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인화면으로
"측은지심 가진 '선한 사마리아인'들은 다 어디로 갔나"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밴드 공유하기
  • 인쇄하기
  • 본문 글씨 크게
  • 본문 글씨 작게
정기후원

"측은지심 가진 '선한 사마리아인'들은 다 어디로 갔나"

[대담] 문정현 신부와 도법 스님이 바라본 용산참사 반년

꼭 6개월 전이었다. 2009년 1월 20일 새벽, 서울 용산 한강로2가에서는 6명이 목숨을 잃는 참사가 발생했다.

정부, 재개발조합, 건설 업체의 올바른 세입자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하루 전날부터 농성을 벌였던 세입자들, 흔히 '철거민'이라 부르는 그들의 농성을 경찰특공대가 진압하다 벌어진 사고였다.

우연은 아니었다. 철거민은 장기 농성을 각오하고 망루를 쌓았고, 그 안에는 다양한 '도구'가 마련돼 있었다. 경찰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경찰은 컨테이너까지 동원하며 진압을 벌였고, 저항하던 철거민들과의 싸움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반년의 시간이 지났다. 그간 이 사회가 참사를 수습하려 한 노력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부랴부랴 수사본부를 꾸렸던 검찰은 '경찰 무죄, 철거민 유죄'라는 결론으로 철거민만 기소했다. 검찰은 재판부가 요구한 수사 기록 3000쪽도 내놓지 않았다. 정부 차원의 사과는커녕 경찰은 그 비극을 똑같이 재연한 모의 훈련을 '대테러 훈련'이라는 이름으로 실시했다.

유가족은 장례도 치르지 못했다. 대책 마련을 촉구했지만 정부는 눈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참사가 난 바로 그곳에서 용역 업체 직원과 철거민의 싸움은 어김없이 되풀이되고 있다.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한 경찰 역시 싸움에 '주연'으로 등장했다.

유족들은 결국 "20일 시신을 메고 거리로 나선다"고 말했다.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했고, 최후의 수단을 쓴다는 것. 어떻게 해야 이 암담한 현실 속에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우리 사회는 왜 6개월 동안 용산 참사를 해결하지 못했나.

지혜로운 답을 듣기 위해 두 성직자를 만났다. 한 성직자는 용산 참사의 현장 속으로 가장 깊숙히 들어가 매일 밤낮을 철거민과 함께 보내고 있다. 또 다른 성직자는 종교와 삶이, 종교와 사회가 떨어지면 안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며, 생명 평화의 원리를 설파하는 이다. 바로 문정현 신부와 도법 스님이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양재 인드라망생명공동체 회의실에서 대담이 진행됐다. <편집자>

"서로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
"그게 대원칙일 수는 있으나, 현장에서 일어나는 걸 보면…."


두 성직자는 서로를 잘 알았다. 같지만 또 서로 다르다는 것을.

2004~2005년 천성산을 놓고 지율 스님이 단식을 할 때였다. 문정현 신부는 답답한 마음에 도법 스님이 있는 실상사로 무조건 찾아갔다. 그때 도법 스님이 나섰다. 그 일은 불교계가 적극적으로 지율 스님을 살리는 운동에 결합하는 계기가 됐다. 문정현 신부는 "늘 동지 의식이 있고, 무슨 일이 있으면 스님이 생각난다"고 말했다.

두 성직자의 닮은 모습은 '길 위에 선 성직자'라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둘의 '길'은 사뭇 달랐다. 미군 기지 확장 이전을 반대하며 경기도 평택에서 마을 주민과 함께 살던 문정현 신부는 지난 3월 28일부터 용산 참사 현장에서 철거민과 함께 살며 경찰과, 그리고 용역 업체와 싸우고 있다. 2008년 사제 은퇴를 선언했지만, '길 위의 신부'라는 직책은 여전히 그의 것이다.

반면, 도법 스님의 길은 순례길이다. 수행 끝에 생명 평화라는 화두를 얻은 도법 스님은 2004년 지리산에서 시작해 최근까지 5년간 전국 모든 땅을 밟으며 대중과 함께 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진행했다. 오는 12월부터 동안거 기간에는 10~20명의 스님과 함께 지리산 일대 800리를 100일간 걸으며 수행하는 '움직이는 선원'을 연다.

용산에 머물고 있는 문정현 신부는 "이번에도 도법 스님 생각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나 "용산에 와서 분향이라도 좀 했으면 좋겠다"는 문 신부의 말에, 도법스님은 "나는 겁이 많아서 현장에는 못 간다. 나는 일이 생기면 찾아가서 엎드려 비는 '읍소'를 잘한다"라며 사양했다.

