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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반기문 자랑스럽다' 말할 자격 있나?

[기고] 유엔 에이즈 회의에 말단 공무원 보내는 한국 정부

한국에서 HIV 감염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이 사회에서 인간답게 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에 대한 참담한 질문을 던진다.

2014년 8월 나는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강제 퇴원된 후 고시원에서 혼자 살아가는 한 HIV 감염인을 만났다. 수동연세요양병원은 국가에이즈관리사업의 일환으로 '중증 에이즈환자 장기요양사업'을 위탁받아온 곳인데, 2011~2013년까지 지속적으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권 유린과 치료 소홀 논란이 제기됐고, 2013년 12월에 질병관리본부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했다.

에이즈 확진을 받은 후 하지 마비가 온 그는 수동연세병원에 입원했지만, 재활에 필요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감옥소보다 못한 곳"에서 살 수 없었다는 그는 결국 요양병원에서 스스로 목을 매었다. 병원은 자살을 시도한 환자를 한밤중에 앰뷸런스도 아닌 개인 차량에 실어 다른 종합병원 응급실에 버리다시피 두고 왔다.

이러한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그는 재활에 대한 의지가 있었다. 매일 혼자서 걷기연습을 한 결과, 우리가 한여름 햇살 아래서 만났을 때 그는 두 발로 고시원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가 말한 병원에서 자살을 시도한 이유는 간단했다.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으면서 도대체 살아서 무엇하느냐"는 것이다.

에이즈에 대한 뿌리 깊은 낙인과 사회적 돌봄의 부재는 평범한 40대의 한 남자를 순식간에 인간 이하의 존재로 만들었다. 고교 졸업 후 20년간 원양 어선 선원으로 일하며 형제들에게 돈도 부쳐주었고, 배에서 내리면 가게도 하고 싶었다는 평범한 사람의 삶은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 돌봐줄 가족도 없었고, 아픈 몸과 마음을 치료해주었어야 할 요양병원은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그를 내쫓았으며, HIV 감염인을 위한 쉼터는 턱없이 부족했다.

한 달에 정부가 주는 기초생활 수급비 48만 원 중에서 21만 원을 고시원 방값으로 주고 나면, 27만 원이 남는다.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는 나의 질문에 그는 "그냥 이렇게 살다 죽겠지요"라고 답하였다. 그래도 그는 "병원에서 환자한테 좀 잘해주는 것만 바란다"며 질병관리본부의 수동연세요양병원에 대한 실태조사(2014년 12월)에도 응했고,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겪었던 일을 여러 차례 증언했었다.

하지만 질병관리본부는 위탁계약을 해지하고도 1년이 넘도록 수동연세요양병원에 에이즈 환자를 방치했고, 에이즈 환자가 갈 수 있는 요양병원이 없는 현실은 절망의 끝에서 남은 힘을 짜냈던 그를 더 힘들게 했다. 결국 그는 2015년 1월 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에이즈가 아니라 차별이 사람을 죽인다

한국의 HIV 감염인들이 경험하는 이 뿌리 깊은 절망감과 부정의는 지난 30년간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에이즈 치료의 발전과 기이한 대조를 이룬다. 과거 개발도상국의 수많은 사람들이 에이즈 치료제가 없어서 죽어갈 때, 한국의 HIV 감염인들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는 비교적 일찍 에이즈 치료제를 무상으로 공급받아왔다. 한국은 에이즈 치료에 대한 접근율이 거의 100%에 이르지만, 한편으로는 HIV 감염인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 국가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HIV감염인은 인간답게 살 방법이 없어서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는다. 에이즈 치료제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의 활동을 억제하고, HIV 감염인들이 건강하고 생산적인 삶을 유지할 수 있게 하지만, 사회적 고립은 막을 수 없다. 차별과 낙인은 HIV 감염인들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방법을 체계적으로 차단한다는 점에서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살인적이다.

자랑스러운 반기문 사무총장? 유엔 주최 에이즈회의에 말단 공무원 한 명 보내는 한국 정부

한국은 에이즈 전염률이 낮음에도, 이처럼 HIV 감염인에 대한 뿌리 깊은 차별과 낙인이 있는 나라로 국제 사회의 큰 관심을 받아왔다. 수동연세요양병원에서 일어난 에이즈 환자에 대한 인권 유린과 성폭력 사건은 국제 사회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작년 10월에는 유엔에이즈 아시아태평양 지부의 대표가 직접 한국을 방문해 갈 곳 없는 에이즈 환자들의 처지를 듣기도 했다.

이를 인연으로 HIV/AIDS 인권연대 나누리+는 한국 시민사회대표로 지난 1월 28~30일 태국 방콕에서 열린 유엔 아시아-태평양 경제사회위원회(United Nations Economic and Social Commission for Asia and the Pacific, ESCAP) 주최 정부 간 에이즈 회의에 참관인으로 초청받았다. 이 회의는 2030년까지 에이즈를 종식하기 위해 유엔 회원국들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또 앞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를 밝히는 자리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나라인 한국에서 온 정부대표단이 이번 회의에 참석하자, 유엔에이즈를 비롯한 각국의 여러 에이즈 활동가들은 큰 기대를 보였다. 하지만 회의 기간 동안 지켜본 한국 정부 대표단의 활동은 크게 실망스러웠다. 반기문 총장은 역대 유엔 사무총장 중에 가장 적극적으로 에이즈 문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와 비교해 한국 정부의 국내 및 국제 에이즈 문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미미하다.

