것을 은폐한다. 이슬람주의자들은 서구의 의회 민주주의 제도를 수용해서 제도권 정치에 참가하고 있으며, 기독교인들과도 연대하고 있다. 이들은 아랍 문명 흥성기의 영화를 주장하기보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세적인 정책을 방어하는 것이 현재 직면한 목표다.
이제 미국의 허구적인 중동 구상은 재구성되어야 할 시점이 아니라 폐기되어야 할 시점이다. 미국이 주장해 온 중동 민주화 구상의 허구성은 팔레스타인에서의 민주적인 선거를 통해 하마스 정부가 수립된 직후, 하마스 정부를 붕괴시켜야 할 테러리스트 정부로 규정함으로써 이미 백일하에 드러났다.
나아가 이번 전쟁을 통해서 드러난 것은 '미국의 중동 민주화정책의 파탄'이 아니라, '미국-이스라엘의 중동지역 패권'의 균열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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