두 성직자의 '길'이 만나는 곳에 우리 사회의 아픔과 고통을 극복할 수 있는 지혜의 실마리가 있지 않을까. 다음은 대담 전문이다.

"어디 몸 한 군데가 아파도 온몸이 총동원돼서 치료를 하는데…"

▲ 2008년 은퇴를 선언했지만, '길 위의 신부'라는 직책은 여전히 문정현 신부의 것이다. ⓒ프레시안
문정현 :
평택 대추리 생각하면 제일 마음에 걸리는 게, 막말을 했다. 내 발로 걸어나오지 않겠다고. 그런데 주민들이 행정 대집행을 당하고 나서 더 이상 어떻게 견디냐고 하더라. 주민을 따라 나갈 수밖에 없었다. 정말 발길이 안 떨어지고, 미치고 환장하겠더라.

그 무렵에는 견디질 못해서 술을 많이 마셨다. 못 견디겠더라. 밭에 가서 삽질도 해보고 별짓 다 했다. 그러다 은퇴도 하고, 군산에 집 한 칸 만들어서 새 생활을 해야겠다 했는데 용산 참사가 딱 터졌다.

그래서 한두 번 왔다갔다 했는데 이건 참…. 그러다 화가 더 난 게, 김수환 추기경 추모 열기에 용산 문제가 다 묻혀버리더라. 그래서 들어와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런데 이건, 날이면 날마다 경찰과 격투다. 경찰이 도대체 조금도 양보가 없다. 나를 끌어내고 처박고. 저런 것이 무슨 신부냐며 온갖 모욕을 다 했다. 그러다 서울대교구 도시빈민사목위원회 대표 신부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전종훈 대표 신부가 들어오고, 그렇게 사제들이 들어왔다.

그런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매일 미사를 했다. 그래도 매일 미사를 하니까 사람들이 방문도 하고, 얘기도 듣고 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도법 : 바깥에서 늘 죄스러운 마음 뿐이다. 그렇지만 어찌 해볼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았다. 신부님처럼 용감하게 현장에 가서 같이 있지도 못하고…. 제가 몸담고 있는 조계종단이나 불교계가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가져보지만 역시 가능성이 보이지 않아서 답답하다.

대통령이나 집권 세력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갖고 있다는 이 나라가 그 문제 하나를 제대로 수습하고 풀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게 참 뭔가, 어떻게 된 건가' 하는 생각이 든다.

문정현 : 그 엄청난 참사를 없었던 일처럼 지나가버리자고? 그게 사람이 사는 동네인가. 몸이 어디 한 군데 아파도 온몸이 총동원돼서 치료를 하는거고, 어느 사회가 아픈 데가 있으면 전 사회가 거기에 신경을 쓰고 치료를 해야만 그게 사람 사는 동네지.

대로변에서 일이 벌어졌는데, 6개월 만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한다면 너무 비극적이다. 이런 사회에 어떻게 사람이 살 수 있나.

"법으로 따질 문제 아냐…나라의 어른들이 '어른 노릇' 해달라"

▲ 도법스님은 2004년 지리산에서 시작해 최근까지 5년간 전국 모든 땅을 밟으며 대중과 함께 하는 생명평화 탁발순례를 진행했다."작년, 서울에서 100일 순례를 했다. 그는 "대한민국 제1의 도시 서울의 음지, 그늘진 곳이 참 많았다. 그야말로 참 무참한 심정이더라"고 말했다. ⓒ프레시안
도법 :
작년, 서울에서 100일 순례를 했다. 대한민국 제1의 도시 서울의 음지, 그늘진 곳이 참 많았다. 그야말로 참 무참한 심정이더라.

용산 소식을 듣고, 그런 곳곳에 있는 아픔이 폭발을 해서 현실적 비극으로 나타났다고 보았다. 법적으로 누가 맞냐 안 맞냐를 따지는 것이 법치국가 사회에서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법보다 더 중요한 양심과 도덕성을 다 포기해버리는 결과를 가져온다.

적어도 이 문제는 한 사회의 양심이나 인격 측면에서 다뤄져야 한다. 그럼 그걸 누가 하나. 어차피 당사자는 어렵고, 국가의 원로들이 나서야 한다.

