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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권력자들에 대한 증오보다 '인민'에 대한 동정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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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권력자들에 대한 증오보다 '인민'에 대한 동정이 먼저다

[김정은의 북한] <下> 소용돌이 속의 한반도, 해법은?

☞ <上> 황장엽이 솔제니친? 김정은이 '청년대장'?
☞ <中> '3대 세습'은 왜, 어떻게 가능했나

견인(牽引)에서 유인(誘引)으로

소용돌이 속의 한반도에도 해법은 있지만 너무 많이 얽히고설켰다. 우리에겐 버겁고, 무겁다. 밖으로는 미국과 중국이 가장 중요한 변수다. 더구나 경제, 군사, 지도력 등 경성(硬性, hard power)과 연성(軟性, soft power) 권력이 총량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중국은 상승세에, 미국은 하강세에 있다. 숫자로 보면 아직도 미국의 GDP(2009년 말 기준)는 전세계의 24.4%, 유럽연합(EU) 21.6%, 일본 8.8%, 중국 8.6% 순이지만.

한국은 이 틈새에서 정제되고 세련된 "친 통일지향적"("unification-friendly) 외교, 국방안보 전략,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하는 것이 최대, 최선, 최고의 과제다. 남북간에는 다음 몇 가지 우리의 기본 자세 전환이 요구된다고 본다.

첫째, 현 정부는 북한주민의 참담하고 참혹한 실상을 알고 또 알리되,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현 북한 권력실체를 대화와 협력의 파트너로 맞이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의 철벽을 여는 열쇠는 일차적으로 남·북 당국자다. 따라서 양측 관계자의 공식 접촉과 원활한 협조 틀에서만이 대화, 교류, 협력도 가능하다는 '현실적 인식'이 요구 된다.

동양정치문화권의 실사구시(實事求是)와 미국, 유럽의 "벌거벗은 현실주의"(naked realism)는 많이 다르지만, 국익 챙기기 앞에는 동·서양 모두 이념도 체제도 뒷전으로 밀린다. 보기 몇 개만 들어보자.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 서독 수상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 1933년 미 대통령 루스벨트의 당시 스탈린 소련 독재체제와의 수교가 그 좋은 보기다.

2차 대전 때 미·영·소 연합세력(Allied Powers)과 나치 독일, 파시스트 이탈리아, 군국주의 일본의 3각 동맹(Axis Powers)도 현실주의의 산물이다. 미 대통령 닉슨과 마오쩌뚱의 정상회담(1972년), 미·중 수교(1979년)도 마찬가지다. 중·소 국경분쟁(1969년 3월), 중국의 베트남 국경 침공(1979년 2월)도 국익이 이념을 앞서는 사례다.

둘째, 우리는 북한 소수 권력 지배자를 증오의 눈으로 보기에 앞서, 그 틀과 터에서 신음하는 절대 다수 인민대중을 동정하는 마음을 먼저 갖도록 노력해야 한다.

셋째, 당장 우리 눈앞에, 코앞에 보이는 핵, 미사일 등 걸림돌에 집착한 나머지 더 큰 틀의 우리의 앞날과 앞길을 못 보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도 안 된다고 본다. 이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전형이다. 지난 65년 동안 "섬 아닌 섬"의 삶을 넘어, 다시 "한반도의 삶"을 복원하겠다는 눈으로 앞을 내다 볼 필요가 있다.

북을 돕는 것이 단기적으로 북한 집권세력과 군사력에 보탬을 준다는 생각에 앞서, 통일의 길에서 한반도와 유럽-아시아 대륙을 잇는다는 경영 마인드(management mind)를 갖고, 투자 개념으로 보는 인식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김대중 정부의 "철의 실크로드"가 그 구체적 대륙 전략이다. 21세기 "자원 전쟁"에서 그 자원의 보고(寶庫)를 잊어서도, 잃어서도 안 된다.

끝으로 가장 중요한 인식은 남북통일은 남한과 북한 안에 있는 걸림돌, 남·북한 간의 걸림돌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주변 관련 당사국들-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의 정책과 전략이 남북 "친 통일지향적"이 되도록 유인, 유도하는 것이 급선무다.

