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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타도'가 등장한 복고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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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 타도'가 등장한 복고의 시대

[기자의 눈] '촛불'은 왜 '광장'을 벗어나 '거리'로 뛰어들었나

24일과 25일 '촛불문화제'는 '가두시위'로 '진화'했다. '거리의 정치'가 한창이던 때도 좀처럼 뚫리지 않았던 세종문화회관-미국대사관 앞길을 수천 명의 시위대가 휘젓고 다녔다.

같은 날 민주노총과 전교조, 흔히들 말하는 '운동권 프로'들이 운집한 서울 여의도의 '차분한 모습'과는 극명한 대조를 연출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때 어떤 사람들은 "이명박 후보가 집권하면 '지난 10년 간의 성과'가 다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고 주장했고, 또 다른 사람들은 "지난 20년 간 한국 일반 민주주의의 진전은 급격한 정치적 퇴행을 용납하지 못한다"고 반박했었다.

이 논의는 '포스트 87년 체제'에 대한 논의로도, '어쨌든 이명박은 막아야 한다'는 신판 비판적 지지론의 이론적 근거로도 작용했다.

하지만 이명박 후보는 530만 표라는 압도적 차이로 대통령이 됐다. 그런데 정부 출범 이후 석 달도 되지 않아 '일반 시민'들로부터 '독재 타도'라는 고전적 구호가 등장했다. 역시 '이명박 시대'를 막았어야 하는 것인가? '민주화 세력' 재결집의 신호탄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촛불 정치'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정당과 선거라는 제도정치 기제에 대한 강력한 경고장이다. 이 경고장은 '전진기어 넣은 채 후진'을 감행하고 있는 자칭 '선진화 세력' 뿐 아니라 야당 기억을 10년 동안 다 까먹어 버린 '민주화 세력' 모두를 향한 것이다.

지난 10년 간 익숙했는데 왜?

촛불이 차도로 뛰어든 24일 밤, 저지하고 나선 경찰과 맞선 학생들, 386 직장인들은 "평화적인 의견 개진을 왜 막나. 지금이 독재시대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 2006년 겨울 두 사람의 농민이 경찰의 강경진압에 사망했지만, 정확한 책임 소재는 아직도 가려지지 않았다. ⓒ프레시안

하지만 경찰들은 아마도 어리둥절했을 게다. 김대중 정부에서도 노무현 정부에서도 '평화적인 의견개진'은 폭력적으로 억압당했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롯데호텔에서 농성하던 파업 노동자들은 경찰특공대에 의해 진압당했고 2001년 말 구조조정에 반대하며 평화롭게 길을 걷던 대우자동차 노동조합원들은 백주대낮에 경찰로부터 그야말로 '린치'를 당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이라고 별다르지 않다. '촛불시위를 강경진압하는 장면'이라며 경찰이 방패로 무방비한 시위대를 심하게 가격하고 있는 내용이 담긴 동영상은 사실 지난 해 3월의 풍경이다.

일흔을 넘긴 농민이 경찰에 맞아 죽은 것도, 진압책임자였던 경무관이 직위해제 5개월 만에 현직에 복귀한 것도 다 노무현 정부 때 생긴 일이다.

이러다 보니 현장의 의경들이나, 경찰 수뇌부나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을 게다. 기자의 눈으로 들여다봐도 세종로가 뚫렸는데도 경찰이 이 정도로 '양호하게' 대응하는 걸 보면 "눈치를 꽤 보는구나"싶기도 했다.

'민주 시민', 일반 시민'과 '운동권'으로 분리되다

1997년,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 이후 노무현 정부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에서 '일반 시민'과 '운동권'은 완벽하게 분리되기 시작했다.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지금 경제가 어려운데"라는 진부한 훈계말고도 "이제는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 때가 아니냐"는 근엄한 훈계가 뒤따랐다. 신지식인 담론, 주식 열풍을 통해 '10대 보다 못한 20대, 88만원 세대'를 만들어 낸 정권도 이들이었다.

