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움치칫움치칫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최태호의 우리말 바로 알기] 움치칫움치칫

아버지가 그리운 적은 별로 없었다. 어머니는 몹시 그리운데 무슨 일인지 아버지는 꿈에도 잘 나타나지 않으신다. 나타나셔도 별로 개운하지 않은 꿈을 꿀 때가 많다. 선친은 평생 교직에만 근무하셨기에 다른 일은 문외한이셨다. 평생 교편을 잡으신 덕에 필자는 약간의 혜택을 입었다. 아버지와 같은 직업으로 시작해서 오늘까지 왔으니 참으로 질기게 교단에 섰다.(우리 집안의 교직 경력을 합하면 200년이 넘는다.) 선친의 혜택 중의 하나가 소통하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중학교의 교단에 처음 섰을 때 알아듣지 못하는 아이들을 두고 답답해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 선친께서 알려 주신 비법이 딱 한 마디 “가서 만화영화나 봐.”였다. 그리고 1주일 후 필자는 아이들과 재미있게 수업을 할 수 있었고, 재미없는 만화영화지만 아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시청했었다. 그때 본 만화가 <개구쟁이 스머프>였다. 그리고 다시 40년 가까이 흐르고 나니 답답한 일이 또 생겼다. 일전에 중학생과 상담을 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단어가 많았다. 위에 제목으로 떠 있는 ‘움치칫움치칫’을 알아들을 수 있는 독자가 몇 명이나 될까 궁금하다. 일단 그 아이가 써준 글을 먼저 보자.(그 아이는 소설을 쓰려고 했는데, 필자의 질문으로 문장이 조금 이상해졌다.)

그녀가 나를 불러세웠다. 그녀에게 점점 다가가며 나는 점점 움치칫 움치칫 그녀가 공작저로 가야했던 사정 노아 윈나이트 다정한 그대를 지키는 방법 리 제로부터 시작하는 이 세계 생활. 소냐가 … 탐욕의 마녀 에키드나 사랑은 왜 줄어드는 것인가 아이돌(여학생들이 남자 아이돌을 좋아함) 애니메이션 여학생들도 조금 봄 남학생이 대부분 호불호가 갈림. 중학교에 올라가서 많이 보임 웹툰(여학생들이 주로 좋아함) 나 혼자만 레벨 업(남학생들이 많이 보는 웹툰-원작은 소설), 남학생 소수는 아이유를 좋아함. 남학생들은 주로 게임을 좋아하고 풀스, 롤, 오버워치를 좋아하지만 호불호가 갈림.

위의 글은 현재 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여학생이 작성한 것이다. 위의 글을 보면, ‘움치칫움치칫’을 비롯해서 ‘노아 윈나이트’, ‘리 제’, ‘소냐’, ‘에키드’, ‘풀스’, ‘오버 워치’ 등 알 수 없는 단어들이 너무 많다. 무슨 뜻인지 물어보다 소설로 시작한 글이 이상해 지기도했다. 필자는 주로 그냥 듣기만 했는데, 나중에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니 일본 만화(애니메이션과 웹툰)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들이거나 그 속에 나오는 단어들이었다. ‘움치칫움치칫’은 “숲속에! 토끼가! 움치칫움치칫 움치칫움치칫 ~”하면서 하는 게임의 일종인 것 같다. “사치기사치기 샅뽀뽀”하는 게임을 연상하게 된다. 문제는 애니메이션을 보든 웹툰을 보든 간에 모두 일본에서 온 작품들이라는 것이다. 알아들을 수 없는 것도 문제지만 이들은 이미 일본풍의 만화에 흠뻑 젖어 있는데, 지금 친일 적폐가 어떻고, 토착 왜구가 어떻고 하는 것이 이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 아마도 이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는 이미 일본만화의 영향으로 사고방식 자체가 일본식이 되어 있을 것이라는 말이다.

지난주에는 꽤 심하게 충격을 받았다. 대화가 되지 않는 것을 둘째고, 아이들이 일본문화에 경도되어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다. 그래서 오늘부터 일본 웹툰을 보기로 하였다. 그 속에 나오는 주인공 이름이라도 알아야 아이들과 소통할 수 있고, 아이들의 의식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명색이 선생으로 40년을 살았는데, 아이들과 대화가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다. 청소년들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 같다. 다시 만화의 세계에 들어가서 이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왔다. 시대는 변하고, 세월을 흐르는데 마냥 꼰대의 자리만 고집했던 것 같다.

오늘따라 아버지가 그립다.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