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의 <마르크스와 트로츠키>(한울출판사 펴냄)를 둘러싸고 한국 사회에서 오늘날 트로츠키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토론이 계속되고 있다. 그 중에는 민주노동당의 정책실장을 지낸 이재영 씨와 국내의 대표적인 트로츠키주의자 단체 '다함께'의 이정구 씨가 한 차례씩 주고받은 논전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번에 이재영 씨가 다시 재반론을 <프레시안>에 보내왔다. 그는 이번 글에서 "이정구 씨의 반론에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오류와 근거 없는 논리적 비약이 많다"며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좀 더 솔직하게 담았다. 그는 "지금 우리에게 트로츠키, 레닌, 마르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훈고학이 과연 필요한가"라는 질문도 던지고 있다.
<프레시안>은 트로츠키의 한국적 수용을 둘러싼 이번 논란이 현재 한국 진보 세력이 안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를 가감없이 보여주는 한 지표라고 판단해 기고문을 소개한다. <편집자>
민주주의 없는 사회주의는 없다
'다함께'의 이정구는 내가, 트로츠키가 크론시타트 반란을 파괴했다고 비판한 것이 "러시아 혁명에 대한 무지"라고 주장한다. 사실 러시아 혁명을 잘 알지는 못한다. 잘 모르는 내가 알고, 잘 아는 그가 모르는 사실 몇 가지만 확인하자.
이정구는 크론시타트 진압 당시 트로츠키가 외지에 출타 중이었으며, 군사령관이 아니라 '당 전쟁 정치위원'이었다고 변명한다. 이런 논리대로라면 내전을 승리로 이끈 트로츠키의 업적 역시 대부분의 전투 현장에 없었다는 이유로 무시되어야 한다.
반란이 진압되기 며칠 전인 3월 5일, 트로츠키는 국방 인민위원 자격으로 크론시타트 수병들에게 무조건 항복을 통첩했는데, 이 일도 타자병이나 전신병의 책임이지 트로츠키의 책임이 아니라고 구차하게 변명해 보라. 내가 알고 싶은 것은 1980년 5월에 전두환이 어디에 있었는가가 아니다. 나는 혁명가 트로츠키가 무엇을 했는가를 묻고 있다.
이정구는 '트로츠키가 진압하지 않은' 크론시타트 반란을 달가워하지도 않는다. 안타깝지 않은가? 트로츠키가 현장에 있었다면, 더 많은 치적을 쌓았을 텐데. 이정구는 반란이 "노동자와 농민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면서 벌어진 사건"이고, 반란자들이 "소비에트 내에서 볼셰비키의 제거를 주장"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한다.
크론시타트 반란자들이 '농민 신병'이라서 반란이 일어났다는 말도 거짓이다. 그 해 2월 페테르스부르크에서는 푸틸로프 공장을 비롯한 노동자 파업이 줄을 이었고, 크론시타트 반란자들은 파업 노동자들과 연계하며 그들의 요구 사항을 봉기에 내걸었다. 이에 볼셰비키 사병 당원의 3분의 1이 공식 탈당하여 봉기에 동참했다.
반란자들이 "볼셰비키 없는 소비에트"를 주장했다는 것도 거짓이다. 그런 유언비어는 국외에서 밀류코프(Miljukov)가 만들어낸 것이고, 반란자들은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로"의 연장선에서 "소비에트에서의 선거"를 주장했다. 이정구의 러시아 혁명 얘기는 역사 날조다.
이정구는 "크론시타트 수병 반란을 두고 이재영이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 운운하는 것은 트로츠키의 ABC에 동의하는 것은 고사하고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주장한다. 크론시타트 수병들은, 노동자 파업을 봉쇄한 계엄령 철폐, 사회주의자 석방, 집회의 권리, 무엇보다도 자유로운 소비에트 선거를 요구로 내걸었다. 이게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가 아니면 도대체 무엇인가?
