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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매연' 살리려 환자에게 독약 권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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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조중동매연' 살리려 환자에게 독약 권하나"

[기고] "의약품 방송 광고 허용, 환자들 두 번 울리는 일"

최근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무가지와 스마트폰, DMB로 인해 한산해진 지하철 광고판을 병·의원 광고나 의약품 광고가 채우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그리고 이런 광고들은 이미 상당히 과장되어 있다. 그런데 최근 종편 광고를 늘려주기 위해 의사의 처방이 필요한 '전문의약품'과 병의원까지 방송광고를 허용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필자는 평소 의약품과 병원의 홍보성 광고를 규제하지 않으면 국민들의 잘못된 의약품 남용 문제와 광고비를 충당하기 위한 병원의 진료비 증가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라고 걱정해 왔다.

이 글은 국민 건강을 보호해야 할 정부가 해도해도 너무 심하게 거꾸로 가는 정책을 펼치는 문제점에 대해 의사로서 왜 전문의약품과 병원의 방송 광고허용이 문제인지를 알리고자 하는 마음에 쓰여졌다.

국민들 모두가 아마 알고 있을 상식적인 내용은, 첫째 아무리 단순히 생각해도 의료광고가 의료비 지출을 늘린다는 점이다. 광고비가 제품가격을 상승시킨다는 당연한 결론 말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전문의약품과 병원 방송 광고가 허용돼 있는 미국의 경우, 민간의료보험, 의약품 광고비는 이미 천문학적 규모다. 이런 비용들 탓에 미국의 총의료비는 유럽국가들에 비해 2배 가량된다. 한국의 경우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이 낮다고 하나 의료비 총재정의 60% 가량은 건강보험 재정이다. 따라서 광고로 인한 과잉 수요 창출은 우리 모두의 보험료로 유지되는 건강보험 재정의 악화를 가져올 것이다.

정부는 매년 건강보험 재정적자를 떠벌린다. 그래서 보험료는 매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10년 간 두 배 가량 보험료를 올린 이 나라에서 건강보험 재정악화를 가져올 것이 분명한 각종 의료광고를 규제하기는커녕 점점 더 그곳에 돈을 퍼붓도록 한다는 이야기다.

둘째, 의료광고는 소비자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는 긍정적 요인조차 거의 없다.

의료광고의 확대를 바라는 광고주와 광고회사, 재벌 보수언론사들은 의료서비스를 선택하는 것이 여타 물건들을 구매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옷이나 차를 사는 것과 담낭제거술을 병원에서 하는 것은 단순히 비용을 지불한다는 측면에서 같은 것이라고 본다.

하지만 이것은 오로지 지갑에서 돈이 나간다는 측면에서만 같다. 병원을 내원한 대다수 환자들의 치료에 대한 선택은, 물건의 구매처럼 비교 및 평가, 가격경쟁력 등을 고려해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아프지 않기 위해, 즉 즉각적인 필요에 의한 것이다.

거기다 매우 제한적인 치료방식을 가지고 전문가들의 수준을 평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의료정보의 특성상 전달이 가능하지 않거나 매우 복잡하기 때문이다. 결국 환자나 보호자들은 옷이나 차를 구매하듯이 충분히 판단할 시간과 다양한 선택의 여지가 있는 환경에 놓여지지 못한채 치료를 받아야 한다.

▲ ⓒ프레시안(이경희)

셋째, 의료부문은 객관적이며, 다방면의 평가가 장기간 요구되므로, 상업적 광고에 부적합한 영역이다.

의학적 처치의 평가 및 효과 규명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후의 예후와 합병증등을 모두 평가해서 반영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환자가 가진 다른 기저질환이나 과거병력에 따라 상이한 접근이 필요하다. 따라서 의료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명확히 제공할 수 있는 '광고카피'는 존재할 수 없다. 최소한의 시간에 최대한의 효과를 끌어내야하는 상업적 광고의 목표라면 의료가 그런 영역의 상품이 될 수 없다는 점은 더욱이나 명확하다.