따라서 한국이 미국을, 북한이 중국을 붙들고 매달리고, 끌어안으려는 "견인"(牽引) 정책과 전략이 아니라, 남북관계의 진전을 통해 이들 나라들이 우리에게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관심을 쏟고, 협조와 협력을 유도하는 "유인"(誘引) 정책과 전략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견인의 견(牽)자에는 소(牛)가 안에 들어있고, 유인의 유(誘)자에는 말(言) 옆에 우수할 수(秀)가 붙어 있다. 견인은 물리적 힘을, 유인은 말(외교)과 머리의 힘을 근간으로 한다고 할까? 위 생각을 머리에 두고, 좀 더 구체적으로 우리의 주변과 국제 정치경제, 안보 상황을 살펴보자.

북한은 외톨이, 외딴섬인가?

북한이 외톨이는 맞다. 하지만 외딴 섬은 아니다. 얼마 전 TV 프로그램 "동물 세상"(Animal Planet)에서 재미있는 한 광경을 보았다. 아프리카 대평원에서 배가 잔뜩 고픈 사자 한 마리가 저녁에 어슬렁거리며 숲 속을 지나다가 고슴도치 한 마리를 발견하고 발로, 입으로 이렇게 저렇게 잡아먹으려 애를 쓰다가 결국 포기하고 마는 장면이었다.

국내정치보다도 상대적으로 국제정치는 먹고 먹히는 약육강식(弱肉强食)의 "정글 법칙"의 싸움터라고 상상해 본다면, 오늘의 북한은 사자는 아니고 고슴도치에 훨씬 더 가깝다. 북한은 지구상의 약 230여 개 나라들 가운데 인구비례로 가장 군대가 많고, 정부예산 군사비 비중이 30%, 정규군만도 110만 명이 훨씬 넘는다. 지난 세기 1960년대 초에 등장한 북한 용어를 빌리면 "전군 간부화, 전군 현대화, 전민 무장화, 전국 요새화"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가장 극도화된 병영국가다.

따라서 밖에서 어느 나라 누가 뭐라 하든 상관없다는 것이다. 막무가내다. "이제까지도 우리는 우리식대로 살아왔고, 버텼으며, 앞으로도 우리식대로 살아가겠다"는 배짱이다. 바깥세상에 대한 이러한 북한 지배층의 태도, 정책, 전략이 국제적으로 고립을 자초한 것도 사실이다.

3대 세습 기도가 가능한 것도 바로 이러한 바깥세상 그 누구의 눈치도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북 지도층의 "북한식 오만의 결과물"이라고 볼 수 있다. "배타적 자기도취 사고증후군"이 낳은 정치행태다.

간추리면, 북한은 사실상 국제정치경제로부터 단순히 "고립" "예외"가 아니라, "열외"(列外)다. 하지만, 북한은 고립무원(孤立無援)의 상황에서 붕괴한 현 칠레 영토인 남태평양의 외딴 섬 이스터 아일랜드는 아니다. 특히,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남북관계 악화로, 북한의 마지막 생명줄인 중국과의 밀착이 가속화하고 있어 남북관계는 더욱 꼬이고 있다. 안타까운 일이다.

큰 틀의 변화 : 해법은 있는가?

대한민국은 G20 정상회의 개최 준비로 바쁘다. 남미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FTA)에 이어 세계 1, 2위를 다투는 두 거대시장인 미국과 EU와도 FTA를 체결해 의회 비준만을 남겨 놓고 있다. 하지만 국제경제 틀에 몰입되면 될수록 기회와 이득도 크지만, 그 함정에 빠질 위험과 위기도 만만치 않다. 현 정부는 이 기회이자 도전(위기)을, 우리나라 경제발전과 국격(國格) 제고에 지도력과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이 소용돌이 속에서 우리에게 불어닥친 가장 큰 기회와 도전은 미중관계다. 미국과 EU, 중국 사이에 낀 한국은 지금 복잡하게 얽혀있다. 군사적으로는 한국은 미국과 동맹이고 중국은 북한과 동맹이다. 경제적으로는 통상, 투자, 인적 교류 등 대부분 분야에서 한중관계는 미국과 일본을 제치고, 상대적으로 훨씬 빨리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미국, EU, 일본과 인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등 기본가치를 공유하고, 이 영역에선 우리와 중국은 아직도 상충, 상반한다.

