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락 오바마는 43명 전직 미 대통령과는 다른 두 개의 역사적 의미가 있어서인지 그 어느 때 보다 더욱 안팎의 관심을 끌었다.
하나는 1789년 4월 30일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이 취임한 지 꼭 220년 만에 미합중국 역사상 처음으로 아프리카 케냐 출신 흑인 아버지와 미 캔자스 출신 백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아가 미국의 44대 대통령에 취임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오바마 정부는 안팎으로 유례를 보기 드문 범세계적인 차원의 경제위기를 안고 출범했다는 점이다. 이 순간도 미국발(發) 저(低)우량주택금융 위기가 금융 신용 위기로, 경기 침체로, 경제 공황으로까지 치닫고 있다. 이 미국 경제의 한파(寒波)가 전세계 경제 위기로까지 번지고 있는 격랑의 중심에 오바마는 서 있다.
9. 11 대참사를 계기로 전임자 부시가 벌여 놓은 저강도(low intensity)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물론이고, 2차 세계대전 뒤 아직까지도 그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한반도 문제,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을 둘러 싼 중동 갈등, 파키스탄-인도 분쟁 등도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는 숙제들이다. 그가 원하든 원치 않든 세계 최강의 군사력과 경제력을 자랑하는 미국 대통령에게 맡겨진 도전이요 책무다.
▲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은 오바마 가족과 애완견 '보' ⓒ로이터=뉴시스 |
루스벨트-케네디보다 유리한 조건
물론 오바마는 1930년대 초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1933~1945 재임)이 겪은 대공황(Great Depression) 때 보다는 위기의 심각성에서나 제도적 보호, 보장 장치라는 측면에서 훨씬 유리한 조건과 여건을 갖고 있다는 주장도 가능하다.
당시는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았고(2009년 3월 현재 8.5%), 상품가격이 붕괴했으며, 거의 모든 공장과 기업·금융기관들이 문을 닫고 붕괴 직전에까지 이르렀다. 더구나 사회 안전망(social safety net)이나 은행저축 보험, 연방정부 실업보상, 농산물 가격 보장제도 같은 것도 없었다.
루스벨트가 당면했던 국제환경도 훨씬 참혹했다. 이탈리아 무솔리니의 파시즘, 독일 히틀러의 나치즘, 일본 군국주의 같은 반(反) 민주, 반 자유 적대 세력의 발호로 비롯된 2차 대전의 암운(暗雲)과 그 격전의 재앙도 지금은 없지 않는가?
'고작해야' 부시가 한데 묶은 이른바 "악의 축"-이란, 이라크, 북한-이 있을 뿐인데 그 가운데 이라크는 부시 주도의 전쟁으로 독재자 후세인을 제거했다. 오바마 정부는 그 전쟁을 마무리하는 것과 이란·북한의 핵 개발 도전에 대응책을 마련하는데 신경을 쓰고 있는 중이다.
오바마와 자주 비교되는 케네디 대통령(1961~1963 재임)이 첫 100일 동안에 겪었던 국제적 사건들에 견주어 봐도 오바마 대통령은 훨씬 유리한 여건이라는 주장도 가능하다. 당시 미소 냉전의 각축 상황에서 케네디는 취임 100일 동안 직간접으로 소련과 연루된 3가지 쇼크를 겪는다.
1961년 4월 12일 소련 우주인 유리 가가린(Yuri Gagarin)의 세계 최초 우주비행 성공, 4월 17일 당시 CIA가 주도한 쿠바 피그스만(the Bay of Pigs) 침공 실패, 친미 라오스 정권의 공산 세력에 의한 붕괴 상황 등이 그것이다.
케네디의 암살로 그 뒤를 이은 린든 존슨 대통령(1963~1968 재임)의 업적도 민권법, 투표권법, 의료보장 제도(Medicare, Medicaid), 초·중·고·대학 연방정부 지원 도입, 교통부·주택도시부 신설 등 문자 그대로 청사(靑史)에 빛난다.
데탕트 정책으로 미국이 중국·소련과 관계정상화의 틀을 마련한 리처드 닉슨(1969~1974 재임)이나, 동서독 통일과 소련과 동구 공산권 붕괴를 목격한 조지 허버트 부시(1989~1993 재임)도 그들 재임중 국제정치의 큰 변혁을 겪거나 이룩한 대통령들이 아닌가?
따라서 고작 첫 100일을 보낸 오바마 대통령과 전직 대통령들과의 제대로 된 비교는 아직 이르다. 균형 잡힌 평가는 최소한 첫 4년 임기가 지나야 가능할 것이다.
첫 100일동안 무엇을 했는가?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우리 속담이 있다. '시작이 반'이라는 동서양을 아우르는 격언도 있다. 그렇게 볼 때 적어도 오바마 새 정부 첫 100일 동안의 전반적인 정책 방향과 집행을 필자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무엇보다 오바마는 미국인들뿐만 아니라 세계만방 많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새 희망과 낙관적 전망을 심어 줬다. 그는 실추된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 회복의 청신호를 세계에 전파하는 데 일단 성공했다고 본다.
