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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과 007, 그리고 <경계도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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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플린과 007, 그리고 <경계도시2>

[특별기고] <경계도시 2> 지지 릴레이 리뷰 (1)

※ 2003년 재독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무려 37년만에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한국사회에는 송두율 교수를 둘러싸고 매서운 마녀사냥의 광풍이 불었다. 당시 송두율 교수와 동행하며 이 풍경을 잡아냈던 홍형숙 감독은 오래도록 촬영한 테입더미를 붙잡고 고민하다가 작년에야 <경계도시 2>를 완성한다. 이 영화는 작년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돼 배급지원펀드상을 수상했고, DMZ 다큐멘터리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을, 서울독립영화제에서는 최우수작품상과 독불장군상을 수상했다. 한독협이 선정하는 '2009년을 빛낸 올해의 독립영화'로 뽑히기도 한 <경계도시 2>는 오는 3월 18일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하며 일반 관객들을 만날 예정이다. 한국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통찰하고 고발하면서도 '우리 모두'의 한계를 찬찬히 성찰하는 이 영화에 사회 각계 인사들이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다. 프레시안은 이들이 특별기고한 릴레이 리뷰를 연재로 싣는다. 첫 번째 원고는 서강대학교 현대정치연구소 교수이자 민주주의교육센터 연구원인 서복경 교수가 보내왔다. - 편집자 주

1.
"대한민국은 '전향'한 사람은 용서해줬지 않습니까?... 저 새끼는 사형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 2009년 독일 연방의회 선거결과를 볼 일이 있었다. 그 선거에서 구 동독 체제정당의 후신 좌파당은 정당투표에서 집권당이던 기민/기사연합 득표율 29.8%에 맞먹는 28.5%를 획득했다. 순간 필자의 뇌리를 스친 것은 어느 다큐멘터리의 강렬한 대사 한 대목이었다. 2003년 재독 철학자 송두율 교수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재판을 받을 당시, 재판을 방청하러 들어서던 한 인사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전향'하면 받아줄 수 있으나 '전향'하지 않은 송두율은 사형에 처해 마땅하다는 격정적인 토로...

그 영화를 보면서 생각했었다. 혹시라도 남한과 북한이 정치적으로 함께 하는 날이 오면, 그 많은 '전향' 대상자들의 '전향'을 어떤 방식으로, 어느 선까지 받아내야 하는 것일까? 또 2009년 독일 선거결과를 보면서, 옛 동독 체제정당의 수많은 당원들은 통일직후 어떤 정치적 대우를 받았을까? 꼬리를 물고 줄을 서서 검찰에 들어가 전향서를 요구받고 거부한 이들이 다시 줄지어 재판정으로 향하면, 판사들은 프레스에서 기계를 찍어내듯이 체제적합성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마치 찰리 채플린 영화의 한 장면 같은 영상이 떠올랐다.

▲ <경계도시 2>

2.
'2003년 그는 스파이였고, 2009년 그는 스파이가 아니다.'

영화 <경계도시2>(감독 홍형숙)는 마치 007시리즈의 한 편 같은 카피를 뽑아냈고, 실제로도 영화는 여느 스파이물처럼 러닝타임 내도록 관객을 사로잡는다. 사건의 전개는 긴박하며 빠르고 적과 아는 명료히 구분되는 듯하다가도 다시 엇갈려, 보는 이들이 퍼즐 맞추기 게임을 멈추지 못하게 만든다. 처음 단출한 주연배우들만의 이야기로 출발한 영화는,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많은 배우들이 등장하고 이들은 배역의 비중을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모두 주연급의 활약을 보인다. 얽히고설킨 실타래 뭉치가 점점 불어나 시작점과 끝점을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을 그 때, 영화는 실타래 한가운데를 단칼로 내리쳐 관객의 뒤통수를 친다.

배역들은 일거에 혹은 순차적으로 등장해 주인공 '스파이'에게 법적이거나 도덕적인 과오와 책임을 묻는다. 배역들은 그저 맹목적인 선과 악을 대표하지 않는다. 관료,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교수, 시민단체 활동가의 전형적인 행위양식을 보여주면서도 갈등하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한다. 현재를 사는 한국인으로 충분히 공감이 가는 고뇌를 담고 있기에 더욱 설득력을 가진다. 이들의 언술과 논리는 너무나 친숙하고 자연스러워, 영화가 말미에 이르면 최소한 그가 '스파이'거나 '스파이'였으며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에는 공감을 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바로 그 때... 대한민국 법정은 '스파이'에게 '무죄'를 선고함으로써 일순 피고와 원고의 자리를 뒤바꿔버린다.

3.
<경계도시2>는 2003년 대한민국의 실존인물들이 출연한 논픽션만 아니라면, 최첨단무기와 늘씬한 미녀만 빠진 '냉전 후 스파이 영화'로도 감상할 수 있을 만큼 잘 만들어졌다. 하지만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무리 자막이 올라갈 때 더 섬뜩해지는 영화다. 무대는 민주화가 된 지 25년이 지났고 세계적 수준의 냉전이 해체되고도 10년이 더 지난 2003년의 대한민국이다. 그 사람이 한 행위의 '결과'가 아니라 생각과 신념을 담은 그의 '가슴'과 '머리'가 공개적으로 해부되는 곳, 법정이 판결을 내리기도 전에 검찰은 피의사실을 공표하고 언론은 이를 토대로 여론재판을 이끌어갈 수 있는 곳, 집단의 이익 앞에 개인의 삶과 신념은 훼절되어도 무방하다는 생각에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곳... 우리는 지금도 바로 그 곳에서 똑같은 일들을 무수히 목격하며 살아간다. 더욱 섬뜩한 것은, 법원의 '무죄'판결이 있은 후 그에게 법적이거나 도덕적인 책임을 물었던 숱한 사람들과 그 광경을 지켜보았던 무수한 '나'들이 너무나 쉽게 마치 없었던 일처럼 묻어두고 살아갈 수 있는 곳이, 또한 이 곳이라는 점이다. 이런 이유로, 영화가 끝나고 나서 그저 '영화는 영화다!'라고 외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게 되는 영화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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