지금 국가에는 여러 국정자문위원도 있고, 각 종교계를 대표하는 종교 지도자도 있다. 이런 분들의 역할이 왜 없나. 당사자들이 부딪쳐서 문제가 잘 해결이 안 되고 있다면 당연히 그런 분들이 싸움도 말리고, 문제를 조절해서 합리적인 접점을 이끌어내게 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런데 왜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을까.

저는 지금이라도 국민원로회의 같은 국정자문위원 개개인이나 종교계 대표들이 나서서 이 아픔을 치유하고 문제 풀 수 있도록 역할을 해달라는 호소나 청원을 하면 어떨까 싶다.

문정현 : 이명박 정권 주변의 자문위원이라는 사람들이 우리 쪽을 이해하는 건 거의 불가능할 것 같다.

종교계도… 모르겠다. 정치와 종교는 분리돼 있는거라고 해서 사실 우리들의 행위 조차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본다. 사제단에 대한 불신은 이 교회에 훨씬 더 많다. 다른 종파도 자기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 같다.

용산만 아니라 여기저기 성당 헐리는 데가 많다. 그런데 협상 과정에서 얻어진 것이 많으면 조용하고, 없으면 일대 성당들이 그 앞에서 규탄하고 싸운다. 교회 차원에서라면 그래도 재개발이 뭔지, 공동체는 어떻게 되는 건지 연구해야 하는데 다들 내것만 챙기면 그만이다.

도법 : 물론 그렇다. 그래도 기자회견도 하고 해서 나라의 어른들이 나서서 해달라고 호소할 수 있지 않을까. 혹시 아나. 그 가운데 지혜로운 무언가가 작동할 수 있을지. '어른들이 좀 어른 노릇을 해주십시오', 그렇게 공개적으로 호소하는 것이다.

자문위원들을 다 빤하다고 하지만, 그래도 민간이 요청하면 혹시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리고 공개적으로 각 종단 대표에게도 요구하는 거다. 사회적 문제를 풀어가는데 당연히 그런 대표적인 어른들이 나서야지, 안 그러면 국정자문위원, 어른이라고 할게 뭐 있나. 공개적으로 요구가 있으면 혹시 얘기를 하게 될 수도 있지 않겠나.

문정현 : 시도를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런데 무슨 안 되는 이유가 많다. 조심성이 많다.

▲ 문정현 신부와 도법스님. ⓒ프레시안

"서로 인정해야 한다"…"과거사라면 가능할지 몰라도"

도법 : 지금 이런 현상은 한국전쟁 이후 좌우 대립 싸움의 기운이 아직도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념적으로도 얽히겠지만 여러 이해관계도 있고.

우리가 결국 패를 갈라 싸우는 걸 못 넘어서고 있다. 그러나 진보, 보수, 자본가, 노동자 모두 어차피 같이 가야 한다. 공동 운명체이자 동반자일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보수를 동반자로 인정하지 않는 진보는 진보가 아니라고 본다.

이명박 대통령이 아무리 나쁘다고 해도 같이 살 수밖에 없지 않나. 서로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문제가 다뤄져야 한다.

문정현 : 그게 대원칙일 수는 있으나, 현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용산처럼 재개발을 이런 식으로 한다면 장래에 어떤 사회적 현상이 벌어질지는 뻔히 아는데, 구체적으로 벌어지는 일을 그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나.

용서와 화해, 융합의 차원으로 대하는 건, 과거사라면 가능하다. 그러나 지금 벌어지는 일들은 이렇게 가서는 안 된다. 장래가 뻔하다. 이것도 과거사가 되면 그런 식으로 얘기하겠지만, 지금 현재는 각 부문과 지역에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도법 : 정부는 어차피 바뀌지 않나.

문정현 : 아니 그래도 5년을 기다리는 건, 이건 아니지.

도법 : 우리 사회의 공론이 어떻게 형성되느냐 하는 부분이 중요하다고 본다. 이게 결국 정부를 탄생시키기도 하고, 정부가 돌아가게 한다. 그런데 현재 우리 상황에서는 늘 적대적으로 서로를 대하지 공동 운명체이고 동반자라는 인식에서 문제가 다뤄지는 사회적 공론이 너무 약하지 않나.

당연히 현장에서 이런저런 문제가 있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재개발 문제만 놓고 보더라도, 공동 운명체라는 인식이 바탕이 되면 재개발 방식도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

그러나 자기 세력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기본이 되어 있고, 거기에 맞는 방법만 쓴다. 근본 바탕이 없다. 그러다보니 방법론 자체가 경직되고 극단적으로 가게 된다.

