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인권위는 "집시법에 따라 신고되지 않은 집회라 할지라도 경찰이 이를 해산함에 있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조선일보>는 29일 "인권위, 폭력시위대 낫에 살 찢겨보고 대답하라"는 섬뜩한 사설을 통해 공격했고, 30일 국정감사장에서 "인권위원장은 과연 대한민국 국민인가"(한나라당 이은재 의원)라는 맹공이 이어졌다.
"경찰의 6.28 태평로 작전은 유독 이상했다"
하지만 이날 인권위가 경찰 간부에 대한 징계조치를 내린 근거가 된 현장 보고서가 공개됐다. 인권위 전원위원회의 판단근거가 된 이 보고서에서 현장조사관은 "지난 6월 29일 0시 직후 경찰이 정국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시위대의 폭행을 유발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6월 28일 밤에서 29일 새벽으로 이어지던 당시, 경찰과 시민들의 부상자가 속출했다. 맨손의 여성시위대가 경찰에게 집단적으로 밟히는 모습이 언론의 카메라에 담길 정도로 유독 격렬한 충돌이 발생한 날이었다.
이날 상황에 대해 인권위 현장 조사관은 보고서에 "위원회가 경찰의 6.28 태평로 작전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이 작전이 양측 모두 다수의 부상자를 발생케 한 계기를 제공한 점과 작전의 형태가 평소의 작전과 아주 다른 특징을 보이고 있어 경찰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이런 작전을 하였는가를 밝히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적시했다.
경찰은 29일 0시 20분 경 태평로 위(조선일보, 코리아나 호텔 앞)에 설치된 차벽 틈으로 진압경찰 약 100여 명을 투입해 시위대 3000여 명이 있는 곳을 뛰어가게 했다가 오히려 고립돼 시위대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이어 후속 부대가 시위대를 진압하면서 다수의 시위대 부상자가 속출했다는 것이 인권위가 파악한 당시의 정황이다. 고립을 의도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생길법한 정황이다.
이는 <프레시안>의 당시 현장 생중계와 <시사인>등 일부 언론의 기사를 통해 알려진 내용이다.
이에 대해 인권위 조사관은 "통상의 경우 경찰은 시위대를 진압할 경우 차벽 앞에 진압경찰을 횡대대오를 갖추게 한 뒤 전체적으로 압박하여 시위대를 인도 위로 올라가게 한다"면서 "같은 날 종로입구에서도 이 같은 작전을 전개했는데 태평로에서는 소수 부대원을 시위대 한 가운데로 투입하는 특이한 작전을 전개했다"고 의문을 가졌다.
인권위 조사관은 "경찰지휘관들은 차벽이 무너지려고 하여 차벽을 잡아당기는 밧줄을 끊기 위해 부대를 투입했다고 주장하나 이런 목적이었다면 차벽 앞 공간만 장악하면 되므로 소수 부대원들을 전력질주하게 하여 시위대 한 가운데로 투입하는 방식의 위험부담이 큰 작전을 구사할 이유가 없다"고 지적했다.
경찰은 왜 무전기록을 제출하지 않았나
이 보고서에 따르면 기동대 단장과 부단장은 "시의회 골목으로 대원들을 동시 투입하여 시위대를 70~80미터 밀어부칠 계획이라 소수부대가 고립될 위험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관은 "이런 주장은 40중대(최초 투입된 100여 명)를 대한문에 진격시킨 계획과 부합하지 않고, 중요 주요 작전을 수행하면서 부단장과 단장이 상호 무선 교신하여 타이밍 조절을 하지 못한 이유가 해명되지 않아 믿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우발상황이 발생했다'는 지휘관의 해명에 대해서도 인권위 조사관은 "경찰로서는 당시 무전기록을 제출하면 이런 의문을 명쾌하게 해명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제출하지 않는 사실도 이런 항변을 믿기 어렵게 하는 요소다"고 지적했다.
"폭행 유발 작전 펼친 개연성 배제 못해"
결국 인권위 조사관은 "경찰의 위와 같은 작전구사와 고립상황 발생 이유에 대해 설명을 전체적으로 믿기 어렵고 경찰이 당시 정국반전의 계기를 마련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정부의 장관고시 강행으로 인해 격앙되어 있던 시위대 한 가운데로 투입해 시위대의 폭행을 유발하기 위한 작전을 펼쳤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고했다.
인권위 조사관은 "실제로 6.28 이후 대규모 충돌이 발생했고 시위대가 대원들을 폭행하는 장면이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촛불시위가 여론으로부터 고립되었고 시위대들이 대규모로 다치면서 촛불시위 참가가 위험한 행위로 되어 촛불시위는 적극적인 참가의지를 갖는 사람만이 참가하는 것으로 참가범위가 축소되었고, 이후 경찰이 촛불시위에 대해 원천봉쇄와 검거위주의 강경작전을 펼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인권위 조사관은 "그러나 이러한 개연성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인 증거를 발견할 수 없고 경찰이 관련증거로서 중요한 태평로 상황 관련 무전기록도 제출하지 아니하므로 추가조사도 한계에 부딪힌 상태"라고 보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권위 조사관은 "조사 결과를 종합하면 4기동단장은 40중대와 306중대를(최초 투입부대) 투입한 이후 후속부대투입을 불상의 이유로 지연하여 306중대 대원을 위험에 빠뜨리게 한 작전 실패와 후속부대 대원들 진격 시 이 대원들이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폭행하여 상해를 입히는 등 인권침해행위를 한 것을 통제하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폭력충돌을 유도하기 위한 작전인지는 판단할 수 없더라도 작전 실패 자체에 대한 책임은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진실, 밝혀질까?
지난 27일 일부 경찰 간부에 대한 인권위의 징계 권고는 이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이 보고서가 공개된 30일 국감에서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이것이 사실이라면 5공 때도 발생하기 어려운 일이 생긴 것"이라며 "보고서에 적시된 동영상을 당장 제출해 달라. 국회차원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반면 한나라당 정태근 의원은 "이 보고서의 작성자, 증언자가 확실치 않다"면서 "관련 자료를 당장 제출해달라"고 요구했다.
인권위의 한 관계자는 이 보고서에 대해 "결론적으로 시위대의 폭력을 유도하기 위한 경찰의 '이상한 작전'에 대해 심증은 매우 강하지만 결정적 물증은 찾기 어려웠다는 내용이다"고 정리했다.
당일 현장은 여러 언론과 누리꾼들의 동영상 카메라로 기록된 바 있고, 경찰이 인권위에 제출을 거부한 무선기록을 입수한다면 '진실'을 규명하기는 그다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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