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리해고 연속기고 ① "정리해고는 과연 불가피한가? 현실은…" ② "그 잘나가는 회사의 정규직들은 왜 잘렸나?" |
지난 IMF 경제 환란 이후 고통분담이라는 미명 하에 정리해고제를 도입한지 10년이 넘었다. 1998년 현대자동차 정리해고를 시작으로 대우자동차, 태광산업, 외환카드, 코오롱, 흥국생명, 쌍용자동차, 한진중공업 등에서 정리해고가 강행되었고 제조업, 사무직, 금융기관, 공공기관 등 업종을 가릴 것 없이 구조조정은 전 부문에 걸쳐 상시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구조조정에는 여러 가지 방안이 있다. 구조조정에 있어 정리해고는 최후의 수단이다. 그런데도 기업은 사람을 자르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다. 사회 안전망이 구축되어 있지 못한 우리 현실에는 해고는 생계불안과 심리적 열패감을 불러일으켜 생존마저 위협한다. 그래서 해고는 살인이다.
흥국생명의 예를 보면 정리해고가 얼마나 심각하게 악용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매년 수백억 원씩 흑자가 나는 기업에서 확인할 수도 없는 장래에 경영이 나빠질 수 있다는 이유로 정리해고를 강행하였다. 정리해고 대상자 70%를 노동조합 간부로 하여 노동조합도 와해되었다. 남은 직원들은 노동 강도가 너무 심해졌고, 회사는 퇴사한 직원들을 콜센터, 지점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흑자 회사가 미래 경영상의 위기로 정리해고
흥국생명은 태광그룹 계열사로 매년 흑자 나는 회사였다. 그런데도 2005년 1월 정리해고를 강행하였다. IMF 이후에도 단 한 번의 적자도 없었다. 그런데 장래에 경영이 나빠질 수 있다는 가능성 하나로 정리해고가 이루어졌다. 정리해고는 긴박한 경영상의 사유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노동법의 단서는 회사 입장에서는 그저 낙서에 불과할 뿐이었다.
▲ 흥국생명 연도별 당기순이익 현황 및 직원 현황. |
표는 IMF 이후 흥국생명의 당기순이익 현황을 보여주고 있다. 단 한 번의 적자도 없었고 오히려 흑자폭이 늘어나고 있다. 다만 2004년 당기순이익이 전년보다 감소했는데, 그 이유는 부동산 취득, IBNR(이연상각신계약비 115억 원), 희망퇴직 위로금(73억 원), 전산장비구입(212억 원)등 400억여 원을 지출했기 때문이다. 전산장비 구입금액과 퇴직위로금만 합해도 전년도 흑자를 넘어선다. 긴박한 경영상의 위기가 있다고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전년도 대비 흑자폭이 감소하면 정리해고 정당?
그러나 법원은 일시적인 지출로 인한 흑자폭 감소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인정하였고, 회사가 노동조합과 협의 없이 희망퇴직 대상자를 일방적으로 선정해도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동일한 해고 사유를 두고 처음에는 완전히 다른 판결이 나왔다. 부당해고 사건에 있어서 대한민국 검찰이 회사를 기소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흥국생명의 경우 검찰이 해고자들의 고발을 받아들여 부당해고 약식명령을 구하였다. 형사법원은 이를 받아들여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흥국생명과 사장에게 1000만 원의 벌금형을 선고하였다. 동일한 해고 사건에 대해 다른 해석의 판결이 내려진 것이다.
▲ 2006년 9월 서울지방법원은 흥국생명 정리해고 사건을 부당해고로 인정하고 벌금 1천만원을 선고했다. ⓒ흥국생명 해복투 |
이처럼 흥국생명의 해고자들이 정리해고에 대한 법원의 판결을 부당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흑자폭 감소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인정한 것 외에도 정리해고 절차를 대부분 위반하였는데도 법원이 회사의 주장에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법원의 판결이 얼마나 문제가 있는지 좀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자.
첫째, 희망퇴직을 노조와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했고, 희망퇴직 대상자를 미리 선정하였다. 법원은 이 대상자가 희망퇴직을 거부하자 정리 해고되었음에도 회사가 해고회피노력을 했다고 인정하였다. 희망퇴직자의 대상자가 사실상 정리해고 대상자임에도 노조와 협의를 거치지 아니하고 일방적으로 추진하여 정리해고의 절차 위반으로 부당해고로 판결한 쌍용자동차 해고사건(대법원 2005.11.25. 선고 2005다38270 판결)과 상반된 판결이다.