이미 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외래에서 이미 신문이나 잡지 등에 과잉 선전된 의약품 등을 '지정'해서 처방해 달라는 환자들이 너무 많이 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 경우 상당수는 잘못된 정보(빠른 효과, 항우울증약의 비만치료효과, 수면제 등)에 의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더구나 역사적으로 충분히 연구되고 입증되어 허가된 의약품이나 의료처치의 경우도 10년이상 사용되다가 금지된 경우가 허다하다.(Vioxx같은 COX-2 inhibitor 일부 금지건 등)

이런 상황에서 개별 병의원의 광고확대가 가져올 부작용에 대해 책임질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짧게는 몇 개월에서 길게는 몇 년의 기간을 누가 책임져 주겠는가? 물건은 사서 써보고 불량이라고 생각되면 환불, 수리 받을 수 있으나, 의료서비스는 그럴 수도 없다. 사람의 몸은 환불되는 상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넷째,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환자들을 대상으로 큰 돈을 벌려하는 행위는 자본주의의 비윤리적 행위 중에서도 최고의 악마 같은 짓이다.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실제로 암에 걸린 환자들은 좋다고 알려진 모든 치료법에 대한 소문을 듣고 그러한 모든 치료를 해 보고 싶어 한다. 살고 싶은 사람의 마음이란 그런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수 밖에 없다. 민간요법 같은 기존의 의료 외적인 치료법들을 찾게 된다.

환자들은 인터넷이나 잡지 귀퉁이에서 발견한 실험적인 치료제나 연구중인 치료제 등의 광고를 보고 스스로 자신이 실험 대상이 되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검증되지 않고 실험중인 의약품이나 의료기술의 개발소식에 민감할 수 밖에 없는 중증 환자들에게 전문의약품과 병원 방송광고를 허용한다면 이는 물에 빠진 사람에게 지푸라기를 잡으라고 꼬드기는 꼴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얼마전 병원 외래에서 ALS(근위축성축색경화증 : 루게릭병으로도 알려져 있다)가 진단되어 근약증이 상당히 진행된 환자가 현재 개발중인 약제의 처방이 가능한지를 문의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쉽게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시점에서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ALS의 치료제는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환자는 강하게 자신에게 그 약제를 사용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경우 의사들은 매우 곤혹스럽다. 윤리적으로 이러한 약제는 입증되지 않았으므로 임상시험의 수준에서 처방받으려면 연구당사자를 찾아가도록 해야 하지만, 이 또한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 줄기 희망을 갖고 있던 환자들을 포함해 한국 사회를 허탈감과 배신감에 떨게 했던 '황우석 사태'를 기억해 보자. 당시 줄기세포에 대한 무차별적 언론보도는 척수손상 및 말초신경손상 환자들에게 기적 같은 치료의 희망을 주었다. 그러나 아직 임상적으로 적용하려면 많은 단계와 연구결과가 있어야 하는 것이 줄기세포 치료법이다. 하지만 이미 이런 언론의 허위 보도 이후 이를 영업적으로 활용하는 경우는 빈번해졌다. 그래서 이미 수많은 약제와 시술과정에 '줄기세포'라는 용어가 트랜드가 되고 있는 경향이 있고, 그것을 이용해 돈을 버는 광고주와 광고회사가 있다. 병원 수술에서는 '로봇 치료법'이 트랜드가 되어 있듯이 말이다.

다섯째, 전문의약품과 병원의 방송광고 허용은 병원자본과 제약기업에게만 유리하다.

최근 광고의 추세는 새로운 치료기기 도입이나 치료법, 약제개발 소식이다. 최근 개발되어 시술한다는 몇몇 의료장비의 가격은 수십억을 호가한다. 약품의 임상시험비용도 수억 원은 기본이다. 이런 상황에서 새로운 장비와 임상시험이 가능한 병의원이 단순히 광고비 지출에서 뿐만 아니라, 좀더 환자를 유인할 수 있는 상황을 연출할 것이다. 물론 새로운 의료장비의 도입은 좋은 일일 수 있으나, 이런 장비의 대부분이 아시아 최초, 혹은 어느 지역 최초등의 타이틀을 달고 적용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CT, MRI 처럼 고가의 장비이나, 이미 한국의 의료시스템에서는 포화에 도달한 것들이 포함된다. 즉 과다한 지출을 보정하기 위해 수요를 창출해야 하는 상황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의료광고는 그런 상황을 더욱 부추길 공산이 크다. 이미 중앙일간지 등의 1면을 장식하는 병원광고는 대단위 네트워크 병원들이 독점하고 있다.

결국 의료 광고는 환자의 무지와 비전문성을 해결하고, 서비스의 정보를 제공한다는 기본취지 마저도 완전히 왜곡시킬 것이다. 즉 병의원 광고의 경우 다른 의료기관과의 차이점을 강조한 나머지 실제로는 승인되지 않았거나, 연구중인 치료에 대한 광고가 될 공산이 크고, 이는 그러한 증상을 겪고 있는 목마른 환자들을 현혹할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비용은 국민들의 부담과 건강보험 재정 악화로 돌아올 것이다. 그리고 환자들의 건강은 상업적 광고의 상품으로 전락할 것이다. 재벌 언론과 광고주들의 배를 불리기 위해 국민건강을 팔아먹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인되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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