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가 파행으로 치닫는 가운데 김대중 정부 시절 주미 한국 대사를 지낸(2000~03년) 양성철 전 대사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비판하는 두 편을 글을 보내왔다. 지난달 21일과 28일 '김대중평화아카데미' 강연문을 수정·보완한 이 글에서 양성철 전 대사는 이명박 정부가 남북 교류 10년의 역사를 거스르는 역주행을 하고 있다며 "차려준 밥상을 뒤엎는 격"이라고 강력히 비판하고 있다. 양 전 대사는 특히 현 정부의 '비핵-개방-3000 구상'은 핵 문제와 남북관계를 병행 추진하는 지혜를 저버리는 것이라며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북핵 문제는 6자회담의 틀에서 진행하고,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은 남북 두 당사자가 주도적인 주체라는 병행전략이 하루 속히 복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 사정에 정통한 양 대사는 이어 버락 오바마 차기 미 행정부의 인맥과 정책으로 볼 때 6자회담 안에서 핵 폐기를 추구하는 동시에 북미 정상회담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하고 있다. 두 번째 글에서 양 전 대사는 안보, 안정, 안전, 안심을 한반도의 4가지 '안(安)'으로 꼽으며 남북관계 개선과 한국 경제의 성장, 주변 국가와의 관계 증진이 유기적으로 조율될 때 그것이 달성될 수 있다며, 이명박 정부의 외교·통일 비전을 묻고 있다. 강연문 전문은 양 전 대사의 블로그(☞바로가기)에서 볼 수 있다. <편집자> |
남북 분단 이후 한국전쟁을 거쳐 37년 전 실오라기 같이, 아니면 깊은 산 속 한줄기 샘물처럼, 시작한 남북간 대화와 협력의 물길을 이명박 정부는 지금 어쩌면 거꾸로 거슬러 올라 갈수 있다고 믿는 것 같은 무모를 자행하고 있어 안타깝다.
남북간에 축적된 민족적 지혜와 정부간 그리고 민간 차원의 화해, 대화, 협력의 결과물들을 어처구니없이 훼손하려는 것 같아 실망스럽다.
1971년 9월 2일 남북 적십자 회담 1차 예비회담을 시작으로 1972년 7.4 공동성명, 1992년 남북기본합의서, 2000년 분단 사상 초유의 남북 정상회담, 6.15 공동선언, 2007년 2차 정상회담과 '남북관계 발전과 평화번영을 위한 선언(10.4 선언)' 등은 존중되고, 그 골간은 유지되어야 하며, 설령 수정이나 개정이 필요한 경우라면, 두 당국간 협의와 합의의 과정을 거치는 것이 남북이라는 특수관계에서도 수순이요, 상식이 아닌가?
물론 통일의 길은 강줄기를 닮았다. 고속도로가 아니다. 이제까지도 그랬지만, 앞으로도 '통일의 바다'에 이르는 물줄기엔 고비고비, 고개고개가 수 없이 많다. 험난하다. 그러나 끝내는 통일의 바다에 이르게 될 것이다. 오직 시간만이 변수일 뿐이다.
그렇다고 마냥 그날을 손 놓고 기다릴 수는 없다. 적극적으로, 창조적으로 안팎의 온갖 걸림돌을 재거해 나가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마치 안동 하회마을을 지나는 낙동강 물길처럼 뒤돌고 있다. 하회 마을은 그림처럼 아름답지만, 현 정부의 대북 정책 뒷걸음질은 국민적 불행이요, 국가적 재앙이 될 수도 있다.
▲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연합뉴스 |
2000년 남북 정상회담과 6.15 선언은 국제 사회에 부정적이었던 남북간 대치·대결 상황이 아닌, 긍정적이고 건설적인 대화협력의 모습을 극적으로 고양시켰다.
6.25가 동족상잔의 살육, 조국 산하의 폐허, 우리 민족의 빈곤과 헐벗고 굶주린 모습을 만천하에 드러낸 것이라면, 6.15 남북 정상회담은 88 서울 올림픽, 2002년 한일 월드컵 공동 개최와 함께 우리 민족의 화해와 평화, 동질성 회복의 계기와 평화적 통일의 길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만천하에 안겨줬다.
냉전 시대 동서독과 마찬가지로 남북한도 이른바 할슈타인 원칙, 즉 대한민국은 북한과 수교하는 나라와 단교한다는 적극적인 국제사회에서의 북한 고립화 정책을 고수하다가, 1991년 남북 유엔 동시가입을 계기로 소극적 묵인 정책으로 사실상 전환, 이를 우리 외교의 기본으로 삼아왔다.
