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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명 죽인 '돈 먹는 하마'…한국 철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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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여 명 죽인 '돈 먹는 하마'…한국 철도도?

[민영화 공동 기획 ②] 영국인이 말하는 영국 철도 민영화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국민의 뜻에 반하는 민영화는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정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국토교통부는 '자회사' 형태의 수서발 KTX 분리를 추진하고 있으며, 기획재정부는 영리 병원과 각종 규제 완화로 대변되는 '의료 산업 활성화'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도시 가스 도매 시장에 경쟁 체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이른바 '가스 민영화법(도시가스사업법 개정안)'을 내놓았다. 일부 지자체도 수자원공사를 통해 상수도를 민간 위탁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에 <프레시안>과 민주노총은 철도, 의료 등 각 분야에서 진행되는 민영화(사유화) 현황을 짚는 기획을 공동으로 마련했다. <편집자>

영국 철도(British Rail)가 분할 매각된 지 20년이 지났다. 1993년 통과된 '철도 민영화법'은 전 세계를 통틀어 가장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민영화로 귀결되었다. 이 때문에 영국 철도는 구조가 복잡해지고 안전이 위태로워졌으며, 요금은 비싸고 비용은 많이 드는, 대중적으로 인기 없는 체계가 되었다.

철도를 위한 새로운 기회? 재앙을 부른 졸속 민영화

1992년 총선에서 보수당은 승리를 내다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철도 민영화라는 보수당의 가장 근본적인 계획에 대해서는 거의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승리한 보수당은 공약 실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 없이 '철도를 위한 새로운 기회(New Opportunities for the Railways)'라는 매우 얇은 문서를 발행하여 민영화 모델을 제시했다. 집권 5년 안에 철도를 민영화한다는 야심 찬 계획이었는데, 이에 관한 논쟁을 벌일 시간은 거의 없었다.

이 문서는 선로 시설과 열차 운행의 복잡한 분리 매각을 포함하는 모델을 제시했다. 이 모델에는 열차 운행사들은 선로에 대해 동일한 접근권을 가지고 서로 경쟁한다는 이론이 깔렸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영국의 독특한 프랜차이즈 계약 시스템 탓에 선로 경쟁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 영국은 철도를 민영화한 이후 안전사고 빈발, 민간 회사에 막대한 혈세(정부 보조금) 투입 등 큰 대가를 치른 뒤 철도를 재국유화했다. 한국에서도 '수서발 KTX 분할'이 철도 민영화의 신호탄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KTX가 역사로 진입하는 모습. ⓒ연합뉴스

쪼개고 또 쪼개고

이 모델의 고안자는 교통부가 아닌 재무부로, '경쟁'을 근본적인 동력으로 감추고 있었다. 당시 철도는 자동차, 버스, 장거리 노선의 비행기 등 다른 교통수단과 경쟁에 직면했지만, 재무부는 선로를 둘러싼 경쟁을 핵심으로 여겼다. 애초 계획은 기반 시설 운영 회사인 레일트랙(Railtrack)을 공공 부문으로 남기되, 25개로 출발한 노선 운영 민간 회사인 프랜차이즈사들은 매각한다는 것이었다.

영국 철도가 소유했던 철도 차량 부문도 3개 회사로 나뉘어 은행과 경영자 매수팀에 매각되었는데, 철도 차량 회사들은 열차와 기관차를 (별도로 운영되는) 열차 운행 회사에 임대했다. 이런 제도가 고안된 이유는 철도 차량은 기대 수명이 30년 이상인 반면 프랜차이즈 계약은 대부분 7년 기한이거나 철도 차량이 조달되는 곳에서는 9년이었기 때문이었다.

새로운 구조의 또 다른 주요 요소는 영국 철도의 기술부가 분할되어 만들어진 13개의 기술 회사다. 이들 회사는 다시 7개의 '유지 회사'와 6개의 '보수 회사'로 나뉘어 설립된 지 오래된 주요 기술 회사들에 매각되었다. 더불어 6개의 화물 운송 회사도 있었다. 이 회사들은 각각 별도로 매각되어야 했지만, 사실상 '위스콘신 센트럴'이라는 한 미국 회사가 영국 철도에서 분할된 3개의 주요 화물 철도 운송 회사를 사들였다.

안전은 뒷전…대형 사고로 50여 명 사망

복잡해진 새로운 철도 체계 감독에 관해서는 규제 기관 두 곳이 있었다. '레일트랙'의 규제를 담당하는 선로 규제 기관은 시스템의 안전과 효율성을 담보하기에 충분한 자금이 투자되었는지, 과도한 이윤을 남기지 않았는지를 확인한다. 프랜차이즈 규제 기관은 프랜차이즈들을 감독한다.

