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연속기고 ① "정리해고는 과연 불가피한가? 현실은…" ② "그 잘나가는 회사의 정규직들은 왜 잘렸나?" ③ 흥국생명식 마구잡이 정리해고, 언제까지 방치할 건가 |
정리해고를 앞둔 2012년 2월 어느 날, 우연히 카카오톡 대화창을 열었다 마주친 내 동료의 프로필 사진을 보는 순간 난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먹먹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무거움과 뜨거운 응어리가 울컥 내 목을 막았다.
"세상은 비겁해, 나쁜 건 넌데 아픈 건 나야."
나와 내 동료 75명은 2012년 2월 25일 구미 KEC에서 경영상 이유로 정리해고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다. 겉으로는 경영 악화를 내세웠지만 이미 2011년 초부터 회사는 정리해고를 노조 깨기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마련해두고 있었다. 2011년 2월 회사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인력구조조정 로드맵>에는 '파업 참가자의 회사 복귀 원천 차단, 자발적 퇴사 유도, 안 될 경우 인력 구조조정 단행, 친기업 성향의 노조 설립'이 계획되어 있었다.
▲ 2011년 2월 회사 기획조정실이 작성한 <인력구조조정 로드맵>.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
임원 임금 올리려면 직원 해고해야 한다?
더 기가 막힌 것은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 전원을 내쫓고 그 돈으로 관리자와 임원의 임금을 인상할 계획까지 세워놓고 있었음이 회사가 작성한 또 다른 문건 <관리자 처우개선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는 것이다. 미친 것이다. (☞ 관련 기사 : "KEC, 노동자 해고한 돈으로 임원 임금 올려주자?")
우리는 설마설마했다. 그런데 회사는 1년여의 파업과 직장폐쇄를 철회하고 우리가 현장에 복귀한 지 불과 4개월 만에 229명 정리해고를 위한 협의를 하자고 통보해왔다. 회사는 인원을 정리하지 않으려면 임금 100억 원 삭감에 동의하라고 요구했다. '돈 내놓을래, 일자리 내놓을래' 공개적으로 협박을 시작했다. 억장이 무너졌다. 우리는 회사의 정리해고 계획이 경영상 이유가 아니라 관리자 임금 인상을 위한 것이란 문건을 폭로했다. 국회와 언론의 비난이 이어졌다. 그러나 회사는 멈출 줄 몰랐다.
2012년 1월까지 3차례의 희망퇴직이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 발로 회사를 나갈 수 없었다. 이건 상식과 부도덕의 싸움이었다. 회사는 마침내 1월 10일 166명의 정리해고 대상자 명단을 통보했다. 이들 중에는 파업기간에 대체인력으로 투입됐던 신입사원 50여 명도 포함되었다. 대체 이들이 무슨 죄란 말인가? 그 와중에도 회사는 사상 최대 규모로 관리자 109명의 승진승급을 단행해 사실상 임금을 인상했다. 회사는 '경영상 이유의 객관적 자료를 밝히고, 경영진과 관리자도 고통을 분담하는 방안을 제시하라'는 우리의 요구를 철저히 묵살했다. 2010년, 2011년 2년간 임원들은 연봉이 41%나 인상되어 있었다. 지회는 교섭 자리에서 '경영을 책임져온 회장을 비롯한 경영진의 임금은 한 푼도 손을 안 대면서 현장직 노동자들만 임금 100억 원을 삭감하라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우리는 더 이상 물러설 수가 없었다. 부당하게 임금 100억 원을 강탈당하느니 차라리 정리해고되더라도 이 악질기업과 맞서 싸우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고 마음먹었다.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
정리해고를 목전에 둔 2월 17일 회사가 만든 어용노조는 상여금 300% 삭감, 교대수당 폐지, 3교대근무를 2교대로 전환, 무급순환휴직에 합의했다. 어용은 이를 대가로 자신들의 조합원이던 신입사원들을 정리해고 대상에서 제외됐다고 떠들었다. 최저임금도 못 받고 있는 신입사원을 이용한 파렴치한 거래였다. 도저히 수용할 수 없었다.
중노위, 전국 최초로 KEC 정리해고 부당노동행위 인정
2월 24일 마침내 금속노조 KEC지회 조합원 75명만 정리해고 통보를 받았다. 정리해고자가 된 나와 내 동료들은 울지 못했다. 해고통보를 받지 않아 산 자가 된 동료들이 눈물을 보였다.
해고통보를 받은 동료들은 받지 않은 동료들이 가슴 아파할까봐, 받지 않은 동료들은 자신들만 살아남은 미안함에 서로 고통스러웠다. 나쁜 건 회산데 동료들이 아파한다.
우리는 부당 정리해고에 대한 구제신청에 나섰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 심판회의가 열리기 하루 전 회사는 일방적으로 정리해고를 철회했다. 제 발이 저렸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억울했다. 6월 1일 회사에 복직했으나 회사는 해고 기간의 임금을 줄 수 없다고 우겼다. 해고는 철회됐지만 재입사라 주장했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정리해고가 철회되어 구제의 실익이 없다'며 부당해고와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모두 '각하' 처분했다. '이대로 끝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중앙노동위원회에 'KEC 정리해고는 부당노동행위'라는 결정을 구하는 재심을 신청했다.
그리고 10월 12일 중앙노동위원회에서 심판회의가 열렸고 우리는 결국 이겼다. KEC 정리해고는 부당노동행위라는 결정이 난 것이다. 전국에서 첫 사례였다.
만약 우리가 회사의 부당한 요구에 굴복했다면 결코 진실을 밝히지 못했을 뿐 아니라 KEC의 부도덕한 정리해고가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합법 해고로 인정될 뻔했다.
정리해고는 경영상 이유에 의한 것이 아니다. 정리해고는 더 많은 이윤을 쫓는 자본의 탐욕이 빚은 폭력이며 살인이다. 정리해고제는 경영상 책임을 모두 노동자에게 떠넘기는 철면피한 자본의 손쉬운 도구가 됐다. 없애야 한다.
공지영 작가의 <의자놀이>라는 책에 나오는 신부님의 말씀이다.
"부디 부탁드립니다. 사람은 자본이나 기계, 원료 같은 경영의 한 요소가 아닙니다. 사람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 우리는 사람이다. 자본가가 사람이듯이 노동자도 사람이다. 우리는 기계처럼 쓰이다 버려져서는 안 되는, 언제나 그 존재로 존중받을 권리가 있는, 스스로 존엄할 가치가 있는 인간이다.
ⓒ금속노조 구미지부 KEC지회 |
정리해고법 자체가 폐기되지 않고는 노동자들에게 인간다운 삶이란 있을 수 없다. 노동자들이 아무리 잘못된 것이라고 외치고 기업의 잘못을 알려도 이 법이 존재하는 한 자본은 거짓된, 조작된 자료로 노동자의 목숨줄을 죌 것이고 노동자들의 죽음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KEC를 보라. 이러고도 정리해고제의 존속을 입에 올릴 수 있는가? KEC만이 아니다. 다만 KEC 정리해고만 부당노동행위로 인정됐을 뿐이다.
자본가는 비겁하다. 나쁜 건 너흰데 아픈 건 노동자다. 염치가 있으면 정리해고 중단하라. 이제 더 이상의 죽음은 없어야 한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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