김대중 정부 출범과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이 '불량국가'(rogue state)의 레벨을 벗고, 더 많은 다른 나라들, 특히 서방 선진국들과 수교해 국제사회에서 '정상 국가'의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권장 정책으로 바뀐 것도 근본적 변화의 하나다.
(북한은 영국, 독일,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스페인, 룩셈부르크, 그리스, 캐나다, 호주, 필리핀, 브라질 등 18개국과의 수교했고, 2000년 7월 아시아지역 안보포럼(ARF) 회원국에 가입했다. 아시아 개발은행(ADB) 및 IMF 총회 참석 자격 등을 갖는 데에도 우리 정부는 적극적으로 도왔다)
무엇보다도 2000년 10월 9~13일 북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조명록 차수의 방미와 빌 클린턴 대통령과의 면담이 성사되고, 조명록이 직접 김정일 위원장의 클린턴 방북 초청장을 건네고, 열흘 뒤 10월 23일 미 국무장관 매들린 올브라이트의 방북이 이뤄졌었다. 북미관계 사상 초유의 최고위급 정부 인사 상호 방문에 이어, 비록 국내외 정치 사정으로 안타깝게 무산됐지만 클린턴 대통령 방북이 추진되기도 했다. 당시 김대중 정부는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 해결에 북미 정상회담이 열쇠라고 판단, 적극 정상회담의 성사를 성원한 것도 우리 역사 속에서는 크게 주목 받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하늘은 스스로를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듯이 개인도, 민족도, 국가도 마찬가지다. 가난과 빈곤이 개인의 운명이 아니라면, 분단과 갈등이 우리 민족, 우리나라의 숙명이 아니라면, 그 개인이 굶주림과 역경을 헤쳐 나가는 것은 그 개인의 몫이요, 피나는 노력해 달려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앞마당인 태평양만 열려있고 우리의 뒷마당인 유라시아 대륙이 '섬 아닌 섬'으로 꽉 막힌 채 60년이 넘도록 살아 온 것이 우리 민족과 국가의 숙명이 아니라, 대양과 대륙을 잇는 '반도의 삶'을 복원하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요, 국가적 과제라면, 우리가 제 1차적 주체로, 남북한이 동반자로서 주도적으로 국제사회를 설득하고 협조와 협력을 구할 때만이 우리의 국제적 역량이 커지고 외교력도 배가한다.
한반도를 통해 동아시아와 시베리아를 거쳐 유럽으로 연결되는 이른바 '철의 실크로드 시대'를 여는 것은 우리의 희망을 뛰어넘어, 21세기 선진 대한민국 제2의 도약과 번영을 위한 투자다.
남과 북은 국제사회, 국제무대에서 종속변수가 아니고 독립변수다. 그 자리를 굳게 지키도록 끊임없이 국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6.15 정상회담과 김대중 정부의 대북 화해·협력 정책, 이른바 햇볕정책은 이를 실증했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정부 출범 당시 대한민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은 IMF 사태로 경제적으로 최대의 국난을 맞고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식 연설에서 이른바 대북 3대 원칙(무력도발 불용, 흡수통일 불원, 화해협력 적극 추진)을 천명, 새로운 남북 대화협력의 틀을 만들어 한반도의 긴장 완화와 남북간 대화와 협력의 무드가 조성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국가 차원에서뿐만 아니라 IMF 등 국제 금융기구 지원과 외국기업의 적극적 투자유치로, IMF 위기를 최단 시일에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 파행과 역주행
현 정부는 이른바 "비핵-개방-3000" 구상, 즉 북한에 400억 불 상당의 국제협력자금 등을 투입해 현재 500불 정도인 북한 주민의 1인당 국민소득을 10년 뒤에 3000불 선이 되도록 하겠다는 구상을 제시했다.
이는 한마디로 지난 10년 동안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대북정책을 추진하며 가졌던 2대 원칙-남북 당사자 원칙과 남북 현안과 북핵 문제를 병행하는 원칙-을 근본적으로 훼손하고, '선(先) 북핵 폐기 후(後) 대북지원'이라는 이미 완전 실패로 끝난, 북한 핵과 남북대화, 화해·협력을 잇는 연계 정책이다. 부시 미 행정부 1기 외교안보팀의 이른바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북핵 폐기 정책)를 닮은 냉전 복고형 대결 정책이다.
필자는 대북정책의 축적된 지혜와 대화·협력의 기반을 뒤흔들고 뒤엎고, 비전도 현실성도 없는 현 정부의 구상을 먼저 폐기해야 한다고 본다.