11~12일 G20 정상회담의 사전 준비로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 경주회의(10월 22~23일)에서 합의한 시장결정 환율제도 이행, IMF 선진국 지분 6% 이상 개도국에로의 이전, 경상수지 목표제 도입 등은 대체로 긍정적인 진전이다. 이 재조정은 세계경제가 미국, 유럽에서 서서히 아시아로, 선진국에서 신흥개도국으로 지각변동을 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더 근본적으로는 미국, 영국 등이 만든 틀 속으로 이제는 G5, G7(8)이 아니고, 신흥 국들까지 끌어들여, G20 속에서 누가 덕을 더 보고, 누가 피, 땀, 눈물로 번 돈을 아무도 모르게 감쪽같이 잃어버리게 되는가를 꼼꼼히 눈을 부릅뜨고 챙기지 못한다면,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우를 범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성공 사례 두 가지

이 거센 국제정치경제의 파고(波高) 속에서 우리가 통일지향적인 한반도의 평화구축과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해법(교훈)은 지난 세기의 두 가지 큰 성공사례-소련, 동구 공산전체주의 일당 독재체제의 소멸과 평화적인 동·서독 통일의 실현-속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공산권 붕괴는 군사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한 나토(NATO) 집단안보동맹 틀을 기축으로, 동·서간 핵전쟁의 위협을 막고, 당시 소련·동구와 대화 협력의 틀(CSCE, 현 OSCE)을 만들어, 동·서간 화해와 협력을 추구한 것이 큰 몫을 했다. 이는 지난 세기 미·소 냉전각축, 갈등의 잔재로 아직도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 한반도에도 정책적, 전략적 시사점을 비춰준다.

남북간에 또 하나의 전쟁이 결코 지혜로운 수단이나 대안이 아니라면, 우리도 한·미간 군사동맹 틀을 기축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 유럽연합 등의 협력과 협조로, 남북화해와 협력의 틀을 튼튼히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접근과 전략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초기에 약간 흔들렸지만)의 병행전략이다. 핵 문제는 다자 틀에서, 남북문제는 일차적으로 남북 당사자간에 추구한다는 것이다. 현 이명박 정부처럼 북한이 핵 문제를 먼저 풀어야 남북관계도 열겠다는 입장(원칙)고수 전략이 아니라, 남북은 물론 관련 당사국들도 상호이익 중심 전략으로 다시 바뀌어야 한다고 본다.

남북문제는 남북 사이에 서로 해결 가능한 의제와 현안부터 하나하나 차츰차츰 풀어가야 한다. 동시에 북핵 문제도 6자회담 틀에서 인내와 끈기로 걸림돌을 하나하나 제거해서 한반도 북 핵 폐기를 이룩해야 한다고 본다. 부모가 자기 집 자식 하나의 버릇과 행동도 고치기 힘든 세상에, 하루아침에 수십년 묵은 북한의 행태를 먼저 바꾸겠다("behavior modification")는 현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처음부터 잘못된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서독은 동독과의 화해와 협력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끝내는 무혈(無血) 평화통일을 "초 국가"(supra-state) 유럽연합의 큰 틀 속에서 이루어냈다. 이 역시 분단 한반도에 중요한 정책적, 전략적 시사점을 던진다. 구체적으로 동·서독 통일이 EU, 유럽안보협력회의(CSCE, 현 OSCE) 등 다자(多者) 초국가 틀에서 실현되었다면, 우리도 6자회담을 재가동해 북한 핵 문제를 다자 차원에서 해결하고, 특히 동북아 평화 메커니즘을 적어도 유럽의 위 CSCE 수준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서독이 한국은 아니듯이, 동독이 북한은 아니다. 지면 관계상 통일 전 동서독과 현 남북한의 유사점과 이질성 모두 여기서 누누이 열거하지는 않겠지만, 그 차이도 엄청나다. 따라서 남·북한, 동·서독의 단순 평면적·표피적 비교는 금물이다.

"쐐기"(lynchpin)와 "주춧돌"(cornerstone)

당장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은 무엇인가? 한마디로 미·중, 중·일 갈등과 각축, 북·중 밀착에 우리가 어떻게 대응하고 대처하느냐로 요약된다. 중장기적으로는 우리의 유일 군사동맹 미국과 제일 통상시장 중국과의 포괄적인 새로운 관계정립이다. 이 과제는 물론 시간이 걸리는 일이다. 하지만 머리 속에만 그린 그림이상의 비전, 전략, 정책은 서둘러야한다고 본다. 갈수록 틈이 벌어지고, 골이 깊어지는 미중관계 사이에서 대한민국의 외교, 안보국방의 활로를 찾는 힘겨운 도전을 이겨내고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10월 28일 하와이 동서문화센터(EWC)에서의 힐러리 미 국무장관 연설의 세 가지 대목이 눈길을 끈다. 일본을 "아시아-태평양에서의[미국의 지도적] 적극 개입에 주춧돌"("the cornerstone of our engagement in the Asia-Pacific")로, 한국은 "지역 안정과 안보의 하나의 쐐기"("a lynchpin of stability and security in the region")로 명시한 것과 미국과 인도가 올해 초 시작한 미·인도 전략적 대화(the U.S.-India Strategic Dialogue)가 그것이다.