둘째, 지난 2000년 12월 흥국생명은 광화문 본사 사옥을 모기업인 태광산업에 매각하였는데 이는 계열사 간의 내부거래임에도 해고회피노력으로 인정하였다. 오히려 흥국생명은 정리해고 기간인 2004년 12월 부동산을 매입(293억 원)을 하지만 법원은 이를 외면했다. 세상에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로 정리해고를 하면서 고가의 부동산을 구입했는데, 법원은 단지 '방어적 목적의 부동산 구입'으로 인정하는 친절함을 보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흥국생명은 투자수익 목적으로 부동산을 샀다.
셋째, 흥국생명은 일부 사업을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의 개인회사로 아웃소싱하였지만 이를 해고회피 노력으로 인정하였다. 흥국생명의 전산 부분을 도급한 회사는 태광시스템즈, 시설 및 사옥관리를 도급한 회사는 태광리얼코로 이호진 회장이 100% 출자한 개인회사다. 이후 이 회사의 지분 소유구조는 이호진 회장 51%, 아들인 이현준 49%로 바뀌었다. 흥국생명의 분사 및 도급은 대주주를 위한 편법 상속을 위한 것으로, 부당내부거래인 '일감 몰아주기'임에도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 주었다.
넷째, 법에는 정리해고 이후 신규직원 채용을 금지하고 있지만, 흥국생명은 지점의 정리해고 이후 지점의 총무를 다시 아르바이트(계약직)로 채용했어도 법원은 이를 위법하다고 받아들이지 않았다. 회사는 사무지원수수료를 지점장에게 지급하고 이 돈을 지점장이 다시 총무에게 지급하였는데, 법원은 "개인사업자인 지점장이 지점에 총무를 채용한 것으로 문제가 없다"고 판결했다. 또한 2006년 11월부터 매년 10여명 이상의 신규직원을 채용했음에도 단지 정리해고자에게 재고용 제의를 가지고 신규채용의 정당성을 부여했다.
▲ 지난 2월 서울서부지방법원 앞에서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 선고를 앞두고 '엄벌촉구 108배'를 하는 해고자. ⓒ흥국생명 해복투 |
흥국생명, 정리해고 후 4천억 원 들여 부동산투기
흥국생명은 법원을 기망하고 정리해고를 단행했다. 대법원 판결 이후 정리해고 때 폐지했던 총무직을 부활하여 신입사원을 채용하였고, 아웃소싱하였던 회사가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회사로 밝혀져 여론의 지탄을 받았다. 특히 흥국생명은 미국발 금융위기로 재정건정성이 악화되고 있는 2009년 3월 광화문 본사빌딩을 4300억여 원에 다시 매입하였다. 당시 직원들의 임금은 반납시키면서 이호진 회장과 태광산업은 부동산 매각으로 1800억 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흥국생명의 정리해고로 노조는 파괴되었다. 노동조합의 감시가 사라진 가운데 대주주인 태광그룹 이호진 회장의 비자금 사건이 터졌다. 이 회장은 결국 횡령 및 업무상 배임 등으로 4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이러한 사회적 지탄을 무시하였다. 올해 금융감독원은 흥국생명에 고액배당을 자제할 것을 요구하였다. 그럼에도 사측은 횡령죄로 감옥에 있는 이호진 회장을 위해 141억 원을 배당하였다. 미래경영상의 이유가 아니라 미래의 탐욕을 위해 정리해고를 한 것이다. 정리해고 이후 흥국생명은 단 한 번도 적자가 나지 않았으며, 미래 경영상 위기는 전혀 닥쳐오지 않았다. 정리해고라는 주홍글씨에 때문에 해고자들만 죽어나고 있을 뿐이다.
기업이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정리해고를 남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이제 정부가 앞장서 그 대책을 제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정리해고는 도산 수준에만 가능하게 법을 개정하고, 불법 정리해고에 대한 처벌 조항을 만들어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부가 세습되는 것을 넘어 학벌과 직업까지 세습되는 사회로 가고 있다.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고통과 정리해고의 칼바람까지 자식들에게 세습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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