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감사 기관 증인으로 오는 30일 출석이 확정된 이석수 특별감찰관 사표를 23일 전격 수리, 논란을 자초했다. 증인 출석을 불과 7일 앞둔 상황에서 특별한 맥락 없이 사표 제출 25일 만에 갑자기 이뤄진 일이다. 이로써 이 특별감찰관의 증인 채택 효력은 자연스레 소멸됐고, 국회 출석 요인은 사라졌다.
정기국회에서 예산안, 대통령 관심 법안 등을 두고 여당과 대립하고 있는 야당을 궁지에 몰고 있는 꼴이다.
청와대는 이날 밤 10시 30분 경 출입기자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보내 "박근혜 대통령은 오늘 오후 3시 이석수 감찰관의 사표를 수리했음을 알려드린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은 이 특별감찰관이 사표를 제출한 즉시 수리를 했어야 하거나, 최소한 검찰 수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사표 수리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최소한의 명분을 갖추기 위해서라면 그렇게 했어야 맞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이 특별감찰관이 오는 30일 기관 증인으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키로 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날, 이 특별감찰관의 사표를 수리했다. 지난 25일간 침묵으로 일관하던 태도가 갑자기 돌변한 셈이다.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최근에는 이 특별감찰관이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로 논란이 되고 있는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의 안종범 정책조정수석 연루설을 내사하고 있었다는 보도가 나왔었다.
이는 이 특별감찰관의 국회 증인 출석을 막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해석 외에는 설명할 길이 사실상 없다. 이 특별감찰관이 정국 최대 현안인 두 재단과 관련해 박 대통령에 불리한 증언을 할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사표를 수리했을 수 있다는 말이다.
더군다나 가족 기업 비리 등의 의혹으로 이 특별감찰관의 감찰 대상이었던 우병우 청와대 민정수석은 검찰이 수사에 돌입했음에도 사표를 제출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은 그를 경질하지도 않았다. 이는 감찰 내용 누설이라는 애매한 사안으로 검찰 수사를 받자마자 사표를 제출한 이 특별감찰관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이때문에 이 특별감찰관의 사표 수리 여부는 우 수석 등과 형평성을 고려, 검찰 수사 발표 이후에 이뤄질 것이라는 상식적 관측이 나왔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은 그런 상식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깨 버렸다. 정무적 부담 따위는 지고 가겠다는 의지 표명으로 읽힌다.
앞뒤 맥락 없는 사표 수리로, 박 대통령이 이 특별감찰관의 '입'을 막아야 할 절박한 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이 특별감찰관이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올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없지는 않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는 "기관 증인으로 채택될 경우, 자연스럽게 법사위에 출석할 수 있었지만 사표를 수리하게 되면 기관 증인 채택은 자연스레 소멸된다"면서도 "단 일반 증인으로 법사위 뿐 아니라 다른 상임위에서 채택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일반 증인은 기관 증인과 달리 여야 합의, 즉 새누리당의 동의가 필요하다"고 했다.
즉, 야당이 이 특별감찰관을 일반증인으로 채택하려고 해도 새누리당이 "검찰 수사중"이라는 이유로 합의를 해주지 않으면 불발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이 박 대통령 및 그의 비선 실세인 최순실 씨와 연루돼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 데 대해 노이로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새누리당의 노골적 태도로 미뤄보면, 이 특별감찰관 증인 채택에도 극렬히 반대할 가능성이 높다.
野 "부끄러움도 모르는 청와대의 행태에 분노"
더불어민주당 금태섭 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이 심야에 사표 수리를 알린 것은 이석수 특별감찰관이 국정감사에서 기관 증인으로 출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꼼수를 부린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며 "이것(증인 출석)을 막기 위해 주말 직전에 사표를 수리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비판했다.
금 대변인은 "국정검사가 이루어질 때 특별감찰관 자리를 공석으로 만들어놓은 것은 누가 보더라도 국회의 권능을 훼손한 것"이라며 "부끄러움도 모르는 청와대의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인데 제 눈을 가리는 데 불과할 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 대변인은 "국민적 의혹을 규명하기 위한 국회의 정당한 활동을 방해한 것은 삼권분립을 근간으로 한 헌법에 대한 중대한 도전으로 좌시할 수 없다"며 "우병우 수석 문제와 미르재단, K스포츠 재단의 의혹을 감추기 위한 청와대의 꼼수는 반드시 국민적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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