특히 여기서 한미관계 "쐐기" 앞에 붙어있는 단어 "a" 와 미일관계 "주춧돌" 앞에 붙어있는 단어 "the"에서 미국이 보는 한국과 일본의 전략적 가치비중을 우리 정부 당국자는 신중히 음미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미국을 안보 "주춧돌"로, 미국은 우리를 "쐐기"로 보는 전략 차는 무엇일까? 집에 불이나 다 타버려도 주춧돌은 남지만, 쐐기는 나무라면 함께 타 버렸고, 쇠라도 그 잿더미 속에 버려져 찾기조차 힘들지 않은가? 더구나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이른바 "울타리 둘러쌓기"(hedging) 전략에 흡입되어, 우리의 남북통일 문제는 실종(失踪)하고 만단 말인가?

또 최근 미 워싱턴에서 열린 제 42차 한 미 안보협력회의 공동성명문(10월 28일) 6항에서 두 문구가 눈에 띈다. 제41차 공동선언문(2009년 10월 23일)에 이어 미국이 미 핵우산, 미사일 방어 등을 포함, 전면적인 "확장된 억지력"(extended deterrence) 제공을 재확인하고, 한발작 더 나아가, 이를 위해 양국간 "확장된 억지력 정책위원회"(Extended Deterrence Policy Committee) 설치를 합의했다.

오바마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방향을 유념하면서, 현 미중관계를 살펴보면, 지난 세기 냉전 시대의 미·소 대결과 세 가지 차원에서 본질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생각한다.

첫째로 냉전시기에는 미국은 "자유진영"의 종주국으로, 소련은 공산진영의 종주국으로 대결하고 대치했고, 경제도 서로 담을 쌓고 살았다. 1948년 미국 주도로 출범한 유럽경제협력기구(Organization for European Economic Cooperation, OEEC, 현 OECD로 1961년 개칭, 비 유럽국가 수용)에 맞서 다음 해인 1949년 소련 주도로 창설한 "상호경제원조위원회"(Comecon, 공식명칭은 CMEA, The Council for Mutual Economic Assistance)가 그 구체적 사례다.

코메콘은 소련, 동구 공산권의 소멸과 함께 1991년 사라졌고, 중국, 러시아, 동유럽 공산권 국가들은 2차 대전이 끝나면서 미국주도로 출범한 브레튼 우즈 세계경제, 금융, 통상 체제(IMF, the World Bank Group, WTO 등)에 중국처럼 지금 이미 가입했거나, 그 가입을 서두르고 있는 상황이다.

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 등 공산정권 소멸과 함께 위 자유-공산 진영간 경제 통상 시장 벽은 무너졌고 첨예한 이념대결도 일단 뒷전으로 밀렸다. 따라서 현 미중 관계는 냉전시대처럼 일차적으로 상호적대적인 정치경제 모델이 빚은 이념적인 것이라고 보기 힘들다.

구체적으로는 환율, 금융, 통상 등 경제마찰, 인권문제, 대만, 티베트, 위구르, 동지나해, 남지나해 영토분쟁 등이 있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수천 년 명맥을 이어온 중국의 "문명국가"(civilization state) 개념과 역시 수천년 동안 고대 그리스, 로마, 유럽, 미국 등이 개발, 계승 발전시킨 정치문화, 특히 1648년 웨스트팔리아 조약 이후의 "주권국가"(sovereign state) 개념과의 충돌이라고 볼 수도 있다.

둘째로 지난 세기 미·소 대결이 일차적으로 양대 진영간 군사경쟁, 특히 미·소간 전략 핵과 우주경쟁이 그 주축이었다면, 현 미·중 현안은 통상, 환율, 금융 등 경제문제가 맨 앞에서(front burner) 서로 부딪치고, 우주경쟁을 포함해 군사안보는 뒤에서(back burner) 움직이는 모습이다.

또 지난 세기 미·소 냉전 시대에는 인도가 형식은 "중립"이었지만 소련에 더 가까웠고, 지금은 미국이 공개적으로 아시아-태평양 리더십 국가임을 천명하며 적극적으로 인도를 끌어안아, 중국을 견제(hedging)하려는 것이 크게 주목된다.

