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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어머니 두고 갈 생각에 그렇게 서성였니"

[기고] 유성기업 노동자 고 한광호 씨의 죽음에 부쳐

노조 파괴 시나리오가 확인된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유성기업의 노동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지난 3월 17일 아침 8시께 조합원 한광호 씨(42)가 영동 양산의 집 근처 야산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한 씨는 2012~2013년 지회 대의원을 맡는 등 노조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노조에서는 2011년 이후 지속된 노조 파괴와 징계 압박이 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갔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 씨와 함께 노조활동을 했던 김성민 금속노조 유성기업 영동지회장이 <프레시안>에 한 씨와 관련된 기고글을 보내왔다.

20년 넘게 같은 현장에서 일했는데 너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아는 게 없구나. 아니 오히려 옥천 철탑 농성을 사수하면서 오랜만에 왔다고 고생이 많다고 커피 타 주던 모습이 기억이 난다.

멀리 밀양까지 일이 있어 가지 못하는 간부들 앞에 나서서 먼저 가겠다고 나서며 함께 밀양 희망버스도 함께 탔는데, 왜 우린 서로 말이 없었을까? 사람들과 친해지기 어려운 내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서로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는 마음에서 말이 없었던 것일까?

네가 죽기 며칠 전 함께 밥을 먹었지. 그날 무기력한 네 모습에 사실 화가 많이 났어. 눈빛은 많이 흔들렸고 소주를 털어 넣는 술잔만 바빴지….

그 자리에서 나는 너를 설득하고 이해하는 자리로만 생각했어. 다음날 출근해서 사실조사 할 때 회사에 잘못을 빌고 징계를 받자고 했어. 그리고 징계가 되면 시간을 가지고 마음을 풀어보자고 했지. 해고가 되면 지회와 같이 싸워 보자고도 했는데…. 네 마지막 말인 "형, 노동조합에 부담을 줘서 미안해요" 라는 얘기가 너무 아프다.

너에게 이 이야기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무기력했던 그리고 흔들리던 네 눈빛은 너무나 마음에 상처를 받아 아프고 아파서 참고 참아내는 인내였다는 것을 이제야 알았다. 광호야, 너를 몰라서 미안하다.

현장순회를 할 때 네가 있던 생산부 조합원들 특히 너와 친했던 종진이 형은 정말 많이 걱정하더라. 내일이면 네가 올 거라던 종진이 형은 일부러 너와 멀어지는 척하느라 힘들었데. 내일이면 온다던 말이 네가 죽어서 올 거라고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다.

▲유성기업 노동자 한광호 씨가 지난 3월 17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기훈

지금 유성기업 현장에는 너처럼 목소리 높여서 몸부림치며 소리 지르며 싸우는 동지들이 많아. 그런데 그 사람들도 아픈 것 같아 네가 가고 난 후 난 조합원 얼굴들을 잘 못 보겠어. 누가 아픈지 누가 힘든지 보고 싶지 않거든. 그냥 죽지 않기 위해서 싸울 뿐이지.

네가 죽고 며칠 지나 집에 와서 막내랑 같이 목욕한 적이 있었어. 7살 난 아들과 물장난치면서 목욕을 하다가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 장례식장만 벗어나면 평화로운 일상인데 잠깐 눈감고 회사 편에 붙어 살면 얼마나 편한데, 우리는 어째 싸우고 싸우는지 그리고 고통을 받고 아파하는지.

요즘 거리에서 투쟁할 때 네 영정사진과 피켓을 들고 다니는데 그것이 너무 낯설어. 집회대오 맨 뒤에서 구호 외치고 있을 것 같은 너인데…. 노조탄압의 죽음이 우리 곁에 성큼 다가온 사실이 두렵기도 하다.

광호야. 편찮으신 어머니 두고 갈 생각에 그렇게 차 주변에서 서성거렸니? 너와 친한 동료들 두고 갈 생각에 집에 못 갈 것 같다. 미안하다. 사랑한다고 문자를 남겼니?

누가 네게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을 들게 했는지 우리는 분명히 안다. 네가 현대자동차와 유성기업 자본가들의 욕심의 수레바퀴에 깔려 죽게 했지. 그래서 우리는 싸울 거야, 너의 죽음에 사죄하게 만들 거야. 이제 누구도 죽지 않게 열심히 싸워서 서로를 보듬어 않을 거야.

네가 쓰러진 후 너를 딛고 우리가 투쟁한다. 이 투쟁의 승리는 너로부터 다시 시작해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연대로 반드시 승리 할 거야. 지켜보는 네가 부끄럽지 않게 싸울게, 살아있을 때보다 죽은 다음에 너를 더 알게 된 지금. 내가 더 미안하고 사랑한다.

노동자가 열사가 될 때
- 임성용 시인

개나리 목련 진달래 벚꽃
봄날은 이리 환한데
한 노동자가 목숨을 놓았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하는데
아닙니다 아닙니다
강요당한 죽음은 자살이 아닙니다
죽게 만든 죽음은 타살입니다

누가 죽였습니까?
노조파괴 주범 유성기업과 현대차 자본입니다
이들이 살인자입니다
이들이 죽이니까 죽었습니다
죽어서라도 외치려고 죽었습니다
저 세상 먼저 보내야할 것들에게 맞서 싸우다
저 세상 먼저 가서 그들의 죽음을 기다리겠다고
영원한 결의를 다짐하러 떠났습니다

1995년 유성기업 영동공장 입사
스물 둘,
2016년 3월 17일 자결
마흔 셋,
스물 두 살에 노동자가 되어
스물 두 해를 노동자로 살다
짧은 생을 내건 한광호 열사여
한 목숨이 질 때
눈 앞에 다가오는 사람들
이지테크 양우권, 하이디스 배제형
금호타이어 김재기, 버스노동자 진기승
비정규직 노동자 최종범, 염호석, 박정식, 윤주형
열 명, 스무 명 넘게 죽어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한 목숨이 질 때
다시, 또다시 살아오는 목숨들

탄압과 폭력
감시와 파괴
해고와 처벌,
싸늘하게 식은 핏줄을 타고
한 목숨이 질 때
끊임없이 지고야 마는 목숨 끝으로
흐르지 않고 목 맨 세월이 흐릅니다
기어이 한 목숨이 질 때
풀리지 않고 묶인 분노가 터집니다

마지막, 체온이 단단한 돌이 될 때
마지막, 고통이 저항의 숨결이 될 때
마지막, 그립고 슬픈 사람의 얼굴이 지워질 때
이렇게 봄이 올 때
이렇게 꽃이 필 때
이렇게 한 목숨이 질 때
목숨을 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피어나야 하는가
노동의 기억이 눈을 감을 때
노동자가 열사가 될 때
피맺힌 목숨의 노동자들은 어떻게 싸워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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