문정현 : 나는 아픈 대목을 보면 참지 못한다. 용산도 얼마쯤 있다가 집에 돌아갈 생각을 했다. 그런데 유족들을 보면 볼 수록 도저히 거기를 떠날 수 없는거다. '장례식 때까지는 있어야 되겠구나' 생각했다.

이 일이 원만하게 해결이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이 사회에 대한 기대를 가지지 않으려 한다. 이게 사람 사는 사회인가.

"현장과 떨어진 종교는 '존재 이유'가 없다"

도법 : 불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개개인들로 하여금 삶을 잘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회적으로 보면 이 사회가 좋은 사회가 되도록 만들기 위해서 존재한다. 일상의 삶 속에서 불교의 사상과 정신이 적용되어야 그 사람의 삶이 바람직하게 만들어지지 않겠나.

그런데 지금 불교는 현장과 분리돼 있다. 불교적 삶과 일반적인 삶이 분리돼 있다. 이게 문제다. 그 결과가 용산 참사를 낳게 만들었고, 그 참사라고 하는 비극이 벌어졌는데도 수습하려는 노력이 안 나타나고 그런 것이다.

삶이 수행이 되고 수행이 삶이 되고, 현장이 불교적으로 돌아가고, 불교가 현장에서 함께 하고. 이런 수행론을 우리가 확립하지 못하면 불교가 이 사회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거다. 또 불교의 미래 역시 부정적이고 절망적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이런 걸 불교계 전체가 관심을 가지고 방향을 모색했으면 좋겠다. 8월에 열리는 야단법석과 움직이는 선원이 그런 시도다. 그런 과정 속에서 삶이 수행이 되고 수행이 삶이 되어지는 수행 방법을 찾으려 한다.

문정현 : 스님 말씀에서 불교를 기독교로 바꾸면 다 맞는 말이다.

▲ "삶이 수행이 되고 수행이 삶이 되고, 현장이 불교적으로 돌아가고, 불교가 현장에서 함께 하고. 이런 수행론을 우리가 확립하지 못하면 불교가 이 사회에 있어야 할 이유가 없다. 존재의 의미를 잃어버리는 거다. " ⓒ프레시안

"선한 이웃이 되려면, 사람이라면 용산을 외면하지 마라"

도법 : 종교는 보편적 가치다. 동서고금 남녀노소 빈부귀천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어질 수 있는 가치를 말로 잘 설명해주고, 사람들이 그 법칙에 따라 잘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주고 모범을 보여주는게 종교다. 기독교, 불교, 이슬람교처럼 이름과 모양은 다르지만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은 보편적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 종교는 본질적인 내용은 못 보고, 배타적이고 공격적인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본래의 취지에 대해 기본 상식이 잘못돼 있거나 부족하거나 없어서 그렇다. 사람들이 어떤 방향으로 어떤 길을 가야 좋을지 혼란에 빠져 있다는 건 결국 종교에 책임이 있다. 그 현상 중 하나가 독실한 신자라고 하는 이명박 대통령이 보여준 행태다.

용산 참사 같은 비극이 결국 왜 발생하게 됐는가. 결국 한국 사회의 구성원이 어떤 방향을 향해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바람직한 길을 못 찾아서 생긴 일이다. 종교가 방향을 잘 제시해줬다면 당연히 정치와 경제도 제대로 하지 않았겠나. 그 역할을 못 한 것이다.

이 대통령이 종교적 신념을 가지고 한다고 하지만, 종교 본래의 정신하고는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런 게 종교라면 차라리 없는게 낫지 싶다. 종교가 권력 집단화, 이익 집단화가 된다면 없는 것이 낫다는 말이다. 이명박 대통령 역시 세속화된 종교 현상이 아닐까 생각한다.

문정현 : 나는 현장에서 종교를 보게 된다. 가톨릭이건 기독교이건 신흥 종교이건, 나는 제도화된 종교에 정말 종교적인 심성이 있는지 상당히 부정적이다.

1970년대에 민청학련 사건이 터지고, 그것을 잡기 위해 정권이 인혁당을 조작할 때, 민청학련 가족들조차도 인혁당 인사를 피했다. 그런데 그 인사들과 함께 하는 이들은 교수, 목사, 신부도 아니고 연민과 측은지심이 있는 사람들이더라. 그렇게 어찌어찌해서 힘이 되는 증거물이 생기고, 33년이 된 오늘에야 진실이 밝혀졌다.

