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직전 작성된 것으로 알려진 유서에는 청소용역업체 소장에게 상납금을 바친 일, 부당하게 업무가 배치된 일, 청소업체 관리직의 각종 비리 등이 적혀 있어 파문이 일고 있다.
"상납금 내면 편한 병실로, 안 내면 청소하기 힘든 병실로 배치해"
공공노조 동국대의료원분회에 따르면 숨진 A씨의 뒷주머니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청소용역업체 소장이 자신에게 일정 금액을 상납하지 않는 청소용역 노동자에게는 청소하기 힘든 병실로 배치시켰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반면 상납금을 내는 노동자에겐 일하기 편한 병동으로 보냈다고 밝히고 있다.
또한 유서에서는 청소용역 소장과 반장이 청소물품을 팔아 자신들의 호주머니를 채웠을 뿐만 아니라 쓰레기봉투를 A씨 등 청소용역 노동자들에게 팔아오라고 강요하기도 했다는 내용도 들어있었다.
A씨는 유서에서 한 달에 쓰레기봉투를 100장씩 팔아오라고 했다며, 하지만 팔지 못하고 그대로 쌓아놓았다고 밝혔다. 실제 고인이 죽은 뒤 그의 사물함에서는 600여 장의 쓰레기봉투가 발견됐다. 유족들은 고인이 쓰레기봉투를 팔지 못해 개인 사비로 이를 충당했을 거라고 판단했다.
노조를 탄압했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A씨는 유서에서 부당한 업무배치 등으로 청소용역 여성 노동자들이 노조에 가입하자 소장은 노조에 가입한 사람들을 연말에 모두 계약해지를 하겠다는 으름장을 놓기도 했다고 전했다.
소장에 대한 개인적인 억울함도 적혀 있었다. 유서에 따르면 청소용역 소장은 A씨에게 자신 소유의 낡은 집에서 10년이든 20년이든 살라고 했다. 이에 A씨는 일하면서 모은 돈 500만 원을 집 수선비로 쓰고 소장이 빌려준 집에 기거했다. 그러자 소장은 A씨에게 집세를 달라고 압력을 행사하며 집세를 내지 않을 경우 청소용역 생활도 못하도록 하겠다고 협박을 했다고 유서에 썼다.
유서에서 A씨는 자식들에겐 10년은 공짜로 그 집에서 살 수 있다고 했는데 10년은커녕 1년도 그러지 못했다며 자신의 억울함과 동국대병원 청소업체의 부정을 밝혀 문제가 시정될 수 있도록 경찰의 수사를 촉구했다.
▲ 고용 불안에 떨고 있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상납, 비리 등에 찍소리도 못하고 묵묵히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사진은 동덕여대 청소용역원들.(자료사진) ⓒ프레시안(여정민) |
유서 사실일 가능성 높아
동국대학교 경주병원 청소용역업체 B소장은 이러한 유서 내용을 모두 부인했다. 그는 <프레시안>과의 전화통화에서 "상납금을 받은 적도 없고, 그에 따라 부당하게 업무배치를 한 적도 없다"며 "또한 노조 가입한 사람들에게 압력을 가한 적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B소장은 "고인이 왜 그런 말을 유서에 적어 놓았는지 정말 모르겠다"며 "다른 사람이 고의로 유서를 대신 적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고 있다. 경찰 조사를 통해 모든 게 밝혀지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간 그와 함께 일해 온 동료와 유족 등의 증언에 따르면 A씨의 유서 내용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A씨는 소장의 집으로 이사를 한 약 6개월 전부터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유족에 따르면 A씨는 이때부터 말수도 줄어들고 우울한 모습을 보였다.
이춘기 공공노조 동국대의료분회 분회장은 "청소용역 소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이라며 "상납 등의 문제는 이미 10년 전부터 쉬쉬해온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집을 옮긴 뒤 대략 한 달 월세로 20만 원을 냈다"며 "한 달에 80만 원을 받는 청소용역원에겐 큰 돈"이라고 설명했다.
이 분회장은 "더구나 상납금과 쓰레기봉투를 파는 것과 관련해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아왔다"며 "결국 이러한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A씨를 압박해 죽음으로 몰아간 듯하다"고 말했다.
현재 경찰은 근무 중인 청소용역원과 퇴사자를 상대로 조사를 벌여 일부 용역원들이 소장에게 현금과 선물세트 등을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상납요구가 있었는지를 확인하고 있다.
