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7일 민주당은 다시 중앙위원회를 열어 합의를 시도할 계획이지만 순탄치 않아 보인다. 분위기가 이렇게 쏠려가자 통합의 또다른 주체들은 '발끈'하고 나섰다. 혁신과통합은 이날 성명을 내고 "실망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국민의 요구를 받아 안지 못하는 민주당의 현실을 개탄한다"고 덧붙였다. 한국노총도 성명을 통해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며 "민주당은 최대한 신속하게 중앙위원회를 재소집해 통합을 결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초 민주당과 혁신과통합이 합의했던 '원샷 전당대회'는 사실상 물건너가고 '투트랙'으로 갈 수밖에 없다는 전망에 무게가 실리는 분위기다.
대체 어디서부터 일이 꼬인 것일까? 통합전당대회 반대론자들조차 말로는 "통합의 대의를 부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데 왜 야권은 이런 험로를 걷고 있는 것일까? "손학규 대표가 통합이라는 대의에 천착한 나머지 꼼꼼하지 못하게 일을 추진한 것이 문제였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한미 FTA도 막지 못하면서 무슨 통합이냐" 비판 나온 이유…
통합을 추진하는 입장의 조급한 마음이야 당연하다. 더욱이 12월 17일 통합전당대회를 열기 위해서는 시간이 없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날치기 비준이 22일 이뤄지자 다음날 민주당 중앙위원회도 연기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다수를 이뤘다.
국민의 삶과 직접적 연관이 있다고 민주당 스스로 주장해 온 한미 FTA 날치기 처리에 대한 대응이 정치권의 통합 논의보다 중요하지 않냐는 판단에 근거한 추정이었다. 실제 날치기 직후 이뤄진 민주당 의원총회에서도 중앙위 연기 요구가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당 지도부는 중앙위를 강행했다. 중앙위에서는 역시나 "한미 FTA조차 막지 못하는 지도부가 무슨 통합을 얘기하냐. 사퇴부터 하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정치평론가 고성국 박사도 24일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민주당은 한나라당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이 당했기 때문에 단 며칠이라도 책임지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손 대표 등 지도부가 중앙위를 강행한 것은 "어차피 지나쳐야 할 관문이고 수적으로도 우세하니 충분히 처리가 가능하다"는 자체 판단에서 기인했다. 비공개 회의로 전환하면서 당 통합파 의원 한 사람은 기자들에게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 정리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런데 그때부터 중앙위는 6시간을 더 끌었고 아무 결론도 내리지 못했다.
▲ 23일 열린 민주당 중앙위원회에서 만난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박지원 전 원내대표.ⓒ연합뉴스 |
알고 보니 통합안에 법률적 허점 투성…혁신과통합, 창준위 등록
이런 자중지란이 계속될 수록 통합의 의미는 퇴색한다.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을 말할 것도 없다. 전날 중앙위에서는 손 대표를 향항 격한 험담도 쏟아졌지만 논리적인 지적도 적지 않았다.
지도부와 혁신과통합 안의 가장 큰 오류는 법률적 허점이다. 애초 이들이 구상했던 12월 17일 '원샷 통합전당대회'는 중앙선관위원회에 의해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받았다. 혁신과통합이 창당준비위원회를 만들어 민주당과 신설합당 방식으로 통합전대를 치르는 것은 안 된다는 얘기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이 지적하는 오류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원인 제공은 손 대표가 했다. 심지어는 통합파들이 그동안 예시로 들었던 '2000년 새천년민주당 방식'도 사실이 아니었다. 당시는 새천년민주당을 완전히 창당한 후 국민회의가 이 당에 흡수되는 방식으로 당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당내로 놓고 봐도 민주당 중앙위원회가 통합을 의결하는 최종 권한이 있는지 여부도 시끄럽다.
이 모든 소란은 결국 통합을 추진하면서 관련 절차를 꼼꼼하게 점검하지 못한 지도부의 무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더욱이 손 대표는 이런 지적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어떤 보완책도 명확한 대답도 내놓지 않은 채 오직 "통합은 국민의 명령이며 대의"라는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했다. 중앙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원샷 전당대회'에 반대하는 현역 의원 가운데 이 '대의'를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계산기로 두드려본 뒤 그 속내를 포장한 경우가 적지 않다 하더라도, 논리적으로는 이들의 문제제기가 틀리지 않는 것이다.
전날 중앙위에서 민주당 지도부가 "숫적으로는 통합파가 우세"라면서도 표결을 추진하지 못한 것도 이런 배경 탓이다. 23일 중앙위가 무위로 돌아가면서 12월 17일 통합전당대회도 불투명해지고 있다.
혁신과통합도 선관위 유권해석으로 24일 선관위에 가칭 '시민통합당 창당준비위원회'를 등록하는 등 '선(先)창당'을 위한 실무 준비를 진행 중이다. 결국 이들의 통합은 현실적으로도 각각의 전당대회와 창당대회를 거친 뒤 다시 통합전당대회를 치르는 '박지원식(式) 3단계 통합론'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저들은 능력도 열정도 있는데 손학규 대표는…"
민주당과 친노 인사들, 한국노총과 일부 시민단체의 통합이 아예 좌초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손 대표는 다시 한 번 리더십에 타격을 입게 된 셈이다.
손 대표는 전날 중앙위에서 마지막 발언을 통해 "맷집을 키웠다"고 말했다. 지금 손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맷집이 아니라 주도면밀함과 정성이다. 대의라는 명분만을 손에 쥐고 반대편의 사람들이 내놓는 문제제기를 "통합하지 말자는 거냐"고 몰아붙일 것이 아니라,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 전날 중앙위에서도 그동안 제기된 여러 문제들에 대해 속시원한 해법을 손 대표가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양 측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손 대표는 "목숨 걸고 지킨 당이 '구태'로 치부되는 현실"에 애통해하는 전통적 지지층도 보듬고 끌어 안지 못했다.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대표를 놓고 "한나라당에서 와서 저런다"는 얘기가 나오도록 '소통'하지 못한 것은 누구보다 손 대표 스스로의 책임이다.
한 재선 의원은 전날 중앙위원회를 본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단독전당대회를 주장하는) 저 양반들이 능력과 열정은 확실히 있구나 싶었다. 대중의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은 탁월했다. 반면 손 대표에게 답답한 것도 있었다. 사전에 충분히 의견을 듣고 조율하고 체크했어야 했다."
민주당이 내세우는 통합의 최종 목표는 선거 승리다. 그럴려면 지지층을 넓혀야 한다. 현재로서는 새로 끌어당겨야 할 지지층은 고개를 돌리고 전통적 지지층은 배신감에 마음을 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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