프랜차이즈는 1995년 말부터 1997년 초까지 상대적으로 단기간에 매각되었다. 대부분은 버스 회사들에 매각되었고 몇몇은 경영자 매수팀에 인수되었다. 거기에 매각 초기에는 별 관심이 없던 몇몇 회사들이 말기에 추가로 참여하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지난 20년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고 철도 산업에 절실하게 필요한 안전성은 결여되었다.

'레일트랙'은 민간 회사로서 5년밖에 버티지 못했다. 이 회사는 한창 번성기에 주식 시장에서 거래되었고 주가는 4배나 뛰었다. 그러나 막대한 (시설 및 유지) 투자가 요구되는 시기가 오자, 영국의 으뜸가는 라인인 서해안 간선 노선을 '버진 트레인'사에 실행 불가능한 계약을 통해 넘겨버렸다. 그리곤 이조차 2000년에 런던 북쪽으로 30마일 떨어진 해트필드에서 발생한 열차 사고로 결국 문을 닫게 된다. 그러자 단기 이익과 자산 투자에 지나치게 몰두했던 '레일트랙'은 겁에 질려 전 노선에 걸쳐 속도 제한을 부과했다. 이 때문에 회사는 5억 파운드의 손실을 보고 결국 정부에 의한 파산 보호에 들어갔다. 정부는 기반 시설을 운영하기 위해 '네트워크 레일(Network Rail)'을 주주 없이 설립하여 모든 이익을 재투자했고, 1990년대 말까지 네트워크 레일은 정부 부채가 500억 파운드에 이르러 실질적으로 재국유화되었다.

해트필드 사고 외에 1997년~2002년 사이에 발생한 대형 철도 사고가 3건 더 있었다 (1997년 사우스올 Southall, 1999년 래드브로크 그로브 Ladbroke Grove, 2002년 포터스 바 Potters Bar). 이 네 건의 사고는 모두 성급하고 일관성 없는 철도 민영화 탓에 일어났다(여기서는 각 사고의 세부 사항을 논의할 여지가 없으니 필자가 쓴 <On the Wrong Line(잘못된 철로)>를 참조하길 바란다. 킨들에서 구할 수 있음. <필자>). 다행히 재국유화된 지금은 이러한 위험을 줄일 올바른 절차가 갖추어졌지만, 이미 이 사고들로 50여 명의 목숨을 대가로 치렀다. 이후 지난 11년간은 한 명의 사망자를 낸 사고 한 건이 있었을 뿐인데, 2007년 서해안 간선 그레이리그(Grayrigg) 사고로 여성 한 명이 사망했다.

▲ 영국 철도가 민영화된 후인 1999년 패딩턴역 부근 래드브로크 그로브에서 열차가 충돌해 31명이 숨지는 대참사가 발생했다. 사진은 패딩턴역의 모습. ⓒ박흥수

철도 민영화 이후 정부 보조금 4배로 늘어

프랜차이즈 계약의 문제점이 불거지자 여러 정책적 변화가 생겼다. 프랜차이즈 계약이 여러 차례 실패하여 다른 회사에 인수되거나 일시적으로 정부에 인수되었다. 프랜차이즈 회사에 유연성을 늘리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이 때문에 과도한 이윤이 발생하자 규제가 강화되었다.

(지금은 다행히 해결된) 안전 문제뿐만 아니라 프랜차이즈를 둘러싼 끝없는 문제점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용과 책임성 결여였다. 민영화된 구조 아래서 여러 운송 회사들의 운행 구간이 중첩되는 경우가 많고, 복잡한 보상 체계가 보수 비용을 부풀렸다. 예를 들어 여러 지점을 보수하기 위해 한 노선이 폐쇄되면 열차 운행 사업자는 이 보수로 이익도 얻고 보상도 받는다.

그 결과 민영화에 따른 정부의 철도 보조금은 상당히 인상된다. 영국 철도 시절에는 연간 15억 파운드였던 보조금이 60억 파운드로 정점을 찍고 현재 40억 파운드로 유지된다. 요금 역시 지난 11년간 매년 물가 인상률보다 1% 높게 인상되었다. 현재 프랜차이즈사들은 소수의 버스 운송업자들이 장악했고 철도 차량 회사는 은행이 소유하고 있으며 유지 회사는 분리로 발생한 위험 때문에 '네트워크 레일'로 재국유화되었다.

여전히 남은 가장 중요한 문제는 아무도 철도를 책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는 민영화된 여객 운송 회사들과 다른 회사들로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지만, 여전히 대중의 눈에는 정부가 가장 큰 책임이 있다. 민영화는 관리자들에게 별 이익 없이 막대한 어려움을 가져다준 값비싸고도 복잡한 과정이었으며, 대다수는 민영화가 실수였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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