경주경찰서 관계자는 "유서 내용의 사실관계를 파악 중"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청소용역 소장이 유서 내용을 부인하는 것을 두고서도 "반대 측 입장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유서 내용이 사실임에 무게를 두었다.
상납, 비리에도 찍소리 못하고 일 할 수밖에 없는 청소용역원
주목할 점은 고인의 죽음이 단순한 상납금 납부, 개인 비리 문제 등으로 인해 발생한 사건이 아니라는 점이다. 현재 대학, 지하철 등에서 청소용역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은 간접고용 방식이다. 즉 대학 등이 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어 청소용역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이다.
대학 등에서 이런 방식을 사용하는 이유는 인건비 절약을 위해서다.이런 간접고용 방식은 사용사업주에게는 해고를 쉽게 하고 인건비를 절감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용자로서 관리 책임은 지지 않아도 되는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이로 인해 현재 사회 곳곳에서는 이러한 간접 고용형태를 유지하고 있고, 점차 확산되고 있는 실정이다. 반면 해당 노동자들은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시달리고 있다. 게다가 고인처럼 용역업체의 중간착취까지 가중되면서 고통은 곱절이 되고 있다.
업무와 관계없는 원·하청 관리자들의 개인적인 일에 동원되기도 할 뿐만 아니라, 상납에 따라 근무지 배치가 달라지기도 한다. 또한 관리자들의 막말과 욕설, 성적 수치심을 유발시키는 폭언 등에도 늘 노출돼 있다.
하지만 고용 불안에 떨고 있는 청소용역 노동자들은 상납, 비리 등에 찍소리도 못하고 묵묵히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해고될지도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항의조차 제대로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법적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
류남미 공공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은 "고인이 생전에 겪은 일들은 특수한 사건이 아니라 청소노동자들이 일반적으로 겪는 일"이라며 "하청회사가 원청회사와 계약이 끝나면 하청에 속한 노동자들은 해고가 될 수 있는, 법적으로 노동권이 보장되지 않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류 실장은 "청소노동자의 노동환경, 고용형태가 바뀌지 않는 한, 고인과 같은 죽음은 언제든, 어디서든 또 벌어질 수 있다"며 "비용절감과 사용자로서의 책임회피를 위해 청소 등 업무를 간접고용으로 전환시키는 원청회사, 중간착취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하청회사, 간접고용 확대에 따른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간접고용을 부추기고 있는 정부 등은 청소노동자의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주장했다.
고인이 목숨을 끊은지 보름이 넘었지만 누구 하나 책임 있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청소용역업체는 그간 관리·감독 소홀을 책임지려는 모습 대신 경찰 조사가 발표된 후에 이야기하자는 반응 뿐이다. 청소용역업체와 계약을 맺은 사실상 직접고용 주체인 동국대학교 경주병원의 반응도 마찬가지다. 동국대 경주병원 관계자는 고인의 빈소도 방문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춘기 공공노조 동국대의료분회 분회장은 "청소용역 업체의 경우, 해당 소장을 고인이 돌아가신 뒤에도 4일 동안이나 출근시켜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며 "또한 고인의 죽음을 고인 개인의 문제인양 호도하고 주요한 내용들에 대해서도 자신들은 몰랐다는 식으로 나오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분회장은 "동국대학교 경주병원은 병원 직원이 아닌 용역업체 직원의 문제라며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자신의 병원을 청소하던 노동자가 죽었다면 최소한 죽은 이에 대한 죄송함과 유족에 대한 위로는 기본이 되어야 하는데 그런 것이 전혀 없다"고 주장했다.
진보신당은 31일 논평을 내고 청소용역업체와 동국대학교 경주병원 측의 태도를 비판했다. 진보신당은 "해당 용역업체는 관리감독에 대한 최소한 책임조차 지려 하지 않고 있다"며 "또한 동국대학교 경주병원 또한 이 사건을 용역업체만의 문제로 치부하며 무관심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진보신당은 "이번 사건을 두고 경찰의 철저한 수사는 물론, 동국대 경주병원이 나서서 사건의 전모를 밝히고 책임있는 조치를 취하는 건 당연한 일"이라며 "형식적인 고용계약 여부를 따지지 말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병원이 나서서 책임자 처벌, 잘못된 용역구조 개선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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