나는 '트로츠키의 ABC'는 잘 모르지만, 민주주의나 사회주의는 조금 안다. 그래서 노동조합에 대한 트로츠키의 입장이 맘에 들지 않는다. 노동조합의 자주성을 부정하면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어떻게 만들겠다는 것인지…. 노동조합의 자주성은 자신이 권력을 가졌는지 그렇지 않는지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할 대상이 아니다.
"소비에트 러시아 노동계급의 생산적 산업조직은 매우 큰 과제를 짊어지고 있다. 어떠한 과제일까? 그것은 물론 노동의 이익을 대표하여 국가와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제휴하여 사회주의 경제건설을 실현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조합은 원칙적으로 새로운 조직이며, 종래의 노동조합과 다를 뿐 아니라 부르주아 사회의 혁명적 노동조합과도 다르다." ('테러리즘과 공산주의' 중)
혁명과 내전기의 상황에서 볼셰비키와 트로츠키가 옳았는가, 노동자 반대파가 옳았는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발달한 현대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리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민주주의의 최고양식으로서의 사회주의의 차원에서 당시 레닌이나 트로츠키가 한 일은 카니발리즘에 가깝다. 그래서 노동자 반대파들이 트로츠키를 짜르 시대 반동 장군이었던 트레포프에 견주어 비아냥댔던 것이다.
"인민위원 지배 타도! 권력 인수 당시 공산당은 노동자들에게 모든 것을 약속했다. 그런데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3년 전 우리는 '당신들이 원할 때는 언제라도 당신들의 대표를 소환할 수 있고 당신들은 새로 소비에트 선거를 할 수 있다'고 들었다. 그래서 우리가 크론시타트에서 당으로부터의 압력이 없는 새 선거를 요구했을 때 새로 부상한 트레포프 트로츠키는 이렇게 명령했다. 총알을 아끼지 말라!" (<Pravda o kronstadte> 중)
민주주의에 대한 트로츠키주의자들의 천박한 태도는 차베스에 대한 돈독한 애정으로도 확인된다. "21세기 사회주의를 주창한 차베스의 인기가 전 세계적으로 높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그가 인기 있는 이유를 알고 싶기보다는 그가 입법권까지 독점한 것이 걱정된다. '사회주의'나 '반미'를 내걸었다고 열광할 필요는 없다. 그런 군부 쿠데타 정치인은 나세르 이래 수없이 많았다. 국유화나 미국과의 긴장이라면 단연 박정희를 꼽는 것이 옳다. 차베스의 실험은 페론보다 훨씬 덜 진지해 보인다.
딱지 붙이기는 이제 그만!
이정구는 "이재영은 (…) 다함께가 범자민통 동지들과 야합이라도 한 듯하게 말"했다고 타박한다. 그런데 바로 몇 줄 아래에서는 "이들과 함께 연대하여 투쟁하는 게 무슨 잘못일까?"라고 반문한다. '야합'이든 '연대'든, 했다는 말인가 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이재영의 다함께 비판에는 안타깝게도 (…) 분파주의가 엿보인다"고? 다함께가 당당하고 분파적이지 않다면 "주사파와 어울려 논다"는 지적에 그저 "그렇다"라고만 답하면 되는 것 아닌가? 지금 필요한 것은 "국내외 보수언론조차 (…) 트로츠키주의의 영향력이 확대되고 있음을 보도"했다고 뿌듯해 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을 통해 그것을 이루었는가를 스스로 되짚어 보는 것이다. 어쨌거나 한국 트로츠키주의자들이 그 조상의 비극을 피할 수 있을 테니, 다행스럽다.
물론 다함께는 옳다. 옳기 때문에 옳다. 옳은 조직이 하는 일이므로 누구와 놀든 그것 역시 옳다. <마르크스와 트로츠키>의 정성진 역시 충실한 트로츠키주의자로서 다함께의 이 같은 철학 방법을 따른다. 정성진이 포스트모더니즘, 자율주의, 케인스주의가 청산되지 않은 포스트스탈린주의라 규정할 때 그런 방법론이 가장 빛을 발한다.
