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P>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 주(州)에서 11일(현지시간) 새벽 미군 병사 1명이 부대 밖으로 나가 인근 마을에서 총기를 난사해 최소한 16명이 숨지고 5명이 부상했다. 부상자 중에는 중상자도 있어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범행의 현장도 끔찍하다. 불과 3 곳의 집에 총기가 난사됐는데, 한 집에서만 11명이 죽기도 했다. 아프간 주민들이 대가족을 이루고 사는 경우가 많아 이 집은 일가족이 잠을 자고 있는 새벽에 갑작스러운 총격을 받아 영문도 모른 채 죽임을 당했다.
특히 어린이 9명과 여자 3명 등 주로 어린이와 여자들이 참변을 당했다. 그것도 어린이들 중 여아 4명은 모두 6살 이하다. 범인은 총기를 난사한 뒤 일부 시신에는 불까지 지른 채 현장을 떠났다.
▲ 11일(현지시각) 미군 병사가 아프간 주민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최소 16명이 죽었다. 주민들이 미군 기지에 몰려와 항의를 하고 있다. ⓒAP=연합 |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은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남부 칸다하르 지역이 아프간 전쟁 전에 집권했던 탈레반 세력 근거지여서 탈레반과 미군의 교전이 자주 벌어지는 곳이기는 하지만, 주민 수백 명이 즉각 미군 기지에 몰려가 "어린이들이 무슨 탈레반이냐"고 분노하며 시위를 벌였다.
게다가 이번 사건이 일어난 시기가 '불난 데 기름을 얹은 격'이 되고 있어 미국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아프간 주둔 미군이 코란 등 이슬람 종교서적을 무더기로 불태운 사건이 일어난 지 한 달도 안되기 때문이다.
코란 소각 사건만으로도 30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만큼 격렬한 시위가 벌어지고, 특히 이 사건으로 미군도 6명이 살해됐기 때문에, 미국 측에서는 더욱 충격적인 이번 사건으로 보다 폭력적인 반미 시위나 보복이 벌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번 사건의 경위에 대해 미군 당국은 한 명의 미군 병사가 단독으로 저지른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새벽 3시부터 범인은 미군 기지에서 약 500m 떨어진 마을에서 총기를 난사하기 시작했고, 이후 자진해서 부대로 복귀해 현재 당국이 이 병사를 체포해 조사중이라는 것이다.
"미군들은 왜 정신이상자들을 아프간에 보내냐"
일단 범행의 정황으로 봐도 정신이상자의 소행으로 보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아프간 쪽에서는 분노와 냉소가 교차하고 있다. 아프간의 한 정치분석가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코란 사건을 예로 들며, "그렇다면 미군 병사들은 다 정신이상자냐. 왜 미국은 아프간에 정신이상자들을 군인으로 보내고 있느냐"면서 "아프간이 무슨 정신병원이냐"고 꼬집었다.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간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격렬하게 비난하며 미국의 해명을 강력히 요구했다. 카르자이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이번 사건은 암살이고 무고한 민간인을 고의로 살해한 것으로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고 성토했다. 미군의 총기 난사로 다리를 다친 15세 소년 라피울라는 카르자이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범인이 한밤중에 자신의 집에 들어와 가족을 깨운 다음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
미국 정부도 사태의 심각성을 감안해 대통령이 즉각 성명을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면서 "사실 관계를 명확히 밝혀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도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전화를 걸어 깊은 유감을 표시하면서 철저한 조사를 약속했다.
미군에 대한 불신 고조… '고의적인 보복설'까지 펴져
하지만 상황이 복잡미묘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아프간과 연합군 사이에 불신이 고조되고 있어, 아프간의 정치인과 관료들은 물론 많은 주민들이 이번 사건이 계획된 것이고, 누군가의 도움 없이 병사 한 명이 저지른 것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카르자이 대통령이 성명의 앞부분에 "미군들이 주민들의 집에 들어왔다"고 언급하면서 "총기 난사는 병사 한 명이 저질렀다"는 식으로 표현해 이런 의혹은 더욱 커지고 있다.
이때문에 이번 사건이 코란 사건으로 6명의 미군이 살해된 것에 대한 미군의 조직적인 보복 행위라는 소문도 퍼지고 있으며, 미군 내부에서는 탈레반과 함께 싸우는 아프간 정부군이 점점 총구를 연합군에게 돌리고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이에 따라 아프간의 상황이 더욱 혼란스러워져 2014년말까지 미군이 전투병력을 모두 철수시킨다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는 관측이 대두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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