금배지를 단, 아니면 코스닥 성공신화를 창출한 '386 의장님'들은 "1990년 소비에트 몰락으로 세상이 바뀌었듯이 우리 정권 창출로 한국은 완전히 바뀌었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보수언론과 손을 잡고 '더 많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시대착오적 행태로 몰아붙이며 "신자유주의는 대세다. 대안 없는 비판은 필요없다"고 매몰차게 꾸짖었다. 민주노동당(진보신당 포함)은 물론 구 열린우리당 내에서 근본적 목소리를 낸 인물 가운데 '386세대'는 있을지언정 '386명망가'는 단 한 명도 없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공공부문 민영화, 금융화, 무분별한 세계화가 '선진화'로 통한 것은 이명박 정부에 의해서가 아니라 지난 10년 정권에 의해서다. 이명박 대통령은 '더 많은 선진화'라는 이들의 주장을 충실히 계승한 것에 불과하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1987년 체제의 기반이었던 '민주 시민'은, '일반 시민'과 '운동권'으로 완전히 분리됐을 뿐더러 양자는 적대시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물론 제대로 된 담론도, 전술도, 헌신도 보여주지 못한 '운동권'의 책임도 적지 않다.

'민주화 세력'과 '선진화 세력'의 합작품

"세상이 달라졌다"고 10년 동안 주장하다가 갑자기 대통령 선거가 닥치니 "아직도 위험하다"고 말을 바꾸는 데야 믿어줄 사람이 어디 있겠나.

지난 대선과 총선, 수도권이나 20대·30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 지지율 급등의 주요한 원인은 안심하고 이들에게 한 표를 던질 수 있게 만들었던, "이제는 세상이 바뀌었다"고 외쳐온 '민주화세력' 덕분이란 이야기다.
▲ 이제 최루탄만 등장하면 나올 건 다 나온 건가. ⓒ프레시안

어쨌든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바로잡으러 나섰으니 늦었지만 그래도 다행인가? 1997년 이후 정권들이 즐겨 사용한 'OECD 기준'으로 보면 '선진국 시민'들도 종종 거리로 나선다. 전쟁, 세계화, 연금 및 재정정책 등에 대한 찬반논란이 단골 메뉴다.

하지만 2008년 대한민국 서울 세종로 거리의 구호는 고전적이게도 '독재타도'다. 이명박 정부가 큰 흠결 없는 공정한 선거를 통해 선출된, 정통성을 갖춘 정권이라는 점을 부인하긴 힘든데도 말이다.

2002년과 2004년의 촛불은 광장에서 피어났다. 돌이켜 볼 때 한미행정협정 개정과 탄핵 반대라는 요구가 완전히 관철된 것은 아니긴 하다.

하지만 촛불이 광장을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2002년에는 이회창 한나라당 대선 후보마저 주위를 기웃거렸고 2004년에는 한나라당과 민주당 내에서 "사실 나는 탄핵을 반대했다"는 고백이 잇달았다. 촛불은 촛불 이상의 의미를 지녔고 광장은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에게 충분한 압박이 됐다는 이야기다.

2002년보다 1987년에 가까운 2008년

그러나 2008년의 상황은 다르다. 대선과 총선을 대승으로 마무리한 정부여당은 콧방귀도 뀌지 않고 야당은 있으나마나, 아니 걸리적거리는 애물단지에 불과하다. 이러다보니 촛불이 광장을 벗어나 거리로 뛰어나올 수밖에. 광장과 정치적 제도의 연결고리가 끊어진 이상 '거리의 정치'가 부활하는 것은 필연적이다.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의견을 제도권으로 수렴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야당과 의회의 부재, 검찰-국정원-경찰-노동부 등으로 이어지는 관계기관 대책회의의 부활, 정책 반대에 대한 응답으로 '하사'되는 '특별사면 고려', 환율 하락으로 인한 국민소득 하락, 남북관계 경색…. 도래한 복고의 시대에는 복고적 방법으로 대응할 수밖에.

아 참, '선진화'된 풍경이 하나 있긴 하다. 정부정책에 반대해 거리로 뛰쳐나오던 프랑스 고등학생들처럼 우리 고등학생도, 심지어 중학생도 정치적 발언을 하며 거리로 뛰쳐나왔다. "사르코지를 벤치마킹하겠다"던 이명박 대통령의 '치적'이다.

'그래도 경제는 살렸던' 전두환 시대와 '그래도 민주주의는 진전했던' 민주 정권의 장점이 아니라, 단점만 고루 겸비한 시대다. 역설적이게도, 이명박 정부의 도움으로 일반시민과 '운동권'이 재결합해 '민주 시민'으로 환골탈태할지도 모르겠다.

1987년 절정을 이뤘던 '거리의 정치'가 요구한 것은 대통령 직선제와 소선거구제, 즉 '제도'였다. 20년 만에 부활조짐을 보이는 '거리의 정치'가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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