▲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연합뉴스

이번 회의에서 역시 한국 정부의 존재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정부대표단의 구성에서부터 격에 맞지 않았다. 대다수의 정부 대표단이 각국의 에이즈 정책에 권한과 책임을 지닌 국장급 이상의 고위급 인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한국 정부대표단에는 질병관리본부의 연구사 1명과 태국 주재 한국 대사관에서 온 파견 직원 1명이 포함되었을 뿐이다. 국제 사회에서 한국의 에이즈 정책에 대해 책임 있는 발언을 할 수 있는 인사가 전혀 포함되지 않은 것이다. 또한 한국 정부는 유엔경제사회권위원회에서 요청한 한국의 에이즈 관련법과 정책에 관한 보고서 역시 제출하지 않았다.

한국 정부의 보고 내용은 회의장에서 급조되었으며, 그 내용 역시 허술하기 그지없었다. 각국 대표단이 발표를 이어가는 동안에도 한국 대표단은 본 회의장을 수시로 이탈하며 발표 준비를 하였다. 발표된 내용 역시 회의의 목적과 주제에 부합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또한 3일 간의 회의 동안 진행된 수차례의 패널 토론 및 의제 조정 과정에서 한국 정부대표단은 첫날 전체 발표를 제외하고는 단 한 차례도 발언하지 않았다. 호주, 인도, 중국 대표단이 자국의 외교적 역량을 드러내며 적극적인 의사 진행 발언을 하고, 몽골, 피지와 같은 지역 내 약소국들 역시 국제 보건에 대한 자신들의 역할과 의견을 밝힌 것과는 달리, 한국 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정부 간 회의에서 그 어떤 존재감도 발휘하지 못하였다.

에이즈 확산을 2030년까지 종식시킬 수 있다?

유엔에이즈는 2030년까지 에이즈 확산을 종식하겠다는 야심찬 선언을 해온바 있다. 에이즈 종식이라는 유엔에이즈의 목표는 언뜻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전혀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유엔에이즈가 생각하는 시나리오는 이렇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사전 고지와 비밀 유지를 보장하는 방법을 통해 에이즈 검사를 받고 적절한 시기에 치료를 시작하면, HIV의 활동성을 크게 줄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전체 인구군 내 에이즈 전염률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2015년 아시아태평양 정부 간 에이즈 회의는 이러한 목표를 실현시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할 것인가에 대한 회원국들 간의 토론과 교류의 장이었다. 이번 회의에서 여러 정부대표단들이 강조한 점은 각국 정부가 에이즈 문제 해결에 대한 정치적 의지를 가져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모든 사람이 에이즈 예방과 치료에 접근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엔에이즈가 제시하는 에이즈 문제 해결의 최우선 조건은 인권 중심의 접근과 사회적 통합이다. HIV 감염인들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에이즈 정책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는 에이즈라는 질병이 아니라 이 질병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 정책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말자! (Leave No One Behind!)"

2015년 아시아태평양 정부간 에이즈 회의의 모토는 "그 누구도 뒤에 남겨두지 말자!(Leave No One Behind!)"였다. 국제 사회가 공생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사회의 에이즈 문제에 큰 시사점을 던진다. 한국에서 HIV 감염인에 대한 낙인과 배제가 결국 이들의 목숨마저 빼앗는 방식은 연쇄적이고 집단적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에이즈에 대한 차별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조건이 아니라, 정부와 민간이 본격적으로 맞서 싸워야할 공중보건 상의 핵심적 위험요소이다.

사람답게 살 수 없으니 차라리 목숨을 끊고야 말겠다는 한국 HIV 감염인들의 절망적 선택은 인간적 존엄성이야말로 곧 사람의 목숨과 같은 것이라는 점을 웅변하고 있다. 수많은 HIV 감염인들이 지속적으로 경험하는 모욕과 폭력은 소수의 예외적인 경험이 아니라, 한국 에이즈 문제의 핵심이다. 한국 정부가 국제 사회에서 이미 수차례 결의한 바와 같이 에이즈 문제 해결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란다. 국가에 격을 매길 수 있다면, 이는 아마도 '인간적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공동체로서 우리가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가'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낙인과 차별 속에 홀로 남겨져 차라리 죽기를 바라는 사람이 없도록 하는 것, 이 지점에서부터 한국 에이즈 정책이 다시 서기를 간절히 바란다.
본지는 지난 2월 5일자 뉴스면 "한국, '반기문 자랑스럽다' 말할 자격 있나?"라는 제목으로 수동연세요양병원이 자살을 시도한 에이즈 환자를 종합병원 응급실에 버리다시피 하여 강제 퇴원시켰으며, 인권유린과 치료 소홀 논란이 제기됐고, 질병관리본부로부터 계약 해지를 당했다고 보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수동연세요양병원은 위 환자의 전원과 관련하여 종합병원 측과 상담 후 간병사의 동행 하에 이송하였고, 질병관리본부와의 위탁계약 해지는 최종실적 평가 결과 기준점 미달에 의한 것이었다고 알려왔습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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