설상가상으로 현 정부는 인수위 시절 통일부 폐지안을 시작으로, 대북 강경론자의 통일부 장관 임명(이후 철회), 합참의장의 '대북 선제 타격 발언', 통일부 장관의 '북핵 문제 해결 없이 개성공단 확대 없다' 발언, 대북 삐라 살포에 대한 사실상의 묵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에 대한 국가정보원의 정보 노출, 유엔 북한인권 결의안 공동제안국 참여 등 아무런 대응논리나 대책, 방책도 없이 불필요하게 북한 당국을 자극하고, 김대중 정부의 화해·협력, 노무현 정부의 평화·번영 정책을 무시, 배제, 훼손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가까스로 어려운 경제 위기 상황에서 남북관계에 마저 찬물을 끼얹는 무모함을 고집하고 있어 착잡하다.
북의 과민반응을 예측하지 못한 채, 결과적으로 북측의 군사분계선 육로통행 차단, 남북 직통전화 단절, 개성관광 및 경의선 화물열차 중단, 개성공단 절반 철수 등으로 남북관계는 또 다시 냉전시대처럼 얼어붙고 있다. 통일에 대한 비전은커녕 한치 앞도 못보고 우왕좌왕하는 현 정부의 대북 관련 실언, 실수, 실책에 아연 실색할 수밖에 없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듯 북핵 문제는 6자회담의 틀에서 진행하고, 남북한의 화해와 협력, 평화 증진, 통일 기반 확충은 남북 두 당사자가 1차적, 주도적 주체라는 병행전략과 당사자 원칙은 하루 속히 복원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자 ⓒ로이터=뉴시스 |
천만 다행으로 부시 정부의 퇴장과 오마바 정부의 출범은 남북한 통합과정에는 서광이다. 물론 뚜껑을 열어봐야 그 항아리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알게 되듯, 내년 1월 20일 취임을 시작으로 오바마의 대내외 정책이 그 실체를 내보일 것이지만, 적어도 세 가지 측면에서 미 정권 교체는 한미관계, 북미관계에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첫째로 오바마의 러닝메이트인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 당선자를 포함, 국무장관으로 지명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상무장관으로 내정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으로 지명된 제임스 존스 전 나토사령관, 유엔 주재 미국 대사로 내정된 수전 라이스 전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 차관보, 국무부 부장관으로 내정된 제임스 스타인버그 전 백악관 안보담당 부보좌관, 백악관 법률고문으로 지명된 그레고리 크레이크 등 최고위 안보, 외교, 국방 분야 인사들은 일관성 있게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성원했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대북 대화, 협상, 관계 개선에 무게를 두는 인사들이고, 클린턴 정부와 직간접으로 연루된 인사들이라는 점에서 고무적이다.
둘째로 오바마 행정부에 정책과 전략을 제공하게 될 3대 정책연구소(Think Tank)로 지목되는 브루킹스(The Brookings Institution), 미국진보센터(The Center for American Progress), 신미국안보센터(Center for New American Security)나 오바마의 '시카코 사단'이 모두 진보적인 성향이고, 부시 정부의 정책 기조와는 달리, 일방주의와 군사모험주의가 아닌 국제 연대, 대화, 협력을 추구하는 성향을 갖고 있다는 것도 긍정적이다.
셋째로 한미관계의 2대 현안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의회 비준, 전시작전권 이양 및 평택 미군 사령부 이전 등 한미동맹 구조 재편 및 강화를 추진하는 데에도 호의적인 것으로 보인다.
▲ 필자 양성철 전 주미 한국 대사 ⓒ연합뉴스 |
다만 미국 3대 자동차사(GM, Ford, Chrysler)의 파산위기, 미 의회 구제금융 거부 등으로 그 불똥이 한국 자동차의 대미 수출 차질 혹은 부진, 통상 마찰로 이어질 가능성도 엿보인다. 북미관계는 핵 문제가 최우선 과제이고, 6자회담 틀 안에서 핵을 완전 폐기하도록 훨씬 적극적이고 강한 드라이브를 할 것으로 점쳐진다.
오바마 정부는 부시 1기 외교안보팀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가 종국에는 북 핵실험이라는 참담한 실패로 끝난 이른바 'CVID'를 접고 북한과 원칙엔 흔들림 없이 직접 양자간 적극적으로 대화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강공 직접 대화'(tough and direct)를 기본 대북 접근 방침으로 내세운 것이나, 미 역사상 최고위 정부 관료로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난 올브라이트 전 국무장관, 햇볕정책을 포용한 이른바 '페리 프로세스'의 저자인 윌리엄 페리 전 미 국방장관이 오바마 대통령의 특사로 거론되고 있는 것도 클린턴 정부 막판에 불발로 끝난 북미 정상회담의 새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어서 한층 고무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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