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당 대표연설 "친일파 대 주사파? 여야의 나쁜 정치"

"정치권, '가상의 공포' 앞세워 복지·성폭력·산재 등 현존 삶의 위협 무시"

정의당이 정기국회 비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친일파 대 주사파"로 요약되는 여야의 적대적 대결 정치를 정면 비판했다. 정의당은 정치가 복지체계 공백, 산업재해, 성폭력 등 "현존하는 삶의 위협"을 우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27일 국회 본회의장 연설에서 "수원에서 세 모녀가 사망한 지 석 달이 지났다. 같은달 광주에서 보호종료청년이 생을 비관해 목숨을 끊었다. 신당역에서는 여성 노동자가 동료에게 스토킹 살해를 당했고, 얼마 전 국내 최대 제빵업체에서 갓 스물을 넘긴 청년이 반죽기계에 몸이 끼어 숨졌다. 모두 두세 달 사이에 일어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비대위원장은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더 이상 우리 정치의 작은 뉴스거리도 되지 않는다. 잠시 관심을 갖는 척 하지만 곧 집단적 기억상실에 걸리는 것이 오늘날 한국 정치"라며 "대신 우리 정치를 지배하고 있는 이슈는 '친일파 대 주사파'"라고 꼬집었다.

이 위원장은 "제1야당 대표가 앞장서 일본과의 군사 협력을 친일국방이라 말씀하고, 대통령이 직접 주사파 논쟁에 뛰어들었다"며 "묻겠다. 친일파와 주사파가 과연 현존하는 위협인가?"라고 따졌다.

이 위원장은 "친일국방 논란은 지난 정권의 '죽창가'처럼 외교안보현안을 국내정치에 이용하려는 욕망에서 시작된 것이다. 한일 방위협력은 윤석열 정부의 독자적 작품이 아니라 이미 역대 정권에서 조금씩 확대되어 왔다"고 더불어민주당을 비판했다.

국민의힘을 겨냥해서는 "체제 경쟁은 진작에 끝났고 북한 체제를 대한민국에 이식하려는 집단을 시민은 용납하지 않는다. 주사파는 오직 우파 유투버와 김문수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같은 집단에서만 존재하는 위협, 아니 망상일 뿐"이라고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수원 세모녀 사건, 광주 보호종료 청년 사건, 신당역 살인사건, SPC 계열사 빵공장 사망사건 등을 언급하면서 "마땅히 사회가 보호했어야 할 시민들이고 정치가 대안과 해법을 가져야 할 문제들이었다"고 지적했다. "복지전달체계는 정작 약자들에게는 작동하지 않고 있다. 여성들에게 스토킹의 끝은 죽음이다. 30만 원짜리 안전센서를 붙이지 않아 사망재해가 발생했다"며 그는 "희생자들은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고장났는지를 바로 자신의 죽음으로 고발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위원장은 "정치가 가상의 공포를 앞세운 사이, 복지체계의 공백, 직장 내 성폭력, 산업재해와 같은 우리 삶에 현존하는 위협은 무시되고 있다"며 "(여야의) 적대적 정치는 정치의 힘을 가장 필요로 하는 힘 없는 약자들에게서 공공정책이 자신의 삶을 개선시킬 수 있다는 기대를 빼앗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 위원장은 "정치의 정상화, 정치의 부활이 절실하다"며 "첫째, 대통령은 반민주적 의회 모독을 결자해지해야 한다", "둘째, 사정기관을 앞세운 통치를 중단해야 한다", "셋째, 특검 국회를 민생 국회로 전환하자"는 제안을 내놨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은 김일성주의자'라는 김문수 경사노위 위원장의 발언을 눈 앞에서 듣고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망언보다 더 심각했던 것은 '주사파는 협치의 대상이 아니'라는 윤 대통령의 발언"이라며 "의회와 정치를 모독하는 망언에 대통령은 정당성을 부여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통령이 직접 해결하시라. 김문수 위원장 같은 극렬 인사를 사퇴시키고 자신의 실언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고 윤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그는 또 "윤석열 정부의 사정 통치는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다"며 "전임 정부의 정책에 대한 심판은 선거에 참여하는 시민의 평가에 맡겨두어야 한다. 폭주하는 사정기관을 제어하지 않는다면 5년 뒤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악순환을 끊는 결단을 내리라"고 역시 윤 대통령에게 촉구했다.

이 위원장은 민주당을 향해서도 "특검 국회를 민생 국회로 전환하자"면서 "가장 가혹한 자들에게 수사를 맡기고 결백을 증명하는 정공법을 택해야 한다. 제1야당 주도의 특검법 발의는 국회의 기능 정지를 불러올 것"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특검보다 훨씬 더 절실한 문제들이 기다리고 있다"며 "사각지대 없는 온전한 손실보상, 기초연금 인상, 디지털 성범죄피해자 원스톱 지원센터 등 이 대표가 말했던 과제들을 정기국회에서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특검이 정치의 블랙홀이 되는 일이 없도록 재고해 달라"고 호소했다.

한편 이 위원장은 "'노란봉투법'은 손배노동자가 불쌍해서 연민하기 위해 만든 법이 아니다. 헌법상 기본권이며 인류가 이룩한 결사의 자유라는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법"이라면서 "하지만 벌써부터 대통령 거부권이 이야기되고 있다. 노란봉투법에 대해 거부는 자유에 대한 거부"라고 비판, 법 통과를 호소했다.

▲이은주 정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이 27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정기국회 비교섭단체 대표발언(연설)을 하고 있다. ⓒ국회 의사중계시스템 화면 갈무리

한편 국회는 이날 본회의에서 지역사랑상품권 활성화법, 자동차관리법, 소방기본법 개정안을 포함한 비쟁점 법률안 44건 등 총 45건의 안건을 처리·의결했다. 정우택 의원이 내정된 여당 몫 국회부의장 보궐선거 안건은 다음 본회의로 순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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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훈

프레시안 정치팀 기자입니다. 국제·외교안보분야를 거쳤습니다. 민주주의, 페미니즘, 평화만들기가 관심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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