왜 포스트모더니즘이 포스트스탈린주의일까?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 경제학은 마르크스주의의 역사를 논하면서도 스탈린에 반대한 트로츠키의 투쟁에 대해서는 한 마디 언급도 없다. (…) 포스트모더니즘 마르크스 경제학은 스탈린주의를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전통에 포함시키는데, 나는 이것 역시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단지 이것뿐이다. 올바른 트로츠키주의가 스탈린주의는 마르크스주의가 아니라 했는데, 포스트모더니즘은 스탈린주의를 마르크스주의로 인정했으므로 포스트스탈린주의다!
자율주의는 왜 또 포스트스탈린주의일까? 이정구는 "정 교수의 책을 조금만 훑어 보아도 (…) 풍부한 논거에 입각한 논리적 비판을 하고 있음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안내해주는데, 그곳 어디에서도 자율주의와 스탈린주의의 관계에 대해 단 한 줄도 설명돼 있지 않다.
케인스주의에 대해 정성진은 이렇게 말한다. "진보 진영의 케인스주의로의 경도는 (…) 우리나라 진보 진영의 스탈린주의적 뿌리와도 무관하지 않다. (…)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이 반파시즘 인민전선 전술을 채택하면서 케인스와 같은 개량주의 경제학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이들과의 연합을 도모했던 데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런 논박은 모리스 돕이 케인스 비판에 비적극적이었던 데 대한 증명일 수는 있지만, 장상환, 신정완, 이병천 등 한국의 '케인스주의자'를 비판하는 논거는 못 된다. 대입논술에서 이런 주장은 '논리 비약, 논거 부적절'이라 채점한다.
훈고학은 더 이상 필요 없다
나는 트로츠키 같은 사람들이 서로 교류하고 투쟁하는 당대 혁명가의 한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반면 다함께 같은 자칭 트로츠키주의자들은 스탈린주의에 대항하여 투쟁한 망명객 시절의 언행에 더욱 주목한다. 그런데 스탈린주의라 불리는 체제의 이론적 기초와 정치적 토대의 상당 부분은 트로츠키 자신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그는 생산민주주의를 주장한 노동자 반대파에 대항하여 '지령 관료제'를 옹호하였고, 노동조합을 군대처럼 통제하기를 희망했다. 나는 그것을 보고, '트로츠키주의자'는 그것을 보지 않는다.
"흠집 없는 권위로의 도피", 고르바쵸프가 내건 "다시 레닌에게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이 경향의 시초이다. 모든 죄과를 스탈린에게 뒤집어씌우고, 최후의 보루를 지키고자 했던 이 발상은 마르크스 이래의 후계자들에게서 오도(誤導)와 왜곡보다는 계승이 더 많이 발견됨에 따라 스탈린에서 레닌으로, 레닌에서 마르크스로 후퇴를 거듭하다 결국 파산하고 만다.
우리는 이와 같은 경향에 아직도 둘러싸여 있다. 기존 사회주의 실패의 책임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다고 추정되는 트로츠키주의에 대한 의존, 청년 마르크스와 후기 마르크스를 대립시키고 후기 마르크스를 취사선택하는 알튀세르의 방식, 그리고 유행하는 외래 사조(思潮)를 직수입하는 한국 진보진영의 천박한 상업주의.
그러나 우리의 실패가 상당 부분, 현실 적합성에 대한 주체적 검증 없는 차용(借用)에서 비롯되었다는 점, 더욱 중요하게는 진보사상 또는 진보운동이라는 것이 특정 사상가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분리 곤란한 게슈탈트적(Gestalt的) 거대한 총체라는 점을 되짚어 볼 때, 특정한 이론적 권위로의 도피는 잠시의 모면책일 수는 있어도 진보사상 본래의 목적인 대중 조직, 국가 운영에 기여하기는 어렵다.
