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일어난 지 딱 1년이 됩니다. 21세기 인류 문명의 전환점으로 기록될지 모르는 후쿠시마 사고, 그 1년을 맞아서 '프레시안 books'는 특집호 '후쿠시마 그리고 1년'을 준비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후쿠시마 사고를 깊고 넓게 볼 수 있는 다양한 시각을 책과 함께 선보입니다. <편집자> |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덕분'이라고 하기에는 지금의 비극이 너무 크고 앞으로 함께 풀어갈 일도 첩첩이긴 하지만, '탈핵'은 시나브로 대세가 되어가고 있다.
진보 정당과 환경 단체들이 앞 다투어 '탈핵 시나리오'를 제시하는 것도 탈핵의 현실성을 웅변한다. 즉, 독일에서 사회민주당과 녹색당 연정이 어떠했다더라, '석유 생산 정점(Peak Oil)'이라는 게 있다더라 하는 이야기의 추상성은 이제 2012년 한국에서 어찌할 것인가 하는 구체성으로 나아가고 있다.
핵 폐기장 부지를 둘러싼 갈등만 꼽아보아도 1990년의 안면도, 굴업도, 위도를 찍으며 온갖 곡절과 아픔이 있었고, 이를 양분삼아 한국 반핵 운동의 이론과 내용도 적지 않은 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여전히 사회의 상식은 '핵 발전 말고 대안이 있느냐'는, 대통령부터 장삼이사 촌부까지 똑같이 공유하는 단순한 논리에 머물러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핵 발전이 정말 대안이 되는지를 치열하게 파헤치고, 대안은 없는 것이 아니라 찾지 않을 뿐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사람과 노력이 부족했던 탓이다.
반핵/탈핵의 논리 투쟁은 양과 질, 모두에서 충분해야 한다. 예를 들어 우리가 내는 전기 요금의 일부를 가지고 매년 수십억 원씩을 쓰며 찬핵 홍보 행사를 벌이는 원자력문화재단의 문제는 조만간 끝장을 보아야 한다. 아무리 정확하고 멋진 반핵 논리를 이야기한다 하더라도, 하루 종일 지면과 영상 광고에서 넘쳐나는 찬핵 메시지 속에서 희석되어서는 이길 도리가 없다. 이따금 좋은 토론회와 연구 보고서와 캠페인으로는 안 된다. 탈핵의 눈과 입이 양적으로도 많아져야 하고, 찬핵의 손과 발을 구체적으로 잘라낼 궁리를 해야 한다.
그러나 논리의 정합성, 즉 탈핵의 설득력을 질적으로 갖추는 일은 기본이다. 주어지는 질문들이란 실은 아주 간단한 것들이다. 경제 성장을 하려면 핵 발전을 통한 저렴한 전기가 필수적인 게 아닌가? 재생 가능 에너지가 빠른 시일 내에 충분히 공급될 수 있는가? 내일 당장 핵발전소를 중단시키면 촛불 켜고 살 것인가? 찬핵과 반핵을 가르는 모든 이야기들은 결국 이 질문들의 변주이고 응용이다.
▲ <에너지 전환의 현장을 찾아서>(이필렬 지음, 궁리 펴냄). ⓒ궁리 |
수많은 소위 '핵 전문가'들은 자신의 전공 영역밖에 모르면서도, 집단으로서 전문가 행세를 해왔다. 여기에 제대로 대항하기 위해서는 포괄적인 사고와 종합적인 제안이 필수적이고, 전문적 지식과 상식을 연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마침 이필렬은 화학 전공자로서 과학기술의 사회적 성격과 현실 정치의 문제를 결합시키는 간학문적 접근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독일의 여러 도시를 우리 대신 탐험하며, 다른 현실이 가능함을 알려주었다.
이 책에서 소개한 사례들은 지금도 충분히 시사적이다. 한국보다 위도도 높고, 이 때문에 일조량도 많지 않지만, 통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은 미래 태양 에너지의 메트로폴리스를 시도하고 있고, 쇠락한 탄광 도시 루르는 태양 삼각 지대로 변신하고 있었다. 아헨에서는 태양 전기에 제값을 쳐주는, 일종의 '발전 차액 지원 제도'가 시행되어 태양광 보급에 큰 성과를 올렸고, 이는 재생 가능 에너지법의 도입으로까지 이어졌다. 정책적 틀 못지않게 주민들의 행동과 사회 운동의 중요성도 빠짐없이 언급되었다.
화석 에너지와 핵에너지가 중앙 집중적이고 거대 에너지 시스템이 갖는 본성을 가졌다는 것, 때문에 대안의 기본 방향이 지역 분산적이고 분권적이며 민주적인 '동네 에너지'로 가야 한다는 것은 반핵 운동 진영 내부에서는 일종의 사회적 합의가 되었다. 태양 에너지로의 전환은 거대 자본, 거대 기술로부터 벗어나는 것이고, 세계 시장 중심에서 지역 시장 중심으로 회귀하는 그야말로 '대전환'이라는 메시지였다.
▲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강양구 지음, 사이언스북스 펴냄). ⓒ사이언스북스 |
<아톰의 시대에서 코난의 시대로>는 필수적인 몇 가지 영역에서 종합적인 대안을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평가할 만하다. 석유 고갈 위기와 기후 변화 위기를 함께 유의하면서, 주택, 바이오매스, 바이오연료, 태양광과 풍력, 지역 에너지, 북한 에너지 등을 두루 짚으며 상호 연결되는 에너지 전환의 그림을 그려보였기 때문이다. 풍력 발전 단지 입지 논쟁에서 보듯 재생 가능 에너지가 무조건 선이 아니며, 바이오 연료에도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다는 것도 환기되었다. 인권과 환경과 지역 사회를 함께 생각하는 에너지 정책 요구는 그 당시의 접근에서 확실히 진일보한 것이었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2011년에 개정판이 나올 때에도, 저자가 머리글에서 밝힌 바처럼 본문에 추가적인 수정이 없었던 것은 대안의 짜임새가 그대로 유효했기 때문이다. '코난의 시대'를 유쾌히 상상하자는 저자의 주문(注文)은 이제 함께 탈핵의 한국을 불러오는 주문(呪文)으로 삼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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