<워싱턴포스트>와 <ABC> 방송이 지난 21일부터 24일까지 미국 성인 남녀 10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오바마의 직무수행에 대한 지지도는 69%였고, 국제문제 해결사로서의 평가도 67%이며, 미국인 절반 이상이 새 정부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믿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오바마 정부는 지난 8년 부시 정권의 오만과 독선, 미 대외정책 전통의 한 축으로 고립주의 변형인 이른바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 그리고 일방주의를 버리고 미국을 다시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회귀시켜, 국제 협력과 다자간 협의, 국제규범을 존중하는 국제주의로 방향 전환을 꾀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이 가진 가장 큰 힘의 원천은 세계 유일 최강 군사력이 아니라, 민주·자유·인권·개방·기회 등 자유민주정치의 도덕적·규범적 가치의 우월성과 호소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부시 정권은 군사력을 앞세운 일방주의로 이러한 미국의 민주적 규범의 우월성과 호소력을 스스로 저버리고,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도덕적 리더십을 훼손했다.
이처럼 첫 100일 동안 오바마 정부의 정책 방향과 방책의 윤곽이 차츰차츰 드러나고 있다. 국내적으로 오바마는 의회를 통해 7870억 달러 경기 부양책 기금 확보에 성공했다. 고액 소득자 세금 공제액 비율(담보이자, 지방세, 자선기부 액 등)을 28%까지로 축소 조정했다.
대외적으로는 최근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하원 외무위원회에서 밝혔듯 부시 정권의 군사 우선 일방주의를 지양하고 "군사력이 함께하는 외교와 발전의 도구들("the tools of diplomacy and development along with military power")을 활용해 "기후 변화, 약체국가 및 불량 국가, 범죄 카르텔, 핵무기 확산, 테러리즘, 빈곤, 질병" 등 범지구적 차원의 문제나 현안들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 해결에 적극 나서겠다고 밝힌 것이 주목된다.
구체적으로 오바마는 지난 100일 동안 쿠바 관타나모 포로수용소 폐쇄 지시(1월 22일), 2010년 10월까지 이라크로부터 미 전투병력 전원 철수 공표(2월 27일), 조건 없는 이란과의 직접 대화와 협상 제의(3월 20일), 알카에다 소탕작전을 위한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4000명 증원군 공표(3월 27일), 미러 정상회담에서 새 전략무기감축협상 개시 합의(4월 1일, 미국 내 쿠바계의 쿠바 인척에 대한 무제한 송금과 방문 허용(4월 13일) 등을 이뤄냈다.
이어 트리니다드 토바고에서 열린 34개국 중남미 정상회의 참가 및 다니엘 오르테가 니카라와 대통령,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과의 상면(4월 17일), 부시 시절 법무부의 연방 검사 고문 지시 메모 공개(4월 21일) 등 지난 부시 정권과 정면으로 대치되고 차별화되는 정책과 국제 문제에 대한 접근 방향·방법을 채택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폴 크루그먼의 표현을 빌리면 "미국의 영적 자산(얼)을 되찾는"("reclaiming America's Soul") 큰 발걸음을 내딛고 있는 것도 격려와 칭찬을 받아야 한다고 본다.
개와 권력
오바마는 대통령 당선자로서 공개적으로 마리아와 사샤 두 딸에게 백악관에 데려가겠다고 약속한 삽살개 '보'(Bo)를 4월 14일 백악관 잔디밭에서 공개했다. 검은 털이 거의 온 몸을 감싸고 아래 가슴과 네 발 끝만 하얀 털로 덮인 6개월 된 이 귀여운 개의 원산지는 포르투갈이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백악관에서 개와 함께 사는 것은 거의 관행이요 전통처럼 돼있다. 조지 부시는 애완견 '스포트'를, 클린턴은 '버디'를 사랑했다. 모니카 르윈스키 사건으로 정치적으로 최악의 곤경에 처했을 때 클린턴은 버디와 잠자리까지 같이 했다.
정치 생활 40여 년을 워싱턴에서 보낸 해리 트루먼 전 대통령은 "워싱턴에서 친구를 원하면 개를 가져라"는 명언(?)을 남겼다. 우리 속담에는 "정승 집 개가 죽으면 구름같이 사람들이 몰려와도, 막상 정승이 죽으면 개도 안 나타난다"는 말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는 날짜가 잡힌 상황까지 왔다. 형 건평 씨는 이미 구속된 몸이다. 한 신문에 의하면, 건평 씨 집이 한참 잘나갈 때는 거위들과 오리들의 울음소리가 귀를 찌르고 개도 여섯 마리나 뛰어 노는 등 온갖 법석을 떨었는데, 지금은 그 집이 흉가나 다름없이 되었다고 한다. 그 많던 동물들의 울음소리는 사라지고, 신문에 난 그 집 개 한 마리의 모습은 배고프고 초라하고 처절하기 짝이 없다. (<중앙일보> 25일자)
▲ 필자 양성철 전 주미대사 |
오바마는 지금 4년 임기 가운데 이제 겨우 100일을 보냈다. 그러나 그의 4년도 곧 지나고 말 것이다. 그가 재선의 영광으로 8년을 채운다 해도 그의 권력이 끝나는 것은 시간문제다.
권력자는 그 자리를 얼마나 오래 동안 누렸느냐가 아니라 업적과 유산이 중요하다. 다행히 오바마의 이제까지의 발걸음은 희망과 낙관을 안팎에 선사했다. 그가 제시한 국내외 정책의 성공적 실현·실천으로 미국뿐만 아니라 인류의 평화와 복지에 큰 업적을 남기기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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