"모건 스탠리의 2004년 4월 26일 민주노동당 방문도 그런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었다. 이 만남에서 이재영 민주노동당 정책실장은 당이 직면하게 될 두 가지 시험대, 즉 시장과 대중 투쟁에 대한 개량주의자의 본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국유화 계획'을 묻는 모건 스탠리의 물음에 '특정 기업에 대한 국유화 계획이 없다'고 답변했다." (김인식, 『다함께』 30호, 2004)
개악보다 개량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나는 분명히 '개량주의자'다. 그런데 민주노동당이 2004년 4월에 '특정 기업에 대한 국유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가? 다함께는 그 때 '특정 기업에 대한 국유화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가? 현재는 있는가? 다함께는 개량주의자인가?
국유화는 카페 혁명가의 낭만이다. 혁명을 준비하는 정당의 정책실장이라면 어떤 이유로, 어떤 기업을, 어떤 시기에, 어떤 방법을 통해 국유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지, 국유화를 되풀이하는 데 멈춰서는 안 된다. 그의 책상 위에는 국유화 법률 공포안과 재정 충당 계획, 정치적 경제적 프로세스가 갖추어져 있어야 한다. 하지만, 2004년의 민주노동당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가질 필요도 없는 당이었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그렇다.
왜냐하면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에 있어 우리는 실천의 문제에서 이론상의 문제로, 실존하는 구체에서 검증되지 않은 추상으로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민주노동당이 집권하여 대한민국을 개조할 날이 멀지 않을 수 있지만, 그것은 겨우 한두 걸음을 내딛는 것이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로의 대장정이 아니다. 우리는 사회혁명을 이룰 정보와 지식, 확신과 권위를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의 어림과 나약함, 무지를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유물론은 다른 철학 체계들과는 달리 결코 자기완결적일 수 없다. 그것은 세상의 모든 부분을 다루는 여러 과학들과의 연결에 의해서만 비로소 실현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세계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고대 그리스의 과학과 물질 생산의 후진성은 그리스 철학을 명민한 추측으로서만 긍정하게 한다.
마찬가지로 19세기와 20세기 초의 마르크스주의 역시 진보적 원칙과 몇 가지 과학적 발견의 '절대적 구성'일 뿐이다. 19세기와 20세기의 유물론은, 유물론의 내용을 채울 과학이 충분치 않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그나마 성과조차 제대로 흡수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유물론 실현의 관념적 과도기였다. 무엇이 혁명을 배반케 했는가? 세상에 대한 무지, 무엇보다도 자신의 무지에 대한 무지.
후진사회주의 체제가 붕괴한 21세기에 이르러서야 마르크스주의의 얼굴을 덮고 있던 카리스마 가면이 벗겨졌다. 이제야 비로소 우리가 그것에 접근하고, 객관적으로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그러나 다함께처럼 "마르크스로 돌아가자(Return to Marx)"가 바른 길은 아닐 듯 하다.
마르크스로의 복귀 또는 그의 수많은 문헌에서 그럼직한 무엇인가를 찾아내는 것은 고순도의 결정을 얻기 위해 알코올 램프의 불꽃을 돋우는 아편쟁이의 모습에 가깝다. 그런 짓은 마르크스 훈고학(Marxolgy)이지, 마르크스주의(Marxism)가 아니다. 체제가, 매순간마다 재생산되는 물질과 의식의 최후 종합이라는 점에서 지난 150여 년을 거슬러 반추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우리는 마르크스주의라는 지평에서 이륙을 위한 가속을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이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땅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것과 땅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사실 모두를 안다. 우리의 이륙이 성공했을 때 그 비행기에 어떤 이름이 새겨질지를 알 필요는 없다.
생물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S. J. Gould)는 진리를 찾는 도상에서 인류가 지표 삼을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적절한 가르침으로 코코란 선장의 말을 인용한다.
"아직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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