셋째로 냉전시대 소련의 정치적·군사적 위협뿐만이 아니고 중국은 지금 통상, 금융 등 경제적으로도 미국에 도전하는 상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는데 그 심각성이 있다. 구체적으로는 2008년 시작된 미국발 금융위기로, 2차 대전 뒤 미국 중심의 경제 통상, 화폐의 틀 들-IMF, WTO, the World Bank Group 등-이 또 한 차례 재편·재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른 것이다.

1970년대 초, 1980년대 중반 금융·경제 위기 때는 소련 주도의 공산진영의 안보위협이 "전가의 보도"였다. 이 안보위협을 미국은 진영 안에 있는 서독 등 서구 유럽국가(NATO)와 일본(미·일 안보 조약)을 설득, 압박(jawboning, bashing)하는 도구로 유효하게 미 국익에 맞게 휘두를 수 있었다. 1990년대 말 한국 등 아시아 금융 경제 위기 때는 미국의 "전가의 보도"로서의 공산권 안보위협이 상대적으로 약화됐었다.

하지만 지금의 중국은 다르다. 그때나 지금이나 일본과 서독은 진영 내에서 경제적으로는 제2, 제3의 부국이지만, 군사적으로는 일본과 독일은 비핵국가이고 미국의 군사 동맹 틀에 묶여있다.

그러나 미국 다음으로 이제 군사력·경제력 등 경성(硬性) 권력과 문화·역사·지역적·국제적 지도력 등 연성(軟性) 권력을 고루 갖춘 중국은 그 동안의 국제경제 학습효과에다 지난 70년대 초, 80년대 중반의 서독과 일본, 90년대 말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처럼 호락호락 미국에 쉽게 밀리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맺으며

두 가지 싱겁고 소박한 질문으로 이 글을 맺고자 한다. 하나는 이젠 남북 모두 장기판의 졸(卒)은 물론 아니지만, 냉엄한 국제정치경제 게임에서 우리가 "하나"(통일)로 있다면, 게임 참여자들이 "둘"(분단)인 지금보다 갖고 놀기가 훨씬 힘들지 않겠는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둘이면, 참여자들이 둘을 이간(離間)하기도 쉽고, 참여자들이 하나씩 서로 나누어 놀기도 쉽지만(divide and rule), 하나라면 그들끼리 서로 이 하나를 놓고 훨씬 더 치열한 경쟁을 벌일 것 아닌가? 미국이 중국을 겨냥한 울타리 만드는데 우리가 "쐐기"가 되면, 남북을 하나로 뭉치는 일은 언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가?

또 하나는 어느 한 산업 일꾼이나 한 기업인이 열심히 밤잠을 설치며,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며 한푼 한푼 모은 미화 1000달러를 미 금융기관에 저축했다고 가정하자. 그런대 어느 날 알게 모르게 원화-달러화 환율이 바뀌어, 원화가 미 달러 대비 50% 절상됐다면, 얼핏 보면, 원화로는 이제 절반 값으로 미제(made in USA) 물건을 살 수 있어 좋지만, 그가 그렇게 어렵게 저축해둔 1000달러는 이제 500달러 가치(구매력)밖에 없지 않은가?

비가 쏟아지면 우산 장사가 웃고, 햇볕이 쨍쨍하면 얼음장사가 웃는 것은 상식이지만, 국제경제는 원천적, 구조적으로 이런 상식이 안 통한다. 한마디로 달러는 기축통화고 원화는 아니기 때문이다. 자칫 잘못하면, "카지노 자본주의"(casino capitalism)의 먹잇감이 되기 쉽다. 기축통화 국가는 그 나라 국익에 맞게 환율 절상·절하를 맘대로 할 수 있고, 돈도 맘대로 찍어내도 돈이지만, 원화는 맘대로 찍어내면 종이가 된다. 따라서 기축통화가 아닌 나라는 환율전쟁에서 챙기는 것보다 나도 모르게 앗기는 경우가 더 많다. 억울하고, 비통하고, 비정하다.

이런 상황에선, 어려운 경제단어들을 들출 필요도 없이 달러로 빚진 나라(채무국)는 그 액면가의 반값으로 빚을 값을 수 있고, 저축한 나라(채권국)는 액면가의 절반밖에 챙기지 못하는 억울한 상황이 된다. 지금 정치하는 사람들, 경제를 주물럭거리는 사람들 한번쯤 곰곰이 생각하고, 꼼꼼히 따져 볼 싱거운 질문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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