용산도 지금 그렇게 때려잡지만, 측은지심을 가지고 스님, 신부, 또는 그 누구든 측은지심을 가지고 같이 가 있는다면, 그게 종교가 얘기하는 심성의 시작이다. 난 용산 참사에서 내가 뭘 이룬다는 마음보다도, 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데까지 함께 한다는 생각이다. 이제 죽을 날이 가까워온 내가 명쾌하게 얘기해서 문제가 다 해결되면 좋겠지만, 그걸 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들에 대한 애정을 놓을 수는 없다.

사실 우리가 읽는 성서 또는 경전에도 그 말이 나온다. 길에 쓰러져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직자도 율법자도 그냥 지나갈 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가서 치료해주고 보살폈다. 누가 '참이웃'인가. 아주 구체적인 성서의 사례다. 그런데 용산 참사를 놓고 그냥 지나갈 수 있느냐. 선한 이웃이 되려면, 사람이라면 와봐야 하지 않나.

그런 심성이 알려지고 보편화됐을 때 그게 건전한 사회다. 그게 유토피아면 유토피아고, 지상의 천국이라면 천국이 될 것이고.

▲ "길에 쓰러져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성직자도 율법자도 그냥 지나갈 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이 가서 치료해주고 보살폈다. 누가 '참이웃'인가. 아주 구체적인 성서의 사례다. 그런데 용산 참사를 놓고 그냥 지나갈 수 있느냐. 선한 이웃이 되려면, 사람이라면 와봐야 하지 않나." ⓒ프레시안

"용산도, 지리산도, 대추리도, 새만금도…"

도법 : 요즘 불교와 현장의 일치를 강조하면서 하고 있는 일 중 하나가 지리산을 살리기 위한 운동이다. 지리산은 구례 지리산도, 남원 지리산도 아닌 민족의 성산이다. 성스러운 곳답게 지켜야 할 문제이고, 정부의 문제다. 정말 케이블카와 댐을 만드려고 한다면 지리산을 성스러운 곳으로 지켜가는데 바람직하기 때문에 한다는 말이 나와야 하는데, 그런 게 전혀 없다. 말만 민족의 성산이라고 하고, 각 지자체에서 한 자리를 떼어가려고 한다. 수경스님이 몇 년전 막았던 개발도 또 다시 추진한다는 말이 나온다.

문정현 : 그것이 바로 개발의 구조다. 용산 경우를 봐도 재벌은 컨소시엄을 만들어 개발을 성사시키는데 명수다. 정부는 인·허가를 한다. 또 컨소시엄 업자는 용역 업체를 동원하고, 이들은 경찰과 유착해 용역이 경찰이고 경찰이 용역이 된다. 그 힘을 당해낼 도리가 없다.

지리산 개발도 그런 형태로 갈 거다. 대추리가 그런 형태로 가서 못 이기고 쫓겨난 거고, 용산도 마찬가지다. 새만금도 마찬가지고 지리산도 마찬가지다.

용어도 다 똑같다. 수용 단계를 거쳐서 공탁을 한다. 우리나라 사유재산이 없다는 증거다. 공적 이익을 위한다는 이름으로 모든 걸 다 정당화시킨다.

도법 : 결국 그런 비인간적인 상황이 나타나는 건 돈이 문제다. 하나도 돈이고, 둘도 돈이고. 종교도 양심도 무릎꿇고. 인간적 품위를 다 잃어버린 것이다.

문정현 : 스님은 천천히, 저 지리산 꼭대기에서 아래를 들여다보며 있고, 나는 산 아래에서 멧돼지 하나 살리려고 헤매며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게 다 서로 맞아 들어간다고 본다.

▲ "스님은 천천히, 저 지리산 꼭대기에서 아래를 들여다보며 가고, 나는 산 아래에서 멧돼지 하나 살리려고 헤매며 돌아다니고 있다. 그런데 그게 맞아 들어간다고 본다." ⓒ프레시안

이 기사의 구독료를 내고 싶습니다.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1,000 원 추가
-10,000 원 추가
매번 결제가 번거롭다면 CMS 정기후원하기
10,000
결제하기
일부 인터넷 환경에서는 결제가 원활히 진행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kb국민은행343601-04-082252 [예금주 프레시안협동조합(후원금)]으로 계좌이체도 가능합니다.
프레시안에 제보하기제보하기
프레시안에 CMS 정기후원하기정기후원하기

전체댓글 0

등록
  • 최신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