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1층 컨벤션센터에서는 한살림이 주최한 '방사능 오염과 먹을거리 위기에 대한 성찰과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에는 일본 생활클럽생협연합회의 가토 고이치 회장이 참석해 후쿠시마 사고 이후 일본 식품 오염의 상황과 생협의 대응 등을 전했다.
일본 생활클럽생협연합회의 고민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로 인해 방사능 피해가 광범위한 상황에서 그간 지켜왔던 식품 안전 기준과 피해를 입은 농,어민 보호라는 가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느냐에 있다. 특히 이번에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 지역은 농경 지역이자 양질의 수산물이 잡히는 어업 지역이었기 때문에 지역 재건은 농업과 수산업을 어떻게 되살려낼 것인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방사능 오염 걱정, 그러나 생산자 포기 할 수 없어"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지 1주일 후인 지난 3월 17일 식품의 방사능 오염 잠정 기준치를 냈다. 음료수, 우유·유제품 등에 요오드131 300베크렐, 세슘137 200베크렐, 채소류에는 요오드131 2000베크렐, 세슘 500베크렐 등이다. 가토 고이치 대표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너무 높은 수치고 나 역시 걱정을 하고 있다"며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협 역시 그간의 자체 기준 대신 이 기준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가토 고이치 생활클럽생협연합회 회장. ⓒ한살림 |
가토 고이치 대표는 "방사능 오염이 퍼져가는 가운데 그 자체 기준을 철저히 고수한다는 것은 생활클럽의 모든 식품을 검사한 후에 조합원에게 공급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태"라고 말했다. 애초에 '신선도'가 생명인 식품을 전수 조사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다 생활클럽이 자체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식품오염 검사실은 하루에 10건만을 할 수 있고 공공기관의 경우 이미 검사 물량이 엄청나게 쌓여있다.
게다가 '생산자 보호'도 고려해야 한다. 생활클럽생협으로서는 자체 기준 이하로 간주되는 산지의 농수산물만을 소비하는 것 역시 생각하기 어렵다. 생활클럽연합회 이사회는 지난 4월 낸 의견서에서 "40여 년에 걸쳐 소중히 쌓아온 생산자와의 제휴 관계를 포기할 수는 없다"며 "이 지역의 대지진 피해 복구 작업이 시급한 과제인 지금 제휴관계의 유지, 강화는 중요한 과제"라고 말했다.
그러나 당연히 조합원들은 '먹거리' 걱정에 상당히 불안해 하고 있다. 가토 고이치 대표는 "조합원들은 점점 불안해하고 있고 정신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며 "일부에서는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도 있어서 6월 중에 총회를 열어 조합원들과 많은 대화를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생협 물류센터에서 전용 검사실을 만들어서 각각의 식품을 소규모이나마 검사를 진행하려 한다. 그러나 지금부터 시작해도 8월이 되어야 대략의 검사를 할 수 있을 듯하나 방사능 문제는 아무래도 장기전이 될 것 같아 착실하게 해나가려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에 대해서는 '검사 지역을 세부적으로 설정해 오염 농도가 높은 곳 등을 철저하게 관리할 것' 등을 포함해 여러가지 요구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사능 오염 피해 도쿄,치바 등 수도권 전체에 미쳐"
방사능 사고 이후 특히 우려되는 식품은 시금치와 같이 잎이 넓은 채소들, 오염된 목초를 먹은 젖소가 생산한 우유, 까나리 처럼 작은 물고기 등이다. 특히 수산물의 경우 생활클럽연합회는 일단은 주로 작년에 포획한 냉동 수산물을 공급하고 회 등의 경우는 원전 사고가 일어난 해역은 취급하지 않고 있다.
가토 고이치 대표는 "목초가 방사능에 오염되면 낙농업계에는 미래가 없다. 또 수산물 중에는 작은 물고기나 해초가 먼저 방사능에 오염되고 이후 생태 농축 되면서 문제가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10년 간은 방사능 검사를 해도 불검출 결과가 나왔으나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난 후 우리가 취급했던 녹차에 대해 방사능 검사를 했다"며 "후쿠시마 원전으로부터 100킬로미터 떨어진 곳이었으나 20여 베크렐이 검출됐다. 37베크렐 이하이긴 하나 원전 사고의 영향이 도쿄, 치바, 카나가와 등 수도권 전체에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요즘 일본 시민들 정부 말 잘 믿지 않는다"
한편 가토 고이치 대표는 "지금 일본 사람들은 정부가 뭐라고 해도 잘 믿지 않는다"며 원전 사고 이후 일본 사회의 분위기를 전했다. 그는 "정부는 '영향이 없다'고 하지만 시민들은 신뢰하지 않고 '당장 영향은 없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어떤 영향이 나타날 것인가'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일본에서 잘 팔라는 주간지는 탈원전, 반핵 등의 주제를 명확히 하고 있는 것들 뿐"이라며 "이번 재난 지역이 모두 연안 지역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듯 정부가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할 때 어협(우리의 수협에 해당)의 협조를 받아 건설했으나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전국 어협 회장이 '앞으로 우리는 원전 건설에 반대한다'는 의견을 표명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우리는 후쿠시마 세대가 될 수 있다"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방사능 오염에 대한 우려는 한국의 소비자들도 마찬가지다. 이날 토론회에도 많은 수의 방청객이 모여 이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러나 한국 정부나 원자력학계 등은 시민들의 우려를 '과민 반응'으로 치부하고 무감각한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이날 토론회에서 "히로시마 핵폭탄과 체르노빌 사고 중 어느 쪽이 방사능 물질 배출이 더 많았을까 질문하면 사람들은 흔히 '히로시마'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체르노빌 쪽이 200~400배 정도 많았다"며 "핵발전소 사고가 핵폭탄보다 훨씬 더 많은 방사능 피해를 일으킨다"고 말했다. 우석균 정책실장은 "체르노빌 사고는 핵발전소 사고의 피해는 외부 피폭 보다는 내부 피폭으로 인한, 특히 주로 식품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면서 "우크라이나 지역에서는 전체 피폭의 80~90%가 우유, 육류, 버섯, 과일, 야채 등 식품으로 인한 내부 피폭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그는 "정부는 '편서풍 이론'을 내세워 전세계에서 한국이 가장 안전한 것처럼 이야기하나 이미 틀렸다는게 드러났다. 게다가 한국도 10년 쯤 후에 보면 피해지역의 일부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며 "체르노빌 사고 이후 유럽 전역에서 추가 암 발생 등 피해가 관찰되는 것처럼 향후 한국도 '후쿠시마 세대'에 속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그는 "그러나 한국은 후쿠시마 사고가 난 후 3달 가까이 되어 가는데 아직 식수기준이 없다. 큰 문제"라며 "한국의 식품 기준은 국제 기준에 적합하지 않거나 미비한 부분이 많은데 한국의 식품 기준은 수입 기준이 되기 때문에 명확하게 정하는 것이 앞으로